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판 커지는 리걸테크, 국내 넘어 세계로
지난 10월 17일, 한일 양국 스타트업 생태계 이목이 쏠린 의미 있는 행사가 개최됐다. 올해 4월 도쿄에 이어 두 번째 '한일 스타트업 협력 포럼'이 서울에서 열린 것이다.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경제단체가 양국의 산업 협력을 다지기 위해 마련한 행사에는 일본 스타트업 10개사가 참여해 사업 설명회를 진행했다. 부푼 기대를 안고 열띤 모습으로 서비스를 소개하는 기업들을 보니 1회 행사에서 국내 리걸테크 중 유일한 참여 기업으로 선정돼 다양한 경제계 관계자들과 일본 진출에 대해 논의하던 때가 떠올랐다.
올해 정부는 벤처·스타트업의 글로벌 시장 진출을 핵심 과제로 꼽으며 관련 지원 정책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내년도 예산안을 편성하며 연구개발(R&D) 및 수출 지원, 글로벌 창업 허브 구축 등을 통한 글로벌 시장 진출 촉진 계획을 밝혔고, 상반기에는 미국, 프랑스, 싱가포르, 베트남에 이어 도쿄에 K스타트업 센터를 마련하며 한일 스타트업 교류 확대에 나섰다.
해외 진출은 신성장 동력을 확보할 절호의 기회다. 올해 초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발간한 '스타트업 트렌드 리포트 2023'에 따르면 이미 해외 진출 경험이 있거나 고려하고 있는 곳을 합하면 해외 시장 진출에 관심을 보이는 기업은 77%에 달한다. 리걸테크 분야에서도 아직 많지는 않지만, 로앤컴퍼니를 비롯해 최근 일본에 신규 서비스를 출시한 코딧 등 여러 기업이 해외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글로벌 진출을 꿈꾸는 기업은 많지만, 현지 시장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기까지 현실적으로 넘어야 할 산도 적지 않다. 특히, 리걸테크 산업의 경우 현지의 법률 시장 환경, 규제 상황 등을 면밀하게 검토해야 하므로 고려해야 할 사항이 더 많다. 그럼에도 더 넓은 시장을 향해 나아가는 것은 기업 성장 및 산업 발전 측면에서도 도전 가치가 충분하기에 지금도 해외 리걸테크 기업들은 적극적인 글로벌 진출을 통해 빠르게 사업을 확장하는 중이다.
대표적인 예가 2015년 영국에서 설립된 컨트랙트팟AI(ContractPodAi)다. 법률 인공지능(AI) 솔루션 및 계약 수명 주기를 관리하는 이 기업은 2018년 뉴욕에 북미 본사를 설립하며 일찌감치 해외 진출을 시도했다. 2021년에는 약 1억1500만달러(약 1594억원) 규모의 투자 유치에 성공하며 이를 바탕으로 아시아 태평양 시장에 진출했으며, 지난해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139% 성장을 기록했다. 최근 생성형 AI 연구·개발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회사는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아랍에미리트 등을 포함한 중동 및 아시아 태평양 지역 확장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시장 확대에 집중하고 있다.
또 다른 영국 리걸테크 기업 루미넌스(Luminance)는 리걸테크 본고장인 미국에서 사세 확장에 주력 중이다. AI 기반의 계약 절차 자동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는 2015년 설립, 2년 후 시카고에 본사를 세운 후 북미 시장 진출에 나섰다. 올해 상반기에는 4000만달러(약 554억원) 투자 유치에 성공하며 미국 진출 확대를 선언했다. 그 결과 루미넌스는 올해 8월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사기업 5000(5000 List of Fastest-Growing Companies in America)'에 이름을 올렸으며, '뉴욕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사기업(Fastest-Growing private company in New York)' 176위를 기록했다. 지난 9월 댈러스 사무실을 개설한 루미넌스는 미국 확장의 첫 단계로 댈러스와 뉴욕에 두 배로 투자하겠다는 포부를 밝히며 더 큰 성장을 꿈꾸고 있다.
