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데뷔 16년 만에 첫 이적 BNK로 향한 박혜진이 하고 싶었던 말
※본 기사는 농구전문 매거진 점프볼 10월호에 게재됐음을 알립니다.
이적을 결심한 계기는?
개인적으로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변화를 주긴 늦은 나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동안 부상 등을 겪으면서 힘든 부분이 있었다. 우리은행에 불만이 있었던 건 전혀 아니다. 그동안 살면서 농구만 했는데 몇 년 남지 않은 농구인생에 변화를 주고 싶었다.
FA 자격을 얻었을 때부터 이적을 생각했는지?
지난해 오프시즌 팀 훈련을 함께하지 못하고 늦게 복귀했다. 시즌 내내 ‘농구를 계속 하는 게 맞나?’라는 고민도 했었다. 주변 지인들에게 조언을 구해봤는데 변화를 주는 게 어떠냐고 하시는 분들도 많았다. 고민을 하던 끝에 BNK로 이적을 결심했다.
FA 협상 기간 동안 여러 소문이 돌아서 억울했을 것 같은데?
내가 여러 팀을 두고 저울질한 것처럼 보인 부분도 있다. 개인적으로 오퍼를 준 팀들은 한 번씩 다 만나보는 게 예의라고 생각했다. 만나보고 정중히 거절 의사를 내비쳤다. 우리은행에도 이번에는 시장에 나가보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근데 내가 사인을 안 해서 미련이 남아있는 것처럼 보인 것 같다. 박정은 감독님 개인적인 일 때문에 제대로 만나질 못했다. 그래서 시간이 더 길어졌다. 속상하지만 이것 또한 받아들이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마지막까지 나를 잡아줬던 우리은행에 죄송한 마음이 크다.
변화를 주고 싶었던 이유가 심적으로 힘들었기 때문이다. 고향이 부산인데 집도 가깝고 가족들이 있어서 팀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강한 명분이지 않았나 싶다.
BNK와 협상 과정은 어땠는지?
많이 만나지 못했다. 박정은 감독님이 개인적인 일 때문에 서울에 계셔서 막차 타고 부산까지 와주셨다. 밤 12시 넘어서 카페에서 만나곤 했었다. 감독님 고향도 부산이신데 선수 시절 부산 연고 팀이 있었다면 가보고 싶었을 거라고 해주셨다. 나에게도 이번 FA가 마지막 기회였다. 가족들과 가까이서 뛰어보는 것도 좋겠다 싶어서 감독님 말씀이 더 와닿았다.
밖에서 본 BNK는 어떤 팀이었는지?
어린 선수들이 많지 않나. 열심히 하는데 무언가 부족한 느낌을 받았다. 중요한 순간 고비가 오면 못 넘기더라. 고비를 넘겨서 이기면 상승세를 탈 수 있는데 지다 보니 연패가 길어졌던 것 같다. 그걸 보면서 아쉬움이 많았다.
공교롭게도 우리은행 우승 멤버들이 대부분 팀을 떠났다.
내가 생각했던 그림이 전혀 아니다. 나 한 명 나가는 것도 죄송한데 우리은행은 우리은행이라고 생각했다. 위성우 감독님, 코치님들, (김)단비 언니, (박)지현이가 있으니까 잘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근데 4명이 한 번에 빠져서 지금도 마음이 불편하고, 죄송한 마음이 크다.
감독님은 내가 BNK와 계약하기 전까지 잡아주셨다. 정말 죄송하다. 이번만큼은 나를 위한 결정을 내리겠다고 말씀드렸다. 속상하고 아쉬워하셨지만 내 결정을 존중해주셨다. 가서 아프지 말고 열심히 하라고 응원해주셨다. 6월 21일이 감독님 생일이신데 그동안 아무렇지 않게 축하드린다고 카톡을 보냈었다. 근데 이번에는 보내도 될지 고민이 되더라. 그래도 내 마음 가는 대로 따라서 축하드린다고 연락을 드렸다.
BNK에서 김소니아와 재회하게 됐다.
(김)소니아와 만난 건 기쁘지만 솔직히 기대보다 부담이 크다. 사적으로 만난 게 아니라 BNK에서 농구를 하기 위해 만난 게 아닌가. 주변의 기대가 커서 부담스럽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소니아가 있으니 내가 팀을 이끄는데 부담을 덜어줄 거라 생각한다.
