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과 장례식’의 시대 [세상읽기]
김정희원 |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교수
얼마 전 대구대 사회학과가 ‘장례식’을 연다는 소식이 큰 화제가 됐다. 대학 본부의 방침에 따라 신입생 모집이 중지되면서 학과가 곧 문을 닫게 된다고 한다. 아마도 장례식은 사회학과의 지난 ‘삶’을 추모하고, 동시에 앞으로도 이어질 사회학의 의미와 역할을 되새기는 자리가 될 것 같다. 물론 대구대에서 사회학과만 폐과되는 것은 아니고, 단순히 학과의 수로 특정 학문의 흥망을 가늠할 수도 없다. 그러나 이런 결정은 한국 사회에서 인문사회과학이 처한 현실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한국에서도 ‘복합위기’를 우려하며 변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져가고 있다. 모두의 삶과 죽음의 문제로서 ‘행성적 위기’를 논하자는 외침은 결코 비유나 과장이 아니다. 과연 우리가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있을까? 인류가 그동안 떠받쳐온 이 체제가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깨닫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은 아닐까? 그만큼 우리는 이 구조에 대한 치열한 재검토를 바탕으로 우리의 인식과 태도를 완전히 바꿔내야 한다. 바로 이런 사유와 실천을 돕는 학문이 인문학이고 사회학이다.
나는 이 같은 사유와 실천의 기회를 폭압적으로 지연시키는 한국 사회가 너무나 절망스럽다. 인간과 인간이 아닌 모든 생명체의 미래를 염두에 두고, 커다란 밑그림을 차분하게 다시 그리고 있는 ‘서구’의 학자들이 빛을 발할 때, 당장 내일 입에 풀칠할 수가 없어 발품을 파는 한국의 인문학자들이 그림자처럼 늘어지는 모습을 본다. 삶과 정치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자 하는 깊은 신념이 있다 한들, 그 결심이 하찮게 여겨지는 사회에서 오직 사명감만으로 스스로를 지탱할 수 있을까?
대통령의 역할을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으로 지칭하고, 국제 관계의 기본 철학을 “세일즈 외교”로 천명하는 사회에서 화폐 가치로 곧장 환산되지 않는 일의 가치를 논하기는 참으로 힘든 일이다. 정부는 이제 대학의 통폐합을 넘어 학문 그 자체가 시장 경쟁에서 살아남을 것을 주문하고 있다. 물론 경쟁의 물적 토대 역시 시장과 정치 논리를 따라 재편되니 탄탄한 기반이 있을 리 없다. 지난해 정부의 연구개발 예산 30조6574억원 중 인문사회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 놀랍게도 단 1%에 불과하다. 이런 환경에서 장기적 헌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인류세의 오래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역사와 구조를 읽는 눈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가 안주하고 있는 이 체제가 인류 역사상 가장 진보적이거나 우월한 체제라는 인식을 깨부수는 사상적 힘은 깊은 인문학적 성찰로부터 온다. 동시대의 민주주의도 자본주의도, 결코 인류 진보의 결과가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이제는 우리가 새로운 세계를 빚어야 하는 절박한 자리에 서 있다는 겸허한 진실을 우리는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절실한 위기 신호를 아무도 듣지 않는다면, 그 위기를 헤쳐나갈 사유의 힘을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
나는 대안적 사유의 힘을 급격하게 쇠퇴시키는 정권을 보는 것이 괴롭다. 여전히 진보와 개발의 논리에 갇혀 매일같이 자기파괴적인 주문을 하니, 대한민국은 다가올 미래에 취약한 사회가 되어가는 것만 같다. ‘동해 석유 시추’나 ‘14개의 댐 건설’ 같은 것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2027년에 “인공지능(AI) 3대 강국”으로 도약해야 하니 “국가 총력전”을 펼치라는 황당한 주문도 마찬가지다. 당장 새 학기에 인공지능 교과서를 도입해야 하는데, 교사들조차 인공지능 교과서를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아직 제작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진보와 개발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자기파괴적 달리기가 아니면 무엇인가? 인공지능 강국은커녕 인공지능 기술에 정신없이 휘둘리는 국가의 모습이다.
우리는 스스로 위기를 가속화하는 사회가 될 것인가? 아니면 과거를 향한 통렬한 반성과 미래를 향한 급진적 전망을 바탕으로 다부지게 쇄신하는 사회가 될 것인가. 그렇다면 그 사회를 분석하고 구상하는 이론적·경험적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장기적·거시적 대안을 제시하는 비판적 사고는 어떻게 형성될까. 인문사회학적 역량을 홀대하는 국가는 눈을 가린 채 달리는 경주마와 같다. 성급한 채찍질에 자기 몸에 상처가 나는지도 모른 채 쉼 없이 달리는 경주마를 머릿속에 그려본다. 시야를 잃고 전망을 포기한 채로, 그저 온 힘을 다해 달리는 말은 과연 어디를 향해 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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