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정부, 원화 표시 외평채 발행 위해 전자증권법 개정 추진
원·달러 환율 하락 대비, 도로 채워놔야 하지만
원화 외평채 발행, 국회 ‘공전’으로 깜깜무소식
외국환법 대신 ‘세입부수’ 전자증권법 개정 추진
정부가 원화 표시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 발행의 법적 근거를 갖추기 위해 ‘주식·사채 등의 전자등록에 관한 법률(전자증권법)’ 개정을 추진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애초 ‘외국환거래법’ 개정을 통해 올해와 내년에 38조원어치 원화 표시 외평채를 발행하려고 했는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법안이 표류하고 있어서다. 전자증권법 개정안은 정무위원회에서 의원 입법 형태로 발의됐다. 정부는 연내에 원화 외평채를 꼭 발행하고 싶어한다.
외평채는 외환시장의 안정을 위해 우리나라 정부가 발행하고 보증하는 일종의 국채다. 원·달러 환율이 상승하는 국면에선 ‘달러’ 표시 외평채를, 하락하는 국면엔 ‘원화’ 표시 외평채를 발행해 외국환평형기금(외평기금)에 쌓을 자금을 조달한다. 원화로 표시된 외평채는 2003년 외평채를 국고채와 통합해 발행하는 체제로 바뀐 후 지금껏 발행한 적이 없다. 이번 관련 법 개정은 20여년 동안 변화한 외환거래 환경에 맞춰 기술적 차원에서의 법적 정비가 필요해진 데 따라 추진되는 것이다.
30일 국회와 관계부처에 따르면, 박대출 국민의힘 의원(대표 발의) 등 13인은 지난 21일 전자증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이는 기술적으로 원화 외평채 발행을 가능하게 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박 의원은 지난 7월 10일 ‘외국환거래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한 바 있다. 이 역시 원화 표시 외평채를 발행하는데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법안이었다. 그러나 기재위 소위 구성 난항 등 국회의 공전으로 약 넉 달째 계류돼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기재위 통과가 요원해지자 정무위로 방향을 돌리면서 ‘2025년도 세입예산안 부수 법률안’으로 지정했다. 세입예산안 부수 법안으로 지정되면, 매년 11월 30일까지 심사를 마쳐야 하고, 그 기한이 지나면 그다음 날인 12월 1일에 바로 본회의에 부의된 것으로 간주하는 만큼, 통과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다. 정부 관계자는 “빠르면 12월 초 늦어도 연내엔 통과시켜 외평채를 실제 발행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원화 표시 외평채 발행을 서두르는 것은 2년째 반복된 대규모 세수 결손 상황에서 외평기금이 재차 ‘구원투수’로 등판한 문제와도 관련된다.
외평기금에는 원화 자산과 달러 자산이 혼재돼 쌓여 있다. 원화 가치가 하락(원·달러 환율 상승)할 땐 달러를 팔아 원화를 사고, 반대의 상황에선 원화를 팔아 달러를 사는 식으로 외환시장의 안정을 꾀하는 용도다. 정부는 세수 결손을 메우기 위해 외평기금에서 보유한 ‘원화’ 자산을 공공자금관리기금(공자기금)→일반회계로 넘겨 충당하는 메커니즘을 활용하고 있다.
지금처럼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에 육박하는 강(强)달러 상황에서는 원화를 쓸 일이 없기 때문에, 세수 결손 대응용으로 활용해도 괜찮다는 것이 정부의 시각이다. 기재부 관계자도 지난 28일 ‘2024년 세수 재추계에 따른 재정 대응 방안’ 백브리핑을 통해 “최근 환율 때문에 우려도 나오지만, 환율이 오른 상황에서 필요한 부분은 외화이지 원화가 아니기 때문에 외환 시장 안정화 역량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원화 강세에 대비해 이렇게 소진해 버린 원화 재원도 도로 채워놔야 하는 상황이다. 이를 보완하고자 기재부가 추진했던 것이 21년 만의 ‘원화 외평채’ 발행이다. 올해 예산안에도 18조원을 발행하겠다는 계획이 담겨 있고, 내년도 예산안에도 20조원 발행 계획이 명시돼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도 최근 ‘2025년도 예산안 기획재정위원회 분석’ 보고서에서, 내년도 원·달러 환율의 하락 압력 발생 시나리오를 들어 이 부분을 우려했다. 주요 전망 기관들은 내년 중 원·달러 환율은 상고하저의 하락 양상을 보이며 연평균 1290~1300원 내외를 나타낼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회 예정처는 “최근의 원화 재원 감소 요인이 시장 참가자들에게 ‘정부의 시장 대응 여력이 축소될 수 있다’는 신호로 작용할 수 있다”며 “국회 심의 과정을 통해 기금의 외환시장 대응 여력을 면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만약 외평채 발행이 미뤄지게 되면, 외환시장 안정에 필요한 원화 자금을 국고채 발행으로 간접 조달해야만 한다. 그런데 국고채는 장기채 비중이 높기 때문에 주로 1년의 단기물인 외평채를 발행했을 때보다 높은 이자를 지불해야 하는 ‘비용’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이런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정부가 의원 입법 발의 등으로 우회해 법 개정에 속도를 내고 있으나, 일각에선 최근 야당이 단독 처리한 ‘예산안 자동부의 폐지법’이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11월 30일까지 예산안 심사를 마치지 못할 경우, 정부 원안을 비롯해 이번 전자증권법과 같은 세입 부수 법안을 국회 본회의에 자동 부의하게 하는 제도를 폐지하자는 것이다. 지난 28일 국회 운영위원회는 야당 의원들만 참석한 가운데 해당 개정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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