BNK로 가면서 고향 부산에서 뛰게 됐는데?
우리은행에 너무 오래 있어서 그런지 머릿속으로 그려지질 않는다. 박신자컵 때문에 아산이순신체육관을 방문했는데 오히려 익숙하더라. 최근 BNK 유니폼을 입고 프로필 촬영을 했는데 속으로 너무 어색했다.
성적에 대한 부담감이 있을 것 같은데?
BNK에서도 내 고향이 부산이라는 이유만으로 나를 원하진 않았을 거다. 기대감이 있기 때문에 거기에 보답하려면 좋은 성적을 내야한다고 생각한다. 냉정하게 보면 지난 시즌 소니아는 플레이오프 무대를 밟지 못했고, 나는 전성기 때보다 기량이 떨어졌다. 그래서 더 부담이 된다. 조금씩 팀을 단단하게 만들고 바꿔서 이번 시즌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게 목표다.
몸에 부상이 있어서 치료를 받았다. 또 다른 동기부여를 얻기 위해 이적을 선택했기 때문에 이번 휴가 때는 여행을 갈 여유가 없었다. 팀에 합류했을 때 아프지 않기 위해 치료, 재활 등 몸 관리에 힘을 썼다.
“좋아진 점도 있지만 갈 길이 멀다”
지난 시즌 최하위에 머무른 BNK는 FA 시장에서 박혜진과 김소니아를 동시에 영입하며 전력 보강에 성공했다. 또한 6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2024~2025 WKBL 아시아쿼터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2순위로 이이지마 사키를 지명했다. 이들이 기존의 안혜지, 이소희 등과 시너지 효과를 낸다면 반등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9월 막을 내린 2024 우리은행 박신자컵에서 박혜진이 발바닥 부상을 뛰지 못했지만 4강에 진출하기도 했다. 새 시즌 BNK가 기대되는 이유다.
BNK에서 첫 오프시즌을 보내고 있는데 적응은 잘 하고 있는지?
처음엔 너무 어색했다. 이게 맞나 싶더라. 처음 팀에 갔을 때는 소니아가 아직 루마니아에 있었고, 후배들 나이가 너무 어렸다. 그래서 오히려 내가 불편했다. 그래도 지금은 후배들과 너무 잘 지냈고 있다. 후배들도 이전보다 편하게 나에게 다가와서 적응은 잘 마친 것 같다.
새로운 팀에서 바로 주장을 맡게 됐다.
사실 주장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근데 현실적으로 팀을 보니 주장을 할 만한 선수가 없더라. 그래서 내가 맡게 됐다. 최대한 빨리 소니아와 (안)혜지 같은 선수들이 성장해서 주장직을 넘겨줄 수 있었으면 한다.
직접 와서 보니 어린 선수들이 다들 열심히 한다. 그래서 희망과 기대감이 생겼다. 농구에 대한 열정이 없으면 안 되는데 다행히 조금 부족하더라도 열정이 있어서 내가 솔선수범하면 후배들이 배우면서 좋은 시너지가 날 거라 생각한다. 요즘 MZ들은 몸으로 하지 않고 말로만 하면 따라오지 않는다(웃음). 그래서 더 먼저 나서서 솔선수범하려고 한다.
등번호는 계속 7번을 달게 됐다.
지난 시즌에 (박)경림이가 7번을 달고 있었다. 경림이도 번호를 이것저것 하다가 7번이 남아서 했다고 하더라. 그래서 큰 애착은 없었다. 나에게 7번을 권유했고, 10번으로 등번호를 바꿨다. 사실 나는 7번을 계속 달고 싶었다. 등번호에도 변화를 줄까 했는데 다른 건 몰라도 이거 하나만큼은 지키고 싶었다.
빨간색 유니폼은 어떤지?
빨간색 유니폼은 고등학교 시절 이후 처음이다. 마침 머리도 짧아서 빨간색 유니폼을 입으니 고등학교 때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원래 내가 좋아하는 색은 파란색이다(웃음). 빨간색을 싫어한 건 아니고 평소 빨간색 옷도 입는다. 그래도 아직은 빨간색 유니폼이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어색해서 그런지 부끄럽다.
