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최윤범 필승 카드는 ‘국민주’…황당 카드에 주주들 ‘아연실색’

박종오 기자 2024. 10. 30. 16:5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지난 2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영권 분쟁 중인 고려아연의 최윤범 회장이 이번엔 ‘국민주’ 카드를 꺼내들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2조5천억원 규모 고려아연 신주를 발행하겠다는 게 뼈대다. 주주 수를 대폭 늘려 개방적인 지배구조를 마련한다는 명분을 내걸었으나, 실상은 최 회장 개인의 경영권 방어 목적이다. 그러나 이런 계획 발표로 주가가 하한가로 곤두박질하는 등 지분 희석을 겪게 된 기존 주주들은 부글부글 끓고 있다.

고려아연은 이날 임시 이사회를 열어 신주 373만2천여주를 발행하는 일반 공모 유상증자 안건을 의 결했다고 밝혔다. 전체 발행주식 수의 20%에 이르는 대규모 신주를 기존 주주에게 우선 배정하지 않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찍겠다는 얘기다 .

앞서 시장에선 이날 이사회에서 고려아연의 임시 주주총회 개최 여부 등이 논의될 것으로 예상했었다. 최 회장과 다투는 영풍·엠비케이(MBK)파트너스 연합이 지난 28일 고려아연 이사진 물갈이를 위한 임시 주총 소집을 요구해서다. 하지만 예측은 빗나갔다.

고려아연은 신주 373만여주를 최근 주가 평균보다 30% 낮은 주당 67만원에 발행해 모두 2조5천억원을 조달하겠다고 했다. 실제 주식 발행가격과 전체 발행액은 향후 주가 추이를 반영해 다음달 29일 확정 공고할 예정이다. 전체 신주의 20%인 74만6천여주(약 5천억원 규모)는 고려아연 임직원으로 구성된 우리사주조합에 배정했다.

고려아연 쪽은 “이번 증자는 소액주주와 기관 투자가, 일반 국민 등 다양한 투자자에게 주주 참여 기회를 제공해 소유 분산을 통한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라며 “소유 분산 구조와 주주 기반 확대를 바탕으로 고려아연이 국민주로 자리매김하고, 거래량 축소로 인한 상장폐지 위험과 주가 불안정성 등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대외 명분과 달리, 실제론 이번 증자 계획은 최 회장의 경영권 방어 목적이 커 보인다. 고려아연이 유상증자 참여자의 청약 한도를 전체 신주 수의 3%(11만2천여주)로 제한했기 때문이다. 영풍·엠비케이 연합도 이 상한에 걸려 증자 이후 지분율 하락이 불가피하다. 우리사주조합 청약 물량의 경우 최 회장 편에 설 수 있다. 현재 우호 지분을 포함한 최 회장 쪽 지분율은 35.42%로 영풍·엠비케이 연합(38.47%)보다 낮은 상태다.

고려아연의 기존 주주들은 펄쩍 뛰고 있다. 이번 증자로 대규모 지분 희석과 주가 하락을 맞게 돼서다. 특히 최 회장은 앞서 영풍·엠비케이 연합에 맞서 고려아연의 자사주 대항 공개매수를 추진하며 ‘주주 권익 보호’를 위해 공개매수로 사들인 자사주를 모두 소각하겠다고 했었다. 그런데 이날 유통주식 수를 다시 대폭 늘리는 방안을 내놓은 셈이다.

고려아연이 이번 증자로 조달하는 자금 2조5천억원 중 2조3천억원(92%)을 차입금 상환에 쓰겠다고 한 점도 논란거리다. 앞서 최 회장의 경영권 방어 목적의 자사주 공개매수를 위해 고려아연 회사가 최대 2조6천억원의 빚을 떠안기로 했는데, 이번 증자를 통해 확보하는 자금 대부분을 신규 투자 등이 아닌 빚 갚는 데 가져다 쓰겠다는 뜻이어서다.

이날 코스피(유가증권시장)에서 고려아연 주가는 전 거래일보다 29.94% 급락한 주당 108만1천원에 마감했다. 대규모 증자 소식이 악재로 작용하며 하루 만에 시가총액 10조원가량이 증발했다. 경영권 분쟁 전 주당 40만∼50만원 선을 오가던 고려아연 주가는 지분 경쟁 여파로 전날 사상 최고가인 주당 154만3천원까지 치솟은 바 있다.

영풍·엠비케이 연합은 이날 “고려아연의 유상증자 결정은 기존 주주들과 시장 질서를 유린하는 행위”라며 “증자 결정을 저지하기 위해 모든 법적 수단을 강구할 것”이라고 했다. 고려아연은 이날 유상증자를 위한 증권신고서를 금융감독원에 제출했다. 일반 공모 청약 예정일은 오는 12월 3∼4일이지만, 이는 금감원 심사 과정 및 법정 소송 등에 따라 달라질 여지가 있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 노지원 기자 zone@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