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 갚은 빚’ 9조원인데…정부 엇박자에 울상인 HUG
대규모 적자 지속 전망…“재무상태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시사저널=정윤성 기자)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자본 확충을 위한 신종자본증권 발행 일정이 돌연 중단됐다. 금융당국이 시장 혼선을 우려해 제동을 걸면서다. 전세사기 피해 급증으로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HUG는 보증 여력 확보를 위해 채권 발행에 나선 상황이었다. 자본을 늘리지 못하면 최악의 경우 전세 보증 가입 중단뿐만 아니라 세금으로 곳간을 채워야 할 수도 있어 우려가 나온다.
30일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HUG는 전날 최대 7000억원 규모로 추진하던 신종자본증권 발행 절차를 중단했다. 신종자본증권은 부채임에도 만기가 30년 이상으로 길어 회계상 자본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기업들이 자본을 확충하기 위해 주로 발행한다.
HUG는 지난 28일 금융당국에 약 5000억원 규모의 증권 신고서를 제출했다. 이후 29일 기관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수요 예측을 실시하기로 했다. 이를 바탕으로 내달 5일 최대 7000억원까지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해 자본을 확충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금융당국과 이견이 발생하면서 발행 작업이 돌연 중단됐다. 금융당국은 부동산 시장과 채권 시장 영향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HUG가 자본 확충에 나설 경우 전세 대출이 확대될 것이라는 신호를 주면서 가계부채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또한 그간 정부의 자본 확충에 의존했던 HUG가 첫 시장성 자금 조달에 나선다는 점에서 채권 시장에 미칠 영향도 살펴봐야 한다는 게 금융당국의 입장이다.
문제는 HUG가 자본 확충에 난항을 겪을 경우 당장 내년 전세 보증 업무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HUG는 자기자본의 90배까지만 보증을 설 수 있는데, 올 4분기 기준 HUG가 내준 보증은 132배로 추산된다. 보증 한도를 맞추기 위해선 약 1조4000억원 이상의 자본을 채워야 하는 상황이다.
이 한도는 주택도시기금법으로 규정하는 사항이다. 자본을 확충하지 못하면 보증을 줄이거나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의미다. HUG가 신종자본증권 발행에 나선 것도 이 같은 최악의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번 발행 중단으로 자본 확충에 대한 우려가 다시 불거지게 됐다. HUG가 스스로 보증 여력을 늘릴 방안은 마땅치 않다. HUG는 집주인 대신 세입자에게 갚은 돈인 대위변제액이 전세사기 급증으로 늘어남에 따라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HUG는 지난해 역대 최대 적자인 3조8598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냈다. 올해 역시 지난 8월 말 기준 반환 보증 사업으로만 2조946억원의 손실을 내며 적자가 이어지고 있다.
대위변제액의 회수를 통한 재무상태 개선도 요원하다. 올해 8월 기준 대위변제하고 돌려받지 못한 잔액은 9조5869억 원에 달한다. HUG는 2~3년에 걸쳐 구상권 청구와 주택 경매를 통해 대신 갚은 돈을 회수하는데, 부동산 경기 침체와 전세 사기 급증으로 회수 속도가 느려지면서다. 실제 2019년 58%였던 대위변제액 회수율은 지난해 말 기준 14.3%로 꾸준히 떨어지는 추세다. 적자가 장기화하면서 자본이 계속 잠식될 것이란 전망이다.
세금으로 자본금 충당…'공기업 리스크' 결국 국민몫
보증 업무 중단을 막기 위해 세금이 더 투입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 국토부는 HUG에 연이어 자금을 투입한 바 있다. HUG는 국토부로부터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 3차례에 걸쳐 현금, 주식 등 5조839억원 규모의 출자를 받았다. 이후에도 대위변제액이 늘면서 보증 여력이 확보되지 않자 시장성 자금 조달까지 가능하도록 정관을 변경한 것이다.
국토부 역시 자금 수혈을 계속하긴 부담스럽다. HUG의 지분 72.85%를 보유한 국토부는 주택도시기금에서 HUG에 출자한 예산을 추후 배당을 통해 반환 받는다. 하지만 HUG의 적자가 이어지면서 2022년부터는 배당을 아예 받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지난 출자 당시 국토부가 기금운용계획 변경을 국회 심의 없이 추진해 지적을 받은 만큼 자본 확충을 계속 세금에 의존하기도 어렵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HUG는 대위변제금 회수율 하락에 대응하기 위해 전세 보증 수수료율을 올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HUG의 연구 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특정 보증 구간에서는 보증료율이 많게는 2배 이상 뛰는 방안도 제시됐다. 대규모 손실에 따른 피해를 고스란히 서민 등 전세 이용자가 본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HUG의 재무 상태 개선을 위한 근본적인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권대중 서강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최근 국토부와 금융위 간 정책대출 이견부터 시작해서 정부 부처 간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아 정책 엇박자가 계속 발생하는 것"이라며 "국민 기금으로 운영하는 공기업인 만큼 부처 간 소통을 개선해 HUG의 적자를 해소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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