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취임 2년]②활력 '0' 조직문화…예정된 '칼바람'
경쟁사 이직 잦아지며 '하삼하' 용어도 등장
성과주의 입각 대규모 인사·조직개편 예고
지난 27일 취임 2년을 맞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앞길이 깜깜하다. 삼성전자의 핵심 사업인 반도체는 초격차 기술력 확보에 실패하며 위기론에 휩싸였고, 미래를 이끌 신성장동력도 눈에 띄지 않는 상태다. 관료화된 조직문화는 경쟁력을 잃었고, 9년째 이어진 사법리스크도 이 회장의 발목을 잡는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모든 것을 바꾸라" 했던 혁신을 넘어설 '승어부(勝於父·아버지를 능가함)' 전략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취임 3년차가 된 이 회장의 앞에 놓인 과제를 되짚어본다.[편집자주]
사라진 혁신…커지는 내부 불만
"조직문화와 일하는 방법을 다시 들여다보고 고칠 것은 바로 고치겠습니다. 우리의 전통인 신뢰와 소통의 조직문화를 재건하겠습니다. 현장에서 문제점을 발견하면 그대로 드러내 치열하게 토론해 개선하도록 하겠습니다."
전영현 삼성전자 DS(디바이스 솔루션) 부문장(부회장)이 이달 초 잠정 실적 발표 당시 사과 메시지를 통해 한 말이다. 위기 극복을 위해 조직문화를 개선하겠다는 것이 골자인데, 이를 뒤집어보면 현재의 조직문화가 신뢰를 잃고 소통이 부재함을 인정한 셈이다.
이를 계기로 삼성전자 내부 조직 사정이 녹록지 않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를 중심으로 이뤄진 내부 조직에 대한 폭로가 대표적이다. 이들의 직급과 소속을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이들은 특히 '서초'를 향한 불만을 드러냈다.
삼성은 2017년 미래전략실 해체 후 전자, 금융 등 계열사를 각각 아우르는 사업지원TF를 뒀다. 이 조직을 이끄는 이는 이재용 부회장의 핵심 측근으로 꼽히는 정현호 부회장이다. 이들은 정현호 부회장을 'HH'라 칭하며 보고 체계의 비효율성 등을 지적한다. 또 정 부회장을 삼성전자의 실질적인 주인으로 보고, 그가 자사주가 없다는 점도 비난한다.
이러한 불만을 가장 먼저 수면 위로 드러낸 것은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이었다. 전삼노는 사업지원TF가 각 계열사의 임금 교섭에 관여하며 정당한 단체 교섭을 하지 못하게 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서초 사옥 앞에서 집회를 열었을 때 개회 선언을 통해 "서초사옥에는 삼성전자의 실질 권한을 가진 사업지원 TF, 즉 구 미래전략실이 있다"며 "해당 팀의 수장인 정현호 부회장께 항의의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 이곳에 모였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삼성전자 출신 한 유튜버가 삼성전자 전·현직 31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영상도 화제가 됐다. 이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전원이 '현재 삼성전자가 위기'라고 답했으며, 가장 큰 위기 요소로 '기술혁신 정체'(38.7%)를 꼽았다. '내부 조직 문제'를 원인으로 지목한 응답자도 35.5%에 달했다. '내부 조직 문화에 문제가 있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이들도 93.5%에 달했다. 31명 중 2명을 제외한 29명이 동의한 셈이다.
굳건하던 메모리 반도체 기술 경쟁력에서 뒤처진 데다 삼성 특유의 조직문화까지 사라지면서, 삼성전자 내부에서의 인력 유출도 심각해졌다. 최근 업계에서는 '하삼하'라는 용어까지 생겼다. SK하이닉스에서 삼성전자로 이직했다가, 다시 SK하이닉스로 돌아가려는 직원을 이르는 말이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 내부에서는 원가 절감에 집중해 기술 혁신은 뒷전이고, 조직 간 책임을 떠넘기고 도전하지 않으려 하는 문화가 만연한 것으로 안다"며 "SK하이닉스로 재이직하려는 이들이 많은 것도 이러한 조직문화 차이가 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말 대신 행동으로? 대규모 인사 예고
여느 때보다 엄중한 분위기 속에 2주년을 맞은 이재용 회장이 연말 인사와 조직 개편을 통해 메시지를 내비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간 재계에서는 이 회장이 최근 위기 상황에 대해 별도의 메시지를 낼 것이라는 추측이 이어졌지만, 이 회장은 침묵을 유지했다. 이에 이 회장이 말을 아끼는 대신 연말 인사에서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단행해 향후 경영 방향성을 제시할 것이라는 데 무게가 실리고 있다.
특히 올해 11월 말 또는 12월 초 있을 연말 인사와 조직 개편의 폭은 예년보다 클 것으로 예상된다. 작년 삼성전자는 변화보다 안정을 택한 인사를 단행한 바 있다. 사장 승진은 2명으로 전년 7명 대비 축소됐고, 한종희 부회장, 경계현 사장 중심의 2인 대표이사 체제를 유지했다.
대신 삼성전자는 지난 5월 반도체 사업의 수장인 DS부문장을 경계현 사장에서 전영현 부회장으로 교체하는 이례적인 행보를 보였다. 삼성 측은 이에 대한 명확한 이유를 공개하진 않았으나, 업계에서는 HBM(고대역폭메모리)의 엔비디아 품질 검증(퀄테스트) 지연 등이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 올해 연말 삼성전자 인사는 철저한 성과주의 원칙에 따를 것으로 보인다. 올해 5월 취임한 전영현 부회장을 제외하고, 실적이 부진한 일부 사장급의 교체가 유력한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삼성전자 위기론의 핵심인 DS부문에서는 전 부회장을 뒷받침하는 3개 사업부장이 모두 바뀔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이정배 메모리사업부장(사장), 최시영 파운드리사업부장(사장), 박용인 시스템LSI사업부장(사장)이 대상자다.
임원 승진 규모나 전체 임원 숫자도 예년보다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전영현 부회장이 사과문에서 "이 모든 책임은 사업을 이끌고 있는 저희에게 있다"며 위기론의 책임이 경영진에 있다고 인정한 만큼, 임원 교체 및 감축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일각에서는 그룹 컨트롤타워 부활 필요성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이찬희 삼성준법감시위원장은 최근 발간한 준감위 연간 보고서를 통해 "새로운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경영 판단의 선택과 집중을 위한 컨트롤타워의 재건, 조직 내 원활한 소통에 방해가 되는 장막의 제거, 최고 경영자의 등기 임원 복귀 등 책임경영 실천을 위한 혁신적인 지배 구조 개선이 있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백유진 (byj@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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