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업 포수·단신 타자·개명 유망주…타이거즈는 또 다른 ‘업셋’
#김태군
몇몇 팬은 ‘식물 타자’라고 조롱했다. 블로킹, 프레이밍(미트질) 등 포수 수비에 비해 공격 지표가 절망적이었다. 그가 타석에 들어서면 팬들은 기대치를 한껏 낮추고는 했다. 엘지(LG) 트윈스 때는 조인성(은퇴), 유강남(현 롯데 자이언츠), 엔씨(NC) 다이노스 때는 양의지(현 두산 베어스), 삼성 라이온즈 때는 강민호에 밀리며 백업포수 이미지가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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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씨가 우승했던 2020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는 들었으나 양의지에 밀려서 단 한 타석에도 서지 못했다. 하지만 올해는 정규리그 때도 쳐보지 못한 만루홈런을 한국시리즈(4차전)에서 기록하는 등 그토록 원하던 ‘우승 포수’가 됐다. 그는 2024년 야구가 끝나는 날, 팀 마무리 투수 정해영과 함께 그라운드 위 가장 높은 곳, 마운드 위에서 포옹했다. 김태군은 “‘식물 타자'가 아니라는 것을 결과로 보여주고 싶었다. 훈련 과정이 혹독하고 힘들었지만, 그런 과정이 있어서 지금의 모습이 나오는 게 아닐까 한다”고 했다.
#김선빈
그의 키 165㎝. 2008년 처음 프로 입단했을 때 “너는 키가 작아서 안 된다”, “너는 한계가 있다”라는 말을 종종 들었다. 여러 해 동안 그는 리그에서 ‘가장 키 작은 선수’로 등재됐다. 2009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는 들지 못했다. 팀은 우승했지만 “화나고 억울해서 리모컨을 집어던졌다.”
2017년에는 타율 0.370으로 활약했으나 양현종, 이범호(현 KIA 감독) 등에 밀려 우승 조연에 그쳤다. 하지만, 올해는 당당히 최우수선수(MVP)가 됐다. 1~5차전 17타수 10안타(타율 0.588)로 물오른 타격감을 뽐냈다. 김선빈은 말했다. “야구라는 스포츠는 신체 조건도 중요하지만, 제가 한국시리즈 MVP를 받아서 그 편견을 깬 것 같다. 키 작은 선수들에게 큰 용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KBO리그에는 현재 김선빈보다 작은 김성윤, 김지찬(이상 163㎝)이 있다. 이들도 삼성 소속으로 한국시리즈를 치르면서 김선빈이 시리즈 최고의 선수가 되는 것을 지켜봤다.
#김도현
‘김이현’으로 불렸던 한화 시절에는 그저 유망주였다. 1, 2군을 오갔다. 구속이 나지 않은 게 컸다. 2022년 기아로 트레이드 됐다. 이름을 ‘김도현’으로 바꿨으나 성적은 나아지지 않았다. 하지만 현역으로 군 복무를 한 뒤 변했다. 군대에서 웨이트 트레이닝과 러닝을 꾸준히 하고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투구 영상을 많이 본 게 구속 향상으로 이어졌다. 이제는 평균 구속이 시속 150㎞를 넘나든다.
지난 2월 제대를 한 뒤 그는 2군에서 안정된 구위로 이범호 감독에 의해 콜업됐고, 윤영철이 부상으로 선발 로테이션에서 빠져 있을 때 대체 선발로 훌륭히 자리를 메웠다. 올해 한국시리즈에서는 포스트시즌 등판이 처음이었는데도 2경기 3이닝 1피안타 3탈삼진 무실점의 성적을 냈다. 5차전 때 선발 양현종의 뒤를 이어 등판해 위기를 틀어막으며 기아는 우승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었다. 2000년생인 그는 작년 이맘 때 군인 신분이었다. 지금은 타이거즈의 든든한 미래다.
#타이거즈
작년부터 팀이 흔들렸다. 개막 직전 장정석 단장이 옷을 벗었다. 박동원(현 LG 트윈스)에게 지속적으로 에프에이(FA) 뒷돈을 요구한 것이 드러났다. 부랴부랴 심재학 단장을 새롭게 영입했다. 올해 1월말에는 김종국 감독이 배임수재 혐의로 검찰에 기소를 당했다. 스프링캠프를 앞두고 그야말로 날벼락이었다. 2월 중순에야 내부 승진으로 이범호 타격코치를 사령탑으로 앉혔다.
정규 시즌도 험난했다. 시즌 내내 부상에 시달렸다. 완전체가 되려고 하면 누군가 또 다쳤다. 그나마 ‘잇몸’으로 버티면서, 1위 자리를 위협하는 2위 팀들을 상대로 9할 승률(18승2패)을 거뒀고 악착같이 1위를 사수했다. ‘타이거즈 한국시리즈 불패’ 기록도 ‘12’로 늘렸다. 타이거즈에 앞에 ‘준우승’이란 말은 없다.
사연 없는 가을야구는 없다. 올해도 만년 2인자에서 정상 포수가 되고, 신체적 편견을 깨부수며, 바뀐 이름으로 재탄생하며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낸 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온갖 고난과 시련에도 끈끈하게 뭉쳐서 꿋꿋하게 전통을 지켜낸 팀이 있었다. 2024년 가을은 그렇게 저물었다. 처절함이 모여서 간절함을 기어이 이뤄내면서.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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