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 학력에서 시작된 여사의 거짓말 의혹 [김건희라는 아킬레스건 ④]
김건희 여사는 지금 대한민국의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다. 김건희의 사람(천공·이종호·명태균), 김건희의 혐의(주가조작 연루·명품 백 수수), 김건희의 공간(관저), 김건희의 학력(논문 표절), 김건희 가족과 관련된 정부 사업(서울-양평 고속도로)과 재산 축적 과정 등 현직 대통령 배우자를 둘러싼 의혹과 논란은 이미 현직 대통령의 그것을 뛰어넘었다.
대통령 배우자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다. 대한민국은 박근혜 정권 때 한 차례 대통령을 움직이는 숨은 권력으로 인해 좌절을 겪고 비용을 치렀다. ‘비선’ 논란이 갈등의 우선순위를 차지하고, 한국 사회의 해묵은 과제들을 해결할 ‘비전’은 자취를 감추면 손해 보는 쪽은 공동체의 시민들이다.
그래서 ‘한국에서 김건희 여사에 대한 공적 통제가 가능한가’는 단순한 가십이 아니라 민주주의 핵심에 가닿는 중차대한 질문이다. 이번 호 〈시사IN〉이 거의 모든 기자를 동원해 ‘김건희 통권 특집호’를 내며 윤석열 정권의 명실상부한 ‘아킬레스건’인 김건희 여사를 들여다본 이유다.
“잘 보이려고 경력을 부풀리고 잘못 적은 것도 있었다.” 2021년 12월26일,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씨가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의 허위 이력 의혹에 대해 사과했다. 윤 후보가 본격적으로 정치판에 뛰어든 이후, 김씨가 공식 석상에 등장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이후 ‘김건희 리스크’라고 불릴 만큼 그를 둘러싼 의혹과 논란이 불어났다. 허위 이력 및 학력은 그 시작이었다.
이날 국민의힘 선대위는 김씨 관련 의혹을 총 9개 항목으로 분류해 ‘김건희 대표 의혹에 대해 설명드립니다’라는 제목의 해명 자료를 언론에 공개했다. 대부분 ‘부정확한 기재였다’ ‘오인할 수 있는 표기라 송구하다’ 등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고의성을 지우고 ‘미숙함으로 인한 오기’라는 점을 강조했다.
당시 논란이 된 학력 관련 사안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서일대학교 시간강사(2004~2006년 재직)에 지원하면서 이력서 학력란에 ‘국민대학교 테크노디자인대학원 박사과정(정부 지원 BK21 사업 프로젝트)’이라고 기재한 사실이다. 교육부에서는 김씨가 해당 프로젝트에 참여했는지 확인했으나 해당 사항이 없었다고 밝혔다. 당시 국민의힘은 해명 자료를 통해 김씨가 다닌 국민대 테크노디자인대학원이 정부의 BK21 사업을 통해 설립된 점을 강조하려 했을 뿐, 본인이 BK21 사업의 특정 프로젝트를 수행했다고 읽힐 여지를 주려는 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해당 자료에서는 김건희씨가 학력을 잘못 기재한 것이 문제지만 실수였다는 입장이 반복됐다. 예컨대 같은 이력서에서 김씨는 ‘광남중학교 교생 실습’을 ‘광남중 근무’라고 썼다. 이에 대해서도 국민의힘은 근무가 정교사 재직 경력을 뜻한 것은 아니라며 이 또한 부정확한 표기일 뿐이라는 식으로 대응했다.
김건희씨는 기자회견 전에도 각종 지원서에 적은 허위 경력 의혹에 대해 입장을 밝힌 적이 있었다. 2021년 12월14일 YTN과의 인터뷰에서 허위로 기재한 경력 등에 대해 김씨는 “그냥 간단하게 쓴 것”이라는 입장을 여러 번 강조했다. 허위 경력과 관련된 사문서 위조죄의 형량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이다. ‘그냥’ 해선 안 되는 범죄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가볍게 생각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김건희씨가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 경영학과(EMBA) 경영전문석사 학위 표기를 잘못한 것 역시 문제가 됐다. 김씨는 2014~2016년 국민대 비전임 교원으로 출강했는데, 이를 위해 국민대에 제출했던 임용지원서에는 김씨의 학위가 ‘서울대 경영학과 석사’로 기재되어 있다. 2015년 3월 〈동아비즈니스리뷰〉와의 인터뷰에서 김씨는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고, 서울대 경영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라고 직접 언급한 적도 있다. 2019년 7월 윤석열 검찰총장 인사청문회에서는 윤석열 후보자가 이를 재확인해주기도 했다. 당시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이 “배우자의 페이스북에 ‘서울 내셔널 유니버시티(서울대학교)에서 공부했음’ 이렇게 되어 있다. 맞나?”라고 묻자 윤 후보자는 “마지막에 서울대에서 경영학 석사가, 마지막이다”라고 답했다. 경영학 ‘정식’ 석사가 맞느냐고 재차 묻자 윤 후보자는 “경영대학원에서 2년 코스로 석사학위를 받았다”라고 말한다.
