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의 '마법 같지 않은' 얘기들 [웹소설 비평]
광주대 웹소설 창작연구팀 웹소설 비평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 1편
욕망을 드러내고 해소하는 웹소설
욕망 키우는 대신 안정 찾는 주인공
삶의 태도에 초점 맞춰진 전개
웹소설 독자는 자본주의 사회의 욕망을 품고 주인공을 통해 대리 만족하려 한다는 시선이 있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은 '돈'으로부터 해방되길 원하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독자들은 조금은 낯선 주인공의 '살아가는 법'을 지켜본다. 2편으로 나눠서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의 제목과 독자의 반응을 살펴봤다.
웹소설의 제목은 작품 내에 존재하는 여러 패턴 중 일부를 데이터화해 조합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그래서 웹소설에서는 제목을 통해 작품의 핵심 패턴을 읽어내는 게 가능하다. 「나 혼자만 레벨업」을 예로 들어보자.
이 제목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정보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이 작품에는 게임 요소(레벨 시스템)가 있다. 둘째, 이 작품에서는 오직 주인공만 레벨 시스템의 특권을 누릴 수 있다. 실제로 작품을 읽어보면, 주인공 혼자만 레벨 시스템의 특권을 누려 압도적 성과를 내는 것이 이 작품의 주요 패턴 중 하나다.
물론 이 패턴 하나만으로 「나 혼자만 레벨업」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순 없다. 회귀물, 네크로맨서물, 헌터물, 작품 초반 일용직 노동자와 유사한 주인공의 사회적 위치 등 제목으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패턴이 작품에 녹아있다. 하지만 이를 감안해도 웹소설에서 제목이 갖는 의미는 상당하다. 만약 웹소설의 제목이 작품의 패턴을 충실히 재현하지 못하고 있다면, 독자로부터 주로 댓글을 통해 즉각적인 피드백을 받을 것이다.
이로 인해 제목을 수정하는 경우도 꽤 있다. 웹소설의 제목을 작가 단독이 아닌 그 작품의 참여자(작가·독자·콘텐츠제공자·Con tents Provider 등)가 함께 정한다는 얘기다. 그렇기에 제목은 참여자들이 공인한 작품의 주요 패턴이라 할 수도 있다.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이라는 제목은 그런 의미에서 흥미롭다. 이 작품은 카카오페이지 판타지 분야에서 항상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작품으로 회차로는 1000화를 넘었다.
주인공 '이한'은 마법이 존재하는 중세풍 세계에 환생한 현대인으로, 「나 혼자만 레벨업」의 주인공처럼 치트(게임을 쉽게 만드는 명령어·cheat)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다. 그 재능은 바로 이한의 몸에만 존재하는 무한에 가까운 마력이다. 이한은 이 특권을 활용해 압도적인 성과를 낸다. 이는 분명 작품의 패턴 중 하나다.
그렇다면 왜 이 작품의 제목은 '나 혼자만 무한마력'이 아니라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일까. '마법학교'는 작품의 공간적 배경을 알려주는 정보, '마법사'는 주인공의 직업 정보다. 그렇다면 이 정보들과 조합된 '살아가는 법'이라는 키워드는 어떤 정보를 암시하는 걸까.
어떤 이는 '아포칼립스물(꿈도 희망도 없는 세계관)'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물론 작품 속 배경인 에인로가드(마법학교)가 학생들에게 가혹한 환경으로 묘사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아포칼립스적 요소를 강조하고 싶었다면 '살아남는 법'이라는 키워드를 쓰는 게 더 효과적이지 않았을까. '살아가는 법'은 생존의 문제를 넘어서 어떠한 삶의 태도를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남성향 웹소설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주인공은 '열혈'적인 삶을 지향한다. 그들은 열렬하게 성공을 갈망한다. 치트적인 능력을 얻어 안정적인 삶을 얻었음에도 계속해서 성공하려 한다. 남성향 웹소설의 편수가 기본 200화를 넘어가는 이유도 이런 주인공의 증식하는 욕망과 관련이 있다. 끊임없이 자신을 확장하고 파이를 키우려는 욕망. 이는 자본주의 사회가 품고 있는 욕망이다.
자본을 통해 끊임없이 자본을 불려 나갈 것, 성공을 통해 더 큰 성공을 이룰 것. 남성향 웹소설의 열혈 주인공들은 대부분 이런 자본주의 사회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과 동일시한다.
열혈 주인공들이 욕망을 채워나가는 과정을 보며 독자들은 대리만족을 느낀다. 이때 독자들이 느끼는 대리만족은 욕망의 충족이 아닌 욕구의 해소에 가깝다.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서만 충족될 수 있는 게 욕망이라면, 독자들은 웹소설이라는 매체를 통해 타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대신해 줄 캐릭터를 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을 욕구로 환원하고 싶어 한다.
웹소설 시장은 계속해서 확대되고 있다. 이는 실제의 삶에서 사회가 요구하는 광적인 욕망을 더는 감당하기 어려워하는 사람이 늘어났다는 신호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맥락에서 살펴보면, 이한 같은 유형의 캐릭터가 웹소설 시장에서 호응을 얻는 건 예견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이한은 일반적인 남성향 웹소설 주인공과는 달리 '열혈'이 아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는 사실 '열혈'이지만 자신은 '열혈'이 아니라고 믿는 냉소적인 캐릭터다.
이한은 불의의 사고로 사망한 대학원생이다. 작품 내에서 전생에 관한 언급은 거의 없다시피 하지만, 마법학교로 무대가 옮겨졌음에도 그는 여전히 현대인의 비대한 자아를 가지고 있다. 이한은 제국에서 손꼽히는 권세를 가진 워다나즈 가문에서 환생해 '아무런 고생 없이 평생 편하게 놀고먹을 수 있는 삶'을 기대한다.
하지만 그 기대는 곧 무너지고 만다. 워다나즈 가문은 첫째에게 가문의 모든 것을 물려주는 전통이 있었고 이한은 첫째가 아니었다. 가문은 아무것도 물려주지 않는 대신 이한에게 모든 배움의 기회를 주겠다고 약속한다.
이한은 '그 기회를 그냥 돈으로 환산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품지만, 감히 입 밖으로 내진 못한다. 가문을 물려받지 못한 이한에게 주어진 건 '배움'뿐이다. 물고기가 아닌 낚시질을 배우게 된 이한과 「마법세계에서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은 어떻게 이어질까. 그 연결고리는 2편에서 찾아보자.
김태연 광주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
이기호 광주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mc265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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