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韓-우크라, 직접적 이해관계자”…한반도 지형 중대 변화
15㎜ 포탄 지원 가능성…우크라 전쟁 직접 관여 신호탄
‘특수작전통’ 北김영복 전선 이동…軍실전능력 제고 기여
러 반발·美 대선 등 고려해야…한미 대 북러 블럭 가시화
[헤럴드경제=최은지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한국과 우크라이나가 “러북 군사밀착의 직접적인 이해관계자”라고 규정하면서 한반도 안보 지형의 중대한 변화를 가져오는 기점이 될 것으로 평가된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한반도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무기 지원을 시작으로 관여하겠다는 뜻을 내포한 것으로 해석된다.
윤 대통령은 전날(29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전화통화에서 “우리의 안보를 위협하는 러북의 군사적 야합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며 “앞으로의 전장 상황을 면밀히 관찰하면서 실효적인 단계적 대응조치를 취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통화는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 이후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첫 통화다. 그동안 국제사회와 연대를 중심으로, 살상무기 지원 불가 방침에 따라 우크라이나에 인도적 지원 및 재건에 기여하겠다는 정부의 원칙을 바꿔 우크라이나 전쟁에 직접 관여를 공식화한 것으로 평가된다.
정부는 우크라이나의 요청에 따라 15㎜ 포탄 지원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홍장원 국가정보원 1차장을 단장으로 하는 한국 대표단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와 유럽연합(EU)에서 정보를 공유한 후 우크라이나를 방문한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에 감사를 표하며 대통령 특사를 보내겠다고 밝혔다. 무기 지원 논의가 구체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은 북한군의 파병이 우리 안보에 위협이라는 인식에 대해 “러시아가 북한에 민감 군사기술을 이전할 가능성도 문제지만, 6·25 전쟁 이후 현대전을 치러보지 않은 북한이 우크라이나전에서 얻은 경험을 100만이 넘는 북한군 전체에 습득시킨다면 우리 안보에 커다란 위협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이 대규모 병력을 이동시킨 것은 사실상 이번이 처음으로, 실전 경험이 없는 북한군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경험을 쌓고 이후 본국 군부대에 능력을 배양시키는 것은 한반도 안보에 직접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국정원은 전날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파병된 폭풍군단(특수작전군) 군인의 경우 10대 후반도 일부 있고, 주로 20대 초반이 많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기본적으로 받아야 할 훈련은 받았다고 봐야 하기 때문에 전투능력을 나쁘게 평가해서는 안된다”면서도 “우크라이나 전쟁 자체가 현대적인 특성을 갖고 있어서 경험이 없는 북한 군인의 전투력에 대해서는 미지수의 측면이 있을 수 있다”고 보고했다.
국정원은 김영복 북한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부총참모장이 러시아에 입국해 쿠르스크 전선으로 이동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특수작전계통에서 최고 지위를 갖고 있는 김영복은 러시아군 지휘부와 협의하고 본국과 소통하는 역할을 우선 맡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가 특수작전계통에 특화돼 있고, 여기에 실제 전쟁에 참전한 경험이 더해지면 향후 북한군의 실전능력을 제고하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 반발·미 대선…반대급부 우려도=우리 정부는 지난 6월 북러가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을 체결하자 이를 규탄하며 무기지원 문제를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우리는 상응하는 결정을 내릴 것이고, 그것은 아마 한국의 현 지도부가 달가워하지 않는 결정일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이 이번 파병으로 북러 조약 4조를 이행한 선례를 만든 만큼, 향후 한반도 유사시 러시아의 개입을 요청할 환경을 조성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조약 4조는 ‘쌍방 중 어느 일방이 개별적인 국가 또는 여러 국가들로부터 무력 침공을 받아 전쟁 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타방은 지체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지원을 제공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 정부의 살상무기 지원이 국익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 신중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조언도 나온다. 러시아의 반발을 오롯이 감당해야 하며, 향후 미국 대선 결과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당선시 우크라이나 전쟁의 조기 종식을 공언해왔고, 실제 당선될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무기지원을 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되느냐는 지적이다.
정부의 원칙이 바뀌는 중대한 문제인 만큼 여론도 고려해야 한다. 한국갤럽이 지난 22~24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비군사적 지원에만 한정해야 한다’는 응답이 66%였고 ‘어떤 지원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응답도 16%였다. 무기 등 군사적 지원에 찬성한 응답은 13%였다.(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p, 응답률은 12.4%. 자세한 조사 개요와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
전문가들은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의 발언에 주목했다. 한국의 살상무기 지원을 바랐던 우크라이나가 폴란드를 통해 우회적으로 한국의 무기를 확보하려 하자 두다 대통령은 “우리 납세자 호주머니에서 나온 수십억 즈워티(폴란드 화폐)로 구매한 무기를 다른 누구에게 넘기는 시나리오는 없다”며 “내가 대통령인 한 (한국산) 무기는 폴란드의 안보와 국방을 위해 사용돼야 한다”고 밝혔다.
▶한미 대 북러…“분단 이래 한반도 최대 전략적 지형 변화”=우리 정부는 미국으로, 북한은 러시아로 향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리는 제9차 한미 외교·국방(2+2)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출국했다. 최선희 북한 외무상은 28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 30일 모스크바에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 등을 만나 파병 문제를 논의한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의도한 대로 ‘한미 대 러북’ 동맹 블록이 가시화된다면 분단 이래 한반도 및 동북아에서 최대 전략적 지형의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며 “한미동맹의 통합억제력에 대응한 러북 군사동맹에 입각해 협력이 가시화한다면, 동북아 및 한반도 안보 정세의 불안정성은 한동안 크게 요동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silverpap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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