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 좌완부터 대구 출신 감독까지···추억과 역사로 가득한 2024 챔피언, KIA 타이거즈는 ‘낭만 야구’다

김은진 기자 2024. 10. 30.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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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영 인스타그램 캡처



정해영(23·KIA)은 지난 29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사진 한 장을 올렸다. 사진 속의 정해영은 하루 전, 삼성과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삼진으로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은 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환호하며 포수에게로 달려가고 있다. 그런데 사진 속 포수는 김태군(KIA)이 아닌 25번 정회열이다.

정해영은 익히 알려진대로 해태 포수였던 정회열 동원대 감독의 아들이다. 정회열 감독은 해태가 왕조로 불리던 시절의 포수로, 1993년과 1996년 해태의 한국시리즈 우승 확정 순간 포수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한국 프로야구 최초로 부자가 한국시리즈 우승 헹가래 투수와 포수로 탄생했다.

정회열 감독은 은퇴 이후 타 팀에서 코치 생활을 하다 2011년 KIA에 배터리 코치로 돌아온 뒤 수석코치와 2군 감독 등을 역임하며 KIA에 있었다. 이번 KIA의 우승 직후 “나는 조연이었지만 아들은 주연급으로 기여해 뿌듯하다”고 했다. 그러나 야구를 시작한 뒤 초등학생, 중학생 시절 아버지의 직장인 KIA 야구장에 왔었던 정해영에게 아버지는 늘 가장 큰 영웅이었다. 생애 첫 우승을 경험한 정해영은 감동의 순간 아버지를 잊지 않았다. 삼성을 꺾고 우승했던 1993년의 아버지 사진을 자신의 사진과 합성해 “아빠 우승이에요!”라고 쓰고 같이 축하했다.

KIA 포수 김태군이 28일 한국시리즈 우승 확정 뒤 마무리 정해영을 끌어안고 울고 있다. KIA 타이거즈 제공



스물세살 어린 투수가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의 젊은 아버지를 자신과 연결시키는 고리는 타이거즈 우승의 역사다. KIA는 해태의 ‘V9’ 역사를 이어받아 3차례 더 우승하며 ‘V12’를 만들었다. 긴 우승 역사는 젊은 선수들에게도 자부심으로 이어지고, 요즘 보기 드문 낭만이 넘쳐난다.

2017년 2차전에서 1-0 완봉승을 거둔 양현종은 당시 9회초 2사후 8구 연속 파울을 걷어낸 두산 양의지와 치열한 카운트 싸움을 했다. 이에 포수 김민식이 10구째에는 구석으로 유도했지만 양현종은 “빠져 앉지 마”라고 외치며 다시 포수를 가운데 앉혔다. 대놓고 정면승부를 한 양현종은 11구째에 삼진을 잡아내 120구 투구로 완봉승을 완성했다.

KIA 곽도규가 28일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투구를 마치고 내려오며 유니폼을 찢어 이의리 티셔츠를 보여주고 있다. KIA 타이거즈 제공



이 낭만야구는 2024년에도 이어졌다. 양현종은 이번 2차전에서 경기 시작과 함께 17구 연속 직구만 던졌다. 적극적으로 휘두르는 삼성 타자들을 힘대힘으로 상대했다. 양현종은 “초구에 반응 보고 공격적으로 나오기에 공격적으로 대응했다”고 말했다.

낭만적인 포수 김태군이 뒤에 있다. 김태군은 “상대가 적극적으로 나오니까 굳이 변화구를 던질 필요가 없었다. 직구만 던지라고 했다. 한국시리즈다. 가을야구에서는 과감하게 하는 게 가장 좋은 것 같다”고 했다.

2004년생 좌완 곽도규는 한국시리즈에 함께 하지 못한 선배 투수 이의리를 퍼포먼스로 끌어들였다.

팔꿈치 수술을 받고 재활 중인 이의리는 2년차인 곽도규가 가장 믿고 따르는 선배다. 모자에 이의리의 등번호 48을 적고 뛰는 곽도규는 시리즈 전 “날 위해 심장을 치는 세리머니 한 번만 해줘”라고 한 이의리의 가벼운 한 마디를 잊지 않았다.

4차전에서 이닝을 병살로 끝낸 뒤 모자를 돌려쓰고 KIA 더그아웃을 바라보고, 5차전에서는 아예 ‘이의리 셔츠’를 제작해 안에 입고 있다가 등판을 마치고 내려오며 유니폼을 찢었다. 한국시리즈의 열기와 우승 직전 분위기에 빠져 대부분이 잊고 있던 이의리 이름 석 자를 곽도규가 다시 떠올리게 만들었다.

KIA 이범호 감독과 에이스 양현종이 28일 한국시리즈 우승 확정 뒤 기뻐하고 있다. KIA 타이거즈 제공



KIA 낭만 야구의 절정은 37년 만의 광주 우승이 완성시켰다. 1987년 이후, 그 사이 8번이나 더 우승을 했지만 한 번도 하지 못했던 홈에서 우승 확정을 2024년의 KIA는 이룰 수 있었다. “광주, 우리 시대의 가장 큰 아픔을 야구로 극복한 도시”라는 MBC스포츠플러스 한명재 캐스터의 우승콜은 많은 광주 KIA팬의 가슴을 더욱 적셨다.

결전을 앞두고 소속 팀의 연고지 역사까지 챙길 수 있는 감독은 많지 않다. 이범호 KIA 감독은 5차전을 앞두고 “KIA에서 14년 함께 하면서 꼭 이뤄드리고 싶었던 것은 광주에서 한 번밖에 없었던 우승 트로피를 하나 더 가져오는 것이었다”며 광주에서 한국시리즈 우승 확정에 큰 의미를 두었다.

이범호 감독은 대구 출신이고 한화에서 데뷔했지만 사실상 KIA 프랜차이즈스타다. 2009년, 2017년에 이어 올해까지 세 번의 KIA 우승을 함께 한 광주토박이 양현종이 늘 소원했던 ‘광주에서 우승’을 이범호 감독도 최후의 목표로 삼고 달렸다. 그리고 이뤄냈다.

우승 뒤 하루 쉰 KIA 선수들은 30일 다시 모였다. 광주 인근, 전남 담양에서 1박2일 동안 단합 시간을 갖기로 했다. 30일 프리미어12 대표팀에 합류하는 김도영, 정해영, 전상현, 최지민, 곽도규, 한준수, 최원준은 아쉽게 함께 하지 못하지만 선수들은 모처럼 같이 먹고 웃고 이야기나누며 함께 한 첫 우승의 뒷풀이를 하기로 했다. 이 역시 낭만 야구다.

김은진 기자 muldero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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