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연속 ‘세수 펑크’…왜 ‘주택기금’까지 손대나

허인회 기자 2024. 10. 30.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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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채무 질 악화” 지적에도 외평기금 또 활용…주택기금까지 동원
“추경 외면한채 위태로운 대응” 비판…최상목 “여유 재원 활용, 확대하는 것”

(시사저널=허인회 기자)

정부가 2년 연속 역대급 '세수 결손' 사태에 '기금 돌려막기'로 대응하자 논란에 휩싸였다. '외환 방파제' 역할을 위해 조성된 외국환평형기금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동원하기로 한데 이어 청약저축 등으로 조성되는 주택도시기금의 일부까지 빼오기로 하면서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0월28일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종합감사에서 올해 세수 부족 대응책을 보고했다. 올해 본예산 대비 세수 부족분 29조6000억원에 대해 기금 여유분과 지방재원 감액, 통상적 예산 불용(不用) 등을 통해 대응하겠다는 계획이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세수 부족을 채우기 위해 동원하는 기금은 △외국환평형기금(외평기금) 4조~6조원 △주택도시기금(2조~3조원) △공공자금관리기금(공자기금·4조원) △국유재산관리기금 등 기타기금(3조원) 등 14조~16조원에 달한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0월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또 허무는 '외환 방파제'…"韓 외환정책 신뢰성 훼손"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외평기금을 건드리기로 한 점이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외평기금을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국세 수입 부족분 56조4000억원을 메우기 위해 외평기금 19조원을 활용한 바 있다.

외평기금은 원화가치를 안정적으로 지키기 위해 조성하는 기금이다. 투기적 외화 거래로 환율이 불안정해지는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외환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다. 정부는 외평기금 자산규모가 원화와 외화를 합쳐 작년 말 결산 기준으로 274조원이라 외환시장 대응엔 문제가 없다고 설명한다.

정부의 설명에도 우려의 목소리는 크다. 중동 분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국 대선까지 겹치면서 원-달러 환율은 1400원에 육박하고 있다. 대외적인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도 높아진 상황에서 일종의 통화정책인 외평기금 여력을 축소하는 것이 외환시장 투자자의 불안감만 높일 수 있어서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시장참여자가 외환정책과 상관없이 세수결손을 메우고자 외평기금의 자산이 감소한다는 시그널을 준다면 우리나라 외환정책의 신뢰성을 훼손하게 된다"고 비판했다.

재정에 악영향이란 지적도 있다. 국회예산정책처(예정처)는 '2023회계연도 결산 분석' 보고서에서 "일반회계의 공자기금 예수이자 미지급금에는 가산이자가 적용돼 향후 재정 부담을 가중할 수 있다"면서 "외평기금을 활용하는 과정에서 금융성 채무가 '적자성 채무'로 전환돼 국가채무의 질이 악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이 같은 지적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최 부총리의 발언을 보면 정부는 끝까지 외평기금 동원이라는 카드를 꺼내고 싶진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최 부총리는 9월26일 국회 기재위 현안보고에서 "외평기금과 관련해 20% 범위에서 기금운용계획 변경하는 것을 현재 단계에서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말한 바 있다. 지난해처럼 세수 펑크를 메우기 위해 외평기금을 동원하는 것은 선택지에서 배제하겠다는 의미였다. 그럼에도 세수 부족 사태를 메울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자 한 달 만에 말을 바꾼 셈이다.

정정훈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오른쪽 두 번째)이 9월2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2024년 세수 재추계 결과 및 대응 방향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승민 "추경 피하려 꼼수…위태로운 재정 운용"

주택도시기금을 동원하겠다는 대책에 대해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주택도시기금은 국민주택채권과 청약통장 납입금 등으로 재원을 조성해 주택구입자금 등을 지원하는 기금이다. 이를 놓고 무주택 서민들의 내집 마련을 위한 청약저축까지 갖다 쓰는 것이냐며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청약저축 월 납입 인정액을 10만원에서 25만원으로 올린 것도 기금 활용을 염두에 둔 조치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특히 최근 주택도시기금 건전성에 무리가 될 수 있다며 정책대출 문턱을 높인 상황에서 오히려 정부가 국민 주거를 위한 돈에 손을 댄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최 부총리는 10월29일 국회 기재위 종합감사에서 "청약저축 돈을 끌어다 쓰는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는 "여유자금 운용 방법의 하나로 공자기금 예탁을 해 오고 있는데, 이를 좀 더 늘리는 것"이라며 "주택기금의 여유 재원을 좀 더 활용하는 것을 확대한다고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사실상 '기금 돌려막기'의 근본 원인은 정부의 낙관적인 경기 전망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해와 올해 경제 전망을 '상저하고(하반기 경기 반등)'로 바라보고 세수를 추계했지만 완전히 빗나갔다. 여기에 잇단 감세 정책은 세입 기반을 더욱 악화시켰다는 분석이다. 특히 세수 예측 오류는 매번 반복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2년 동안 세수 예측 오차는 86조원에 달한다. 대응책 역시 추가경정예산 편성이라는 정공법을 배제하고 '건전재정'에 과도하게 매몰돼 '꼼수'로 대응하고 있다는 비판이 계속되는 상황이다.

'경제통'으로 알려진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10월29일 페이스북에 "윤석열 정부의 조세와 재정정책을 보면 앞뒤가 안 맞는 모순투성이"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아무리 급해도 외환시장의 안정이나 청약저축으로 조성한 서민주거복지용 기금까지 끌어다 쓰는 건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식의 무책임하고 위태로운 재정 운용"이라며 "국채발행이나 세입추경을 피하려다 보니 꼼수만 나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정부는 내년 세수가 올해보다 10% 넘게 늘어날 것이란 장밋빛 전망을 다시 내놓았다. 정부가 예상한 내년 국세 수입 규모는 382조4000억원이다. 법인세는 역대 최고인 88조5000억원이 걷힐 것이라고 봤고, 소득세도 128조원으로 사상 최고액을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역시나 국회 예정처의 분석은 다르다. 예정처는 '2025년 국세수입 전망'을 통해 378조5000억원 수준의 국세 수입을 전망했다. 정부 예측치보다 약 4조원 가량 부족한 셈이다. 내년도 경제성장 수준과 부동산 시장 회복 속도 등에서 예정처가 정부보다 어둡게 봤기 때문이다. 앞서 예정처는 올해와 지난해 예산안 심사를 앞두고도 모두 세수 결손 가능성을 제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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