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플레이션 시대 식량은 무기… 主食, 쌀에서 5곡으로 확장해야”[현안 인터뷰]
핵무기 있어도 식량 없인 못 버텨
식량자원 확보가 선진국 기준 돼
통계기반 한 계획 생산 전환해야
온라인 도매로 유통단계 줄이고
재해보험 지원비율 확대도 추진
식품 수출은 농업영토 넓히는 길
비관세 장벽 대응 강화 지속 노력
인터뷰=박수진 차장, 정리=구혁 기자
올초 금(金)사과에 이은 올가을 금배추 파동은 기후변화와 식량 위기가 우리 일상생활까지 깊숙이 침투했음을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였다. 이상기후로 농산물 생산이 급감하고 물가가 치솟는 ‘기후플레이션’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주요국들은 식량 안보 사수를 위해 빗장을 걸어 잠그기 시작했다. 평균 80%가량의 곡물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는 이제 ‘뉴노멀’이 된 기후위기에 특히 취약한 실정으로 특단의 대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25일 대전 서구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대전세종충남지역본부에서 홍문표(77) aT 사장을 만나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안정적인 생산·유통기반 마련과 순항 중인 K-푸드 수출 활성화 지속 복안 등 aT의 7대 추진 과제(저탄소 친환경 농업전환·기후변화 대응·저온비축 유통체계 구축·유통단계 축소·5곡 육성·스마트팜 활성화·해외수출 확대)에 대해 들어봤다.
―지난 8월 취임 후 2개월이 지났는데 소회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이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다. 가장 중요했던 건 역시 ‘밥상물가’였다. 배추·사과·배 등 농산물 가격이 전년 대비 50∼60%씩 올라버리니 aT 사장으로서 상당히 부담이 됐던 게 사실이다. 정치적·사회적 판단은 되지만 실무적인 건 우리 aT 직원들이 가장 잘 알지 않나. 나주 본사와 서울을 오가며 본사 임직원들, 국내 11개 지사, 해외 12개국 18개 지사를 통해 세세하게 동향을 보고받았다. 정치할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잘 모르면서 얘기하는 건 국민을 속이는 거다. 취임해서 한두 달 안에 모든 걸 다 알 수는 없다. 지금도 모르는 게 많다. 먹거리 전담기관인 aT가 최선을 다해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 대책을 세우는 데 중점을 두고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이상기후에 따른 식량위기 우려가 크다. 안정적 수급을 위한 비책이 있나.
“기후변화로 농업생산 변동성이 어느 때보다 커지며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부족한 식량자원을 누가 먼저 확보하고 새로운 농어업 자원을 개발·육성하는지가 선진국의 기준이 될 거다. 기후위기는 점점 악화할 거다. 오늘의 현상보다 어려우면 어려워졌지 앞으로 좋아질 가능성이 낮다. aT가 주도적으로 지난 9월 10일 ‘기후변화 대응 수급 태스크포스’(TF)를 꾸린 이유다. TF를 통해 단기적으로는 물가안정을, 중장기적으로는 기후·인구·소비변화에 대응한 선제적 수급안정 종합대책을 수립해 이행해나가겠다.”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우선, 기후변화에 맞는 신품종 개발과 품종 개량에 나설 예정이다. 우리나라가 상당히 늦다. 내가 6월에 통화해보니 일본만 해도 이미 기후변화를 이길 수 있는 11∼13개의 신품종을 개발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6개월 걸려 재배되는 농산물을 3개월 안에 속성 재배할 방법을 찾아 이모작이 가능한 환경을 조성하도록 관계기관과 협의할 계획이다. 태풍·폭염·폭우 등 재해로 피해를 입은 농가에 대한 재해보험 지원비율이 확대될 수 있도록 정부에 건의해 제도적 보완도 추진할 방침이다. 전략형 비축창고 구축과 공기제어(CA·Controlled Atmosphere) 기술개발도 중요하다. 강원 고랭지 배추, 전남 양파 등 품목별 주산지에 따른 비축창고 건립·운영으로 이상기후에도 장기보관이 가능한 거점을 마련하고 쌀 때 사서 비쌀 때 방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생각이다. 네덜란드·스위스·덴마크 이런 국가들은 고랭지 채소를 생산과 동시에 바로 저온창고에 넣어 3년씩 보관한다고 한다. 지금 우리나라 기술력으로는 1년 정도 보관이 가능한데 이 정도 갖고는 기후변화 대응이 불가능하다. 강원 고랭지 농산물이라 해도 가락시장에 와서 온도가 25∼30도까지 올라가면 맛이나 당도가 떨어지게 된다. CA 저장기술 기반 저온유통체계로 장기 저장 시에도 신선도와 품질이 유지돼 소비자들이 저장 농산물을 흔쾌히 구매해 사용할 수 있도록 품질유지 기술을 개발하는 것도 주요 과제다. 아울러 스마트팜 농산업 활성화로 사계절 농업을 실현해 기후나 계절에 상관없이 균일한 품질과 공급이 이뤄지도록 하겠다.”
―말씀하신대로 세계 각국이 식량 사수에 나서고 있다.
