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 싫어" 화장품 겹겹이…벌써 '젊은 피부' 찾는 어린이들
[편집자주] 달고 짠 '마라탕후루'부터 유튜브 '숏츠' 등 도파민을 좇던 젊은 세대가 달라졌다. 전문적이고 세세한 '건강관리'와 천천히 나이 들어가는 '저속노화'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 저속노화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유통업계는 원물 재료를 강화한 건강식품부터 제로당, 알콜음료까지 다양한 제품을 선보인다. 뷰티업계에선 '슬로에이징' 캠페인이 벌어진다. 떠오르는 '저속 노화' 트렌드와 시장을 조명하고 실제로 가능한지, 과도한 욕구는 아닌지 함께 짚어본다.
"요즘에 나온 러닝화 계급도를 보면서 제가 목표하는 거리에 맞는 쿠션감 등을 고려해 제품을 샀는데 아주 만족스러워요."
러닝(달리기)의 매력에 푹 빠진 직장인 김정호(29)씨는 최근 러닝화를 3켤레 구매했다. 헬스장에서 신을 제품부터, 단거리 마라톤 경기를 위한 제품, 산책용을 큰맘 먹고 마련한 것. 김씨는 "러닝을 하다 보면 기록 단축에 욕심이 생겨 러닝화에 투자하게 됐다"면서 "운동을 시작하면서 술도 줄이게 됐는데 그 아낀 술값으로 사는 거라고 생각해서 하나도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노화 속도를 느리게 만들고 만성 질환이 생기는 것을 막는 '저속 노화'가 떠오르면서 고효율의 유산소 효과를 낼 수 있는 러닝을 선택하는 2030이 늘고 있다. 저속노화 생활 습관을 실천하고 있는 이들 사이에서 러닝이 심폐 건강과 만성질환에 도움을 주는데 효과적인 운동으로 알려지면서 큰 주목을 받고 있는 것.
2030 대세 운동이 된 러닝은 골프나 테니스처럼 고가 장비가 필요 없어 저렴한 비용으로 즐길 수 있는 데다, 장소 예약 등 시간과 장소의 제약을 덜 받아 인기다.
러닝 열풍 속에서 성능으로 줄을 세운 '러닝화 계급도'가 등장하는가 하면 러닝화를 다채롭게 코디하는 '러닝코어(running+core)룩'도 트렌드로 자리 잡으면서 러닝 제품 시장이 떠오르고 있다.
최근에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런닝화를 성능에 따라 줄을 세운 '러닝화 계급도'가 등장해 화제가 됐다. 최상위의 '월드클래스'부터 그 아래로 '국가대표' '지역대표' '동네대표' 등 순으로 내려가는 식이다. 가장 아래에는 '입문용'으로 추천된 러닝화들이 나열돼 있다. 이 계급도는 러닝 인플루언서가 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닝화 계급도가 퍼지고 러닝화가 러닝 퍼포먼스와 직결된다고 알려지자 러닝화 매출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지난 7월부터 9월까지 3개월간 무신사에서 러닝화 카테고리 거래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53% 이상 증가했다.
시장 규모도 커지고 있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와 패션 업계 추산에 따르면 국내 운동화 시장 규모는 지난 2019년 3조1300억원에서 지난해 4조원까지 늘어났다. 이중 러닝화 시장 규모만 1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러닝 열풍에 러닝코어를 중심으로한 에슬레저룩도 인기다. 에이블리에 따르면 지난 9월 기준 애슬레저 카테고리 거래액은 전년 동기 대비 6.5배 가량(546%) 증가했다. 3부, 5부, 7부 등 다양한 기장으로 편하게 입을 수 있는 '바이커 쇼츠' 거래액은 140% 늘었다. 이너웨어로 입기 좋은 '브라탑' 거래액은 45% 증가했다.
