국민의힘 중진들이 옳다 [성한용 칼럼]
성한용 | 선임기자
10월29일 아침 서울 시내 한 식당에 국민의힘 중진 정치인 네 사람이 모였다. 윤석열 정부 첫 통일부 장관을 지낸 권영세 의원, 국민의힘 대표를 했던 김기현 의원, 박형준 부산시장, 오세훈 서울시장이었다.
이들은 조찬 간담회를 마치고 ‘정치란 무엇인가’라는 입장문을 냈다. 나경원 의원도 이름을 올렸다. 길지 않은 입장문에 자성, 진단, 처방을 담았다.
“정치의 본령은 국민을 위한 ‘공동 번영’, 즉 ‘함께 잘사는 세상’을 이루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정치가 국민의 근심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정치하는 사람들로서 송구한 마음과 함께 깊은 책임감을 느낍니다.”
자성이다. 자성을 앞세우는 것은 정치인의 기본자세다. 윤석열 대통령, 한동훈 대표 등 늘 잘난 척만 하는 검사 출신들과는 확실히 다르다.
“대한민국은 강대국 패권 경쟁과 동시다발 전쟁으로 백척간두에 서 있습니다. 민생 현장에서는 경제 침체의 그늘에 직면한 국민들이 애타게 고통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치는 이를 뒤로한 채 정쟁과 분열의 권력정치 늪에 빠져 있습니다.”
“우선 국정을 담당한 정부·여당의 책임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국리민복을 책임진 세력 내에서 대통령과 당대표의 내분만 도드라져 보이는 것은 참으로 정치적 리더십의 부재라 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라 안팎에서 벌어지는 현실에 대한 인식,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대표의 대결 양상으로 치닫는 정국에 대한 진단이다. 정확하다.
“더 이상의 혼란은 없어야 합니다. 보수정당답게, 여당답게 중심을 지켜야 합니다. 국민이 맡긴 권력 앞에서 우리는 한없이 겸손해져야 합니다. 그리고 지적으로 도덕적으로 우리는 분투해야 합니다.”
모처럼 보수라는 단어를 적절하게 사용했다. 그렇다. 보수는 점잖아야 한다. 겸손해야 한다.
“우리는 윤석열 정부가 출범할 때 ‘더 벅 스톱스 히어’(The buck stops here), 곧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선언한 깊은 책임감과 당당한 자신감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실은 그때의 책임감과 자신감으로 돌아가 결자해지의 자세로 국정의 발목을 잡는 현안 해결에 앞장서 주시길 바랍니다.”
‘대통령실’이라고 표현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비판과 당부다. ‘결자해지’가 그런 의미다. ‘국정의 발목을 잡는 현안’은 물론 김건희 여사다.
구체적으로 열거하지는 않았지만, 한동훈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에게 요구했던 대통령실 인적 쇄신, 김건희 여사 대외 활동 중단,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각종 의혹에 대한 설명과 해명, 특별감찰관 임명 등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당은 국민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일에 매진해야 합니다. 이 정부가 지난 정부의 오도된 국정을 바로잡아 추진하는 정책을 적극 뒷받침하면서 현안 해결에서도 갈등 심화가 아닌 당 안팎의 중지를 모으기 위한 소통에 나서주시길 바랍니다.”
한동훈 대표에 대한 비판과 당부다. 윤석열 대통령과 시끄럽게 싸움만 할 것이 아니라, 대표로서 포용의 리더십을 발휘해달라는 주문이다.
“국민의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하기 전에 정부·여당다움을 회복해야 합니다. 통합의 정신과 합리적 대화의 복원에서 길을 찾아야 합니다.”
입장문의 결론이다. 국민의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하기 전에 조처가 필요하다는 강력한 경고다. ‘통합의 정신’과 ‘합리적 대화의 복원’은 당연하면서도 가장 필요한 주문이다. 경륜이 깊은 중진들은 확실히 좀 다른 것 같다.
이 정도 입장문이 돋보이는 것은 김건희 여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괴이한 현실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지금 김건희 여사 특별감찰관 임명을 둘러싸고 친윤석열계와 친한동훈계로 나뉘어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다.
특별검사도 아니고 겨우 특별감찰관 임명을 놓고 세력 다툼을 벌이는 모습이 너무나 한심해 보인다. 이 와중에 그래도 제정신을 가진 중진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국민의힘에 아직 희망이 있다는 뜻이다.
국민의힘 중진들을 개별적으로 만나면 “업둥이를 데려와서 가업을 잇는 잘못을 다시는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실패는 정권 탈환에 눈이 멀어 무자격자를 영입해서 대통령 자리에 앉힌 국민의힘 정치인들과 당원, 지지자들의 책임도 크다. 정치는 정치인이 해야 하는 것이다.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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