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살 외동딸 두고 혼인신고도 못하고 자원입대 6·25 전사자 …친딸 “형언할 수 없는 감정 밀려와”

정충신 기자 2024. 10. 30. 11:22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국가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세 살배기 외동딸을 남기고 6·25전쟁에 자원입대했다가 전사한 호국영웅의 신원이 30일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고인의 신원이 확인됐다는 소식을 접한 외동딸 송재숙 씨는 "6·25전쟁에서 아버지가 전사하신 후, 당시 어머니와 혼인신고가 돼 있지 않아 호적에 올릴 수 없어서 큰아버지 밑에 호적을 올리고 평생을 살아왔다"며 "유전자 검사를 통해 부녀관계가 확인돼 친아버지를 찾게 되니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온다. 국가와 국방부가 정말 좋은 일을 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라고 소감을 말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송영환 일병… 11년 만에 친딸 유전자 검사로 신원확인
1950년 12월, 자원입대… 9사단 소속 북한군과 싸우다 1951년 3월 전사
친딸 송재숙씨 “친아버지 찾게 돼 형언할 수 없는 감정 밀려와”
고 송영환 일병 유해 .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제공

국가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세 살배기 외동딸을 남기고 6·25전쟁에 자원입대했다가 전사한 호국영웅의 신원이 30일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아버지 전사로 인해 큰아버지 소생(所生)으로 출생신고된 딸이 유전자 검사에 참여해 73년 만에 친부를 찾게 됐다.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단장 이근원)은 2013년 강원도 동해시 망상동 일대에서 발굴된 유해의 신원을 6·25전쟁 당시 정선 전투에서 총상을 입고 인근 군(軍)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전사한 고(故) 송영환 일병으로 확인했다. 이로써 2000년 4월 유해발굴이 시작된 이후 신원이 확인된 국군 전사자는 총 238명으로 늘어났다.

고인의 신원확인은 지역주민 제보를 시작으로 국군 장병들에 의한 유해발굴, 병적자료 검증을 통한 기동탐문, 유가족의 유전자 시료채취 등 다양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국유단은 2013년 9월, 제보자의 아버지가 전쟁 당시 선산에 국군 전사자를 묻었다는 증언을 바탕으로 유해발굴을 진행한 결과 머리뼈부터 발뼈까지 대부분의 골격이 온전히 남아있는 완전 유해 6구와 부분 유해 1구를 수습했다. 현재까지 이 지역에서만 고인을 포함해 2014년 이종용·김영탁 일병 등 총 3명의 신원이 확인됐다.

이후 2020년 6월, 고인의 외동딸 송재숙(76) 씨가 아버지의 유해라도 찾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국유단을 방문해 유전자 시료를 채취했지만, 당시 유전자 기술로는 가족관계를 확인할 수 없었다. 이에 국유단은 과거 유전자분석이 이뤄진 유해와 유가족의 유전자를 더욱 정확도가 높은 최신 기술로 재분석해 유해를 발굴한 지 11년 만인 올해 10월 가족관계를 확인했다.

한편, 고인의 남동생 고 송의환 일병도 전쟁이 발발하자 1950년 11월, 형보다 먼저 입대해 제2사단 소속으로 참전 중 1951년 2월, 영천·보현산 일대 공비토벌 작전 중 실종·전사한 것으로 추정되나 안타깝게도 고인의 유해는 아직까지 수습되지 못한 채 이름 모를 산야에 묻혀 있다.

고인은 국군 제9사단 29연대 소속으로 여러 전투에 참전했으며, ‘정선 전투’에서 총상을 입고 인근 군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전사했다. 고인은 1924년 6월,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에서 4남 3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유가족 증언에 따르면, 고인은 고향에서 부모님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이어가다가 서울 용산으로 이사해 직장 생활을 했다.

그러던 중 6·25전쟁이 발발하자, 나라를 지키기 위해 아내와 세 살배기 외동딸을 남기고 1950년 12월 제2훈련소에 자원입대했다. 고인은 제9사단 29연대 소속으로 경북 봉화, 강원 평창 등 여러 격전지에 참전했다. 이후 정선 전투에서 북한군과 맞서 싸우다 총상을 입고 제1이동외과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1951년 3월 17일 스물여섯의 나이로 장렬히 전사했다. 고인은 전투 공적을 인정받아 1954년 9월, 화랑무공훈장을 수여받았다.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는 유가족의 요청에 따라 30일 경기도 안양시에 있는 유가족 자택에서 열렸다. 고인의 신원이 확인됐다는 소식을 접한 외동딸 송재숙 씨는 “6·25전쟁에서 아버지가 전사하신 후, 당시 어머니와 혼인신고가 돼 있지 않아 호적에 올릴 수 없어서 큰아버지 밑에 호적을 올리고 평생을 살아왔다”며 “유전자 검사를 통해 부녀관계가 확인돼 친아버지를 찾게 되니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온다. 국가와 국방부가 정말 좋은 일을 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라고 소감을 말했다.

정충신 선임기자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