젝시믹스와 데비웨어 같은 K애슬레저 브랜드도 눈에 띄는 성과를 보였다. 젝시믹스는 에이블리 내 거래액이 전년 동기 대비 8.3배 이상 늘었으며, 데비웨어의 '커브 랩 크롭티' 8월 거래액도 전월 대비 128% 증가했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적극적·자발적으로 건강관리를 하는 '헬스디깅'부터 '헬시플레저' '저속노화' 다양한 키워드들이 등장하면서 건강관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러닝코어, 에슬레저 브랜드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령을 불문하고 건강과 노화에 관심이 커지면서 관련 산업이 확대되고 있다. 뷰티 제품이나 영양제뿐만 아니라 운동, 스트레스 케어까지 모든 것이 자기 관리의 영역이 됐다. 저속 노화와 비슷한 느낌으로 사용되는 '슬로 에이징'은 노화를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인정하자는 취지를 담고 있지만 최근 뷰티 시장에선 본래 취지와는 반대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화장품 산업에서 청소년과 어린이 고객층의 지출이 늘고 있다. 틱톡과 유튜브 등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뷰티 붐'이 일면서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영향을 받는 것이다.
지그재그에 따르면 지난 7∼9월 10대 고객의 화장품 구매액은 지난해 동기대비 383% 늘었다. 구매자 수도 296% 증가했다. 직전 분기(4∼6월)와 비교해도 거래액과 구매자 수가 2배 가까이 확대됐다. 온오프라인 상관없이 화장품을 구매하는 10대는 계속해서 늘고 있다. CJ올리브영 내 10대 회원 수는 최근 3년간 연평균 20% 이상 늘었다.
특히 노화를 늦추는데 효과적인 기능성 화장품에 대한 관심도 높다. 지그재그에 따르면 지난 9월부터 이달까지 MZ세대의 슬로우 에이징 아이템 거래액이 지난해보다 최대 11배 증가했다.
슬로우에이징 트렌드를 대표하는 원료로 떠오르는 '스피큘'을 활용한 '부스터샷' 관련 상품은 390%, 피부 탄력을 강화할 수 있는 리프팅 관련 상품은 383% 증가했다. 또 면역력 강화와 피부 미백과 탄력에 도움을 주는 성분으로 알려진 '글루타치온'이 들어간 제품은 5% 피부 보습 효과가 있는 '히알루론산' 제품은 1003%로 크게 늘었다.
이같은 노화 방지 제품이 주목받는 데는 SNS에서 공유된 다양한 콘텐츠 영향이 크다. 유튜브나 틱톡 등에는 '중딩의 나이트 루틴' '중딩의 피부 관리 방법' 등의 다양한 영상이 공유되고 있다. 한 영상에서는 자신을 중학생이라고 소개한 유튜버가 "주름이 안생기는 방법을 알려주겠다"면서 기초 화장품을 바르고 마스크팩을 붙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해외도 마찬가지다. 점점 더 많은 어린이가 '젊은 피부'를 추구하며 노화 방지 화장품에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피부과의사협회(BAD)에는 10대 초반과 8세 어린이도 노화 방지 기초 화장품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례가 보고됐다.
10대들에게 노화 방지 화장품 판매를 제한한 국가도 등장했다. 스웨덴의 대형 드러그 스토어 아포텍예타트는 만 15세 미만 어린이가 노화 방지 화장품을 구매하기 전 부모의 동의를 받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모니카 마그누손 아포텍예타트 최고경영자(CEO)는 "어린 연령층 사이에서 유행하는 해로운 행동에 관여되지 않아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며 시행 이유를 밝혔다.
전문가들은 지나친 노화 방지 열풍은 좋은 노년을 맞이하기 위한 노력인 '저속노화' 개념과는 대치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저속노화'를 전파하고 있는 정희원 노년내과 교수는 머니투데이와 서면 인터뷰를 통해 "저속노화의 개념은 노화를 부정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노화 궤적을 미리 만들어서 더 건강하고 내재 역량이 좋은 노년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한다는 의미"라며 "반대로 인위적인 방법으로 항노화에 대해 집착하는 것은 노화를 부정하는 데서 시작하는데, 이러한 부정적 자세는 오히려 짧은 수명과 연관이 있다는 것이 알려져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피부 노화는 80%가 자외선에 의한 광노화, 20%가 내 몸의 노화시계와 관련된 내재 노화이며, 만약 슬로우 에이징을 추종한다면 적절한 자외선 차단이 주가 되어야 한다"며 "소위 젊어 보이게 하는 제품들에 슬로우 에이징 딱지가 광범위하게 붙는데, 이것은 노화과학과는 크게 관련이 없다"고 덧붙였다.
하수민 기자 breathe_i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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