헤어스타일은 계속 짧게 유지할 생각인지?
주변에서 처음에는 머리가 너무 짧다고 다시 기르라고 하셨다. 근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짧은 머리가 더 낫다고 하는 분들이 많더라. 지금은 짧은 머리가 더 편해서 당분간은 계속 유지하려고 한다.
우리은행에서도 (김)단비, (고)아라, (김)정은 언니는 출퇴근을 했었다. 개인적으로 출퇴근하면 더 피곤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구단에서도 출퇴근을 허락해주셨는데 귀찮아서 그냥 숙소를 사용했다. 근데 부산에서 출퇴근 해보니 너무 좋더라. 퇴근 후 농구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잊을 수도 있다. 가족들 얼굴을 잠깐이라도 볼 수 있어서 정말 좋다. 서울에 있을 때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지난 시즌 몸 상태가 완전치 않았는데 현재는 어떤지?
이번 시즌에는 부상 없이 뛰는 게 1차 목표다. 몸 관리 잘하면서 팀 훈련을 잘하고 있었는데 박신자컵 앞두고 발바닥이 붓고 아팠다. 그래서 박신자컵을 뛰지 못했다. 발바닥 통증이 호전되는 걸 지켜보면서 다시 몸을 만들어야 될 것 같다.
박신자컵을 통해 본 BNK의 경기력은 어땠는지?
분명 좋아진 점이 있다. (이)소희, 혜지가 국가대표 차출로 빠진 사이에 소니아와 함께 어린 선수들을 데리고 정말 열심히 훈련했다. 소희와 혜지가 오면서 다시 맞춰야 될 부분이 있더라. 내 성격상 아무리 잘해도 만족을 못해서 그런지 경기를 보면 보완점만 보이더라. 냉정하게 지난 시즌 최하위 팀이다. 박신자컵에서 잘해도 실력이 아니라 안 되는 부분을 찾아서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좋아진 부분도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박신자컵 첫 상대가 친정팀 우리은행이었는데?
박신자컵을 통해 보니 우리은행 선수들이 정말 많이 바뀌었다. 속으로는 응원을 하게 된다. 경기 끝나고 감독님, 코치님들께 인사를 드렸는데 살짝 눈물이 날 뻔 했다. 감독님, 코치님들께서 너무 반갑게 맞이해주셨다. 짧게 인사를 드렸는데도 여전히 죄송한 마음이 크게 느껴졌다.
이제는 선수생활 끝날 때까지 부상 없이 잘 마무리 하는 게 목표다. 팀적으로는 지난 시즌 성적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시즌 열심히 잘 준비해야 된다. 그래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게 목표이자 바람이다.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한 마디?
제일 먼저 아산 팬들께 인사를 드리고 싶다. 우리은행에 오랫동안 몸담았는데 이적을 해서 죄송하다. 그럼에도 많은 응원 보내주셔서 감사하고, 나도 아산 팬들 생각이 많이 난다. 부산 가서 더 열심히 할 테니 서운한 감정보다는 많이 응원해주셨으면 한다. 부산 팬들은 기대하고 계실 텐데 시즌 개막까지 열심히 준비할 테니 체육관 오셔서 응원해주시면 감사할 것 같다.
“다시 한번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박혜진이 위성우 감독에게
데뷔 16년 만에 처음으로 이적을 선택한 박혜진은 위성우 감독과 적으로 만나게 됐다. 2012년 우리은행 지휘봉을 잡은 위성우 감독은 유망주였던 박혜진을 WKBL 최고 가드로 성장시켰고, 무려 8번의 우승을 함께했다.
인터뷰를 마치려는데 박혜진은 “저 위성우 감독님께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할게요”라며 기자를 붙잡았다. 그리고 은사 위성우 감독에게 감사의 인사를 남겼다.
“팀을 옮기고도 코트에 나가면 가장 많이 생각나는 분은 여전히 위성우 감독님이다. 어떻게 말씀드려야 진심이 전해질지 모르겠지만 늦은 나이에 FA 시장에 나가 좋은 대우를 받게끔 해주신 건 모두 감독님 덕분이다. 선수 생활 끝날 때까지 감독님께 배운 그대로 열심히 할 테니 다시 한번 죄송하고 감사드린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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