서울대 EMBA 홈페이지에서는 해당 교육과정을 ‘2년제 주말 MBA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한다. 기업체 임원이나 CEO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그제큐티브 MBA
(Executive MBA)’ 과정이다. 서울대 학칙에 따르면 ‘경영학 석사’와 ‘경영전문석사’는 엄연히 다르며 둘을 명확히 구분해서 기재하도록 되어 있다. 국민의힘은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 EMBA 과정 수료를 일반대학원 학위 취득으로 표기한 것에 대해 “사업과 학업을 병행하던 김건희 대표는 학계의 정확한 용어나 체계에 익숙하지 않아 통상 부르는 대로 ‘경영대학원’으로 기재했다”라며 미숙함으로 인한 오기라고 강조했다.
김건희씨의 허위 경력 의혹으로 여론이 악화되자 당시 윤석열 후보는 오히려 대통령의 배우자를 보좌하는 제2부속실을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2021년 12월21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윤 후보는 “제 처는 정치하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대통령 부인은 그냥 대통령의 가족에 불과하다”라며 ‘영부인’ 호칭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표절 혹은 대필 의심받는 석박사 학위 논문
김건희씨의 대국민 기자회견 이후에도 허위 경력 논란은 ‘살아 있는 의혹’이었지만 이후 정치적 파급력을 가진 이슈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경찰이 대부분의 혐의가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판단해 불송치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2021년 12월, 민생경제연구소 등 일부 시민단체는 김씨가 2001~2014년 시간강사와 겸임교수로 강의한 한림성심대·서일대·안양대·국민대에 제출한 이력서가 허위라는 점을 지적하며 그를 사기·업무방해·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하지만 2022년 9월,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는 사건을 불송치하기로 결정했다. 업무방해와 사문서 위조는 공소시효(7년)가 지나 공소권 없음으로, 사기는 무혐의로 판단했다.
고발인 측은 김건희씨가 2016년까지 국민대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2023년까지 공소시효가 남았다고 주장했지만, 경찰은 김씨가 마지막으로 대학에 지원서를 낸 시점인 2014년을 기준으로 삼아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봤다. 2022년 10월에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남구준 국가수사본부장은 “(불송치 결정은) 대학 채용 담당자의 진술과 채용 조건 등을 듣고 판단한 것”이라며 대학 관계자들이 “기망당한 부분은 없었다”라고 진술했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들이 경찰의 불송치 결정에 이의 신청을 하면서 사건은 검찰로 넘어가게 됐다. 하지만 고발에 참여한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 소장은 〈시사IN〉과의 통화에서 “2년여가 지난 지금까지 검찰로부터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야당 역시 학력 논란보다 정치적으로 더 파괴력 있는 이슈로 관심을 돌렸다. 민주당은 2022년 김건희씨의 학력·경력 위조 조항까지 포함한 특검법을 발의했으나, 2023년 3월 학력·경력 위조 조항은 제외하고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과 코바나컨텐츠 전시회 뇌물수수 의혹 규명만을 담은 새 특검법을 발의했다.
김건희씨의 학력 의혹 중 현재까지 쟁점이 되고 있는 이슈는 ‘논문 표절 및 대필’이다. 김씨는 숙명여자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으며 국민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현재 석박사 학위 논문 모두 표절 의혹을 받고 있다. 김건희 여사 논문 표절 의혹은 올해를 포함해 지난 3년 동안 국회 교육위원회(교육위) 국정감사에서 단골 소재로 다뤄졌다. 김건희 여사 논문 표절 의혹과 관련해 국회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된 김지용 국민대 이사장이 재작년과 작년에 이어 올해도 해외 출장을 이유로 불출석을 통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씨의 박사 논문 대필 의혹을 받고 있는 설민신 한경국립대학교 교수와 석사논문 검증 지연 의혹을 받고 있는 장윤금 전 숙명여자대학교 총장 등도 증인과 참고인으로 채택됐으나 모두 불출석했다.
김다은 기자 midnightblu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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