아시아 리걸테크 기업 중 해외 진출을 활발히 펼치고 있는 곳은 일본의 리걸온 테크놀로지(LegalOn Technologies)를 들 수 있다. 2017년 창업한 회사는 AI 기반 계약 리뷰 서비스를 제공하며 일본 내 입지를 넓혀왔다. 그 후 2022년 소프트뱅크 비전펀드와 골드만삭스로부터 137억엔 (약 1241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며 해외 시장 계획을 밝혔고, 같은 해 9월에는 글로벌용 AI 계약서 검토 서비스를 출시하고 미국 시장에 진출했다. 올해 4월 기준, 글로벌을 포함해 리걸온의 유료 서비스 도입 기업은 5000개사를 돌파해 해외에서도 유의미한 성적을 거두는 중이다.
리걸테크 기업들의 해외 시장 공략 움직임이 본격화되면서 산업 발전에 대한 기대감도 한껏 고조되고 있다. 올해 9월 발간된 시장조사기관 포천비즈니스인사이츠(Fortune Business Insights) 보고서에 따르면 북미, 아시아, 중동 등 지역별 리걸테크 성장을 모두 긍정적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대한 분석이 눈에 띈다. 보고서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을 가장 높은 성장률이 기대되는 지역으로 꼽으며, 법률 연구, 문서 관리, 계약 분석, 검토 등에서 새로운 기술 사용 사례가 늘어남에 따라 빠르게 시장이 성장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동 및 아프리카는 정교한 법률 솔루션이 필요한 국가 간 거래의 허브로서 리걸테크가 복잡한 절차를 간소화하는 데 역할을 할 것이라 봤으며, 이미 주요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북미 시장도 꾸준히 성장이 촉진될 것으로 예측했다.
현재 리걸테크 산업은 북미 시장 중심으로 발전을 이루고 있다. 유니콘 기업 절반 이상이 미국에 있고, 글로벌 기업도 북미 시장을 사로잡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중이다. 그와 동시에 미국을 넘어 유럽, 아시아 등 지역 구분 없이 빠르게 시장 점유율을 늘리는 전략도 취하고 있다. 국경 없는 기술 경쟁이 리걸테크 산업에서도 이미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소리 없는, 그러나 불꽃 튀는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 이상 국내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국내 리걸테크 산업이 지금에 이르기까지 고난의 시간이 길었던 만큼, 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기업의 도전적인 시도와 정부의 제도적 지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적극적인 해외 진출을 통해 글로벌 도약의 초석을 다지고, 전 세계 K리걸테크가 우뚝 설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란다.
정재성 로앤컴퍼니 부대표·공동창업자 js.jung@lawcompany.co.kr
〈필자〉 고려대에서 산업공학과 금융공학을 전공으로, 경영학을 부전공으로 공부했다. 졸업 후 약 3년간 글로벌 컨설팅 회사 '맥킨지앤드컴퍼니'에서 경영 컨설턴트로 근무하고, 법률서비스 시장에서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변화를 일으키고자 2012년 김본환 대표와 '로앤컴퍼니'를 창업했다. 현재 로앤컴퍼니는 국내 1위 법률서비스 플랫폼 '로톡'을 비롯해 법률 정보 검색 서비스 '빅케이스', 국내 최초 법률가용 AI 어시스턴트 '슈퍼로이어' 등 법률서비스의 대중화와 선진화에 기여할 서비스를 다양하게 만들고 있다.
Copyright © 전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26년도 국가 R&D 예산안 연내 준비
- 400조 규모 퇴직연금 '머니무브' 시작된다
- 신세계그룹, 계열 분리 공식화…정유경 ㈜신세계 회장 승진
- 신한울 원전 찾은 尹 “안전 확인 원전, 가동할 수 있도록 제도 고쳐야”
- 美 대선 앞두고 금값 '최고가'… “내년에도 오를 듯”
- 퀄컴·Arm '반도체 신경전' 격화…12월 첫 재판 주목
- 현대차, 대형트럭 '엑시언트' 부분 변경…'DSM·ccNC' 新기술 무장
- 올해 제약바이오 매출 '1조 클럽' 뉴페이스…보령·차바이오텍 주목
- '중부권 최대'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차세대 사업 '원점' 재추진…의료IT 업계 '들썩'
- AIoT 혁신대상에 12개 기업…그렉터·지오투 장관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