“식량 개념 자체를 바꿔야 할 때다. 전쟁 후 우리나라에서 식량이란 건 배고파서 먹는 것이라는 개념이었다. 이를 좀 더 고급화한 게 생명산업이다. 그러던 것이 안보산업이라는 용어로 발전됐고 지금은 식량은 곧 무기라는 개념으로까지 확대됐다. 올 초 덴마크·뉴질랜드·네덜란드 등 농업 선진국에선 식량을 무기라고 공표했다. 반면 우리 사회는 아직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평균 식량 자급률이 19.8%에 불과한 실정이다. 쌀만 105%다. 이제 쌀·밀·보리·콩·옥수수 5곡을 식량, 주식 개념으로 가져가야 한다. 쌀만 먹고 살 수 있겠나. 5곡을 식량 개념으로 가져가면 그게 바로 무기가 된다. 핵무기가 있어도 식량이 없으면 못 버틴다. 과거 북한은 식량이 떨어지면 다른 사회주의 국가에서 빌렸다. 하지만 지금은 그 나라들도 식량이 부족하니 북한이 요구할 때 줄 수가 없다. 반면 미국과 쿠바는 과거 앙숙이었지만 미국은 지금 쿠바 농산물을 거리낌 없이 사 먹는다. 기후변화 앞에선 정적이란 개념이 없어지는 거다. 우리나라는 이상기후로 태풍 한 번 불면 재난상황이 된다. 다각화는 기후플레이션과 식량수급 불안정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국민 생존권을 보장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쌀 중심 재배에서 타작물 재배로 이동할 수 있도록 정책적 유도가 필요하다.”
―강조하고 계신 ‘통계농업’이란 무엇인가.
“통계 기반 농업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미다. 아직까지도 우리나라에서는 올해 어떤 지역에서 고추 농사가 잘됐다 그러면 내년에 너도나도 고추를 심는다. 그러다 잘못되면 중간에 갈아엎고 난리가 난다. 통계농업을 하면 이를 방지할 수 있다. 배추를 예로 들어보면 올해 우리나라 배추 수요를 미리 조사해 보는 거다. 10만t이라고 점검 결과가 나오면 17개 시도에 공고를 낸다. 경상도든 전라도든 얼마씩 하겠다고 접수가 되면 전국에서 고루 재배가 되도록 정부가 시스템을 만들어주는 거다. 만약 과잉생산되면 정부가 수매해주고 모자라면 수입하고 이런 식으로 70∼80%는 통계기반의 계획생산으로, 나머지 20%는 소규모 생산 농산물로 유통하는 거다. 이렇게 되면 기후변화에도 대응할 수 있다.”
―산지 가격과 소매 가격 격차도 문제로 꼽힌다.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얘기했듯이 유통단계를 확 줄여야 한다. 지금은 5∼6단계나 된다. 생산자가 있고 중간상이 있고 소매상이 있다. 그걸 2∼3단계로 줄이려는 거다. 핵심은 온라인 도매다. 우리 공사가 지난해 세계 최초로 온라인 도매를 시작했다. 가령 토마토를 생산했다 치자. 그럼 온라인에서 생산자가 누구고, 맛은 어떻고 무게는 얼마나 되고 이런 걸 다 공개하는 거다. 여기에 그 지역 시장·군수가 보증을 해주면 신뢰도도 확보가 된다. 이런 제도가 보편화하면 유통단계를 최대 1단계까지 줄일 수 있다. 농수산물 온라인 도매시장을 활성화하고 동시에 지역별 직거래 공판장을 개설해 온·오프라인 직거래를 확대하면 산지 농산물 유통 비효율 문제를 해결하고 유통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이익이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모두 돌아갈 수 있는 셈이다.”
―K-푸드 열풍이다. 수출 활성화 흐름을 이어가기 위해 어떤 방안이 필요한가.
“단순히 수출로만 이해하면 안 된다. 농작물 식품 수출은 결국 농수산 식품 영토를 넓히는 거다. 내수 기업의 수출 기업화로 신규 수출기업을 육성하고 기업별 맞춤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대·중소기업 협업모델을 확산하고 비관세장벽 대응도 강화해야 한다. 개별 기업 차원에서 대응이 어려운 검역·통관·안전성 규제 등 비관세 장벽을 완화하도록 각국이 논의해야 한다. 기후변화로 인해 자급자족이 사실상 어렵다. 국제적으로 같이 먹고 살아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 정부가 선도적으로 나서야 한다. 수출시장도 다변화해야 한다. 지금은 일본·중국·미국이 수출시장의 46%를 차지하고 있다. 인도·중동·중남미 등 10개국 이상은 (비중을) 더 늘려야 한다. 지금도 수출국 수는 많은데 양적인 측면에서 적다. 정부 지원이 바탕이 돼야 한다. 시골 가면 양질의 농산물 식품을 만드는 소상공인이 많다. 정부가 지원해주면 바로 효과가 날 거다. 딸기·포도·배 등 기후변화 대응 신품종 수출 농산물과 건강기능식품 등 고부가가치 유망품목도 지속 발굴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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