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몽 끝났나…고민 빠진 韓 기업들 “레시피 수정하자”
中 외국인 투자 감소세, 한국에겐 더 가혹한 환경
“중국 시장 놓칠 수 없어” 사업 포기 못한 기업들
차세대 시장 공략하고 다변화·현지화로 현지 진출
[베이징=이데일리 이명철 특파원] 중국에 진출해 있는 A 금융기업은 현지 사무실을 철수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중국 현지에서 벌일 수 있는 사업이 마땅찮고 금융시장 분위기도 살아나지 않아 얼마나 성과를 더 낼 수 있을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B 유통사도 얼마 전부터 중국 법인 인원을 줄여야 할지 고심 중이다.
중국이 점점 외국 기업들이 투자하기 어려운 나라가 되고 있다. 지난해 중국을 방문했던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부 장관은 “중국은 너무 위험해서 투자할 수 없는 곳”이라고 말했다. 주중 한국대사는 과거에 현지 우리 기업인들을 불러 지정학적 리스크를 언급하며 ‘파티는 끝났다’는 취지로 말해 화두에 오르기도 했다.
외국 기업들의 중국 기피는 데이터로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25일 중국 상무부 발표에 따르면 올해 1~9월 누적 외국인직접투자(FDI)는 전년동기대비 30.4% 감소했다. 작년에는 전년대비 8.0% 감소에 그쳤는데 올해 들어 외국인들의 투자 감소가 두드러지고 있다.
중국 투자가 어려운 이유는 대외적으로 미국을 비롯한 서방과의 무역 갈등, 내부적으로는 불안정한 경영 환경과 경기 침체가 꼽힌다.
한국의 경우 상황은 더 좋지 않다. 한·중 관계는 2017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가 터진 후 악화 일로를 거듭했다. 한한령(한류 제한령)으로 중국 내 한국의 콘텐츠 진입은 막혔고 현지에서 활발한 사업을 벌이던 롯데 같은 기업들은 사업을 철수하고 말았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봉쇄 조치까지 겹치면서 중국은 더 가까워지기 힘든 곳이 됐다. 한국무역협회가 올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코로나 이후 중국 사업을 축소 또는 완전 철수했다고 응답한 곳은 50.2%로 절반이 넘었다. 확대한 기업은 16.8%에 그쳤다.
대기업만 놓고 봐도 중국서 5개 공장을 운영하던 현대차(005380)는 베이징 1공장과 충칭공장을 매각했고 연내 창저우 공장을 매각할 방침이다. LG디스플레이(034220)는 지난달 광저우 공장을 중국 업체에 매각했다고 밝혔다.
우리 기업들이 중국 사업을 줄이는 이유는 디플레이션에 빠진 중국 내 소비가 신통찮기 때문이다. 중국 기업들의 기술 수준이 높아지면서 웬만한 공업 제품은 뚜렷한 경쟁력을 갖기도 힘들어 저가의 중국산을 당해내기도 힘들다.
또 사업의 지속성을 담보할 수 없다. 중국에 있는 한 대기업 계열사 주재원은 “중국 정부가 자꾸 한국 기업에 투자하라고 유도하는데 언제 딴지를 걸지 모른다”며 “청산 절차도 복잡해 그때 되면 본전도 얻지 못하고 물러날 수도 있다는 게 걱정”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올해 5월에는 한국 반도체 기업 출신으로 중국 기업에서 근무하던 우리 교민이 반간첩법 혐의가 적용돼 구속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중국이 지난해 7월 반간첩법을 강화한 이후 우리 교민이 처음 구속된 사례로 파장이 크다.
상황이 녹록지 않지만 그렇다고 중국 시장을 완전히 포기하기는 어렵다. 무협 조사에서도 향후 중국 사업을 확대하겠다고 답변한 기업은 45.8%로 축소·철수하겠다는 비율(13.8%)을 크게 웃돌았다. 중국 시장의 수요가 회복하면 그만큼 얻을 게 더 많다는 기대에 끈을 놓지 못하는 것이다.
수년간의 시행착오 끝에 중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은 다양한 전략으로 현지 시장을 두드리고 있다.
전기차 전환에 밀려 판매량이 급감했던 현대차(005380)는 차후 중국의 수소 굴기를 염두에 두고 수소연료전지 시장에 일찌감치 뛰어들었다. 현대차 의존도가 높았던 HL만도(204320)는 중국 내 고객사 다변화를 통해 성장세를 이어갔다. HL만도의 중국 매출액은 2조원대로 북미 시장과 비슷한 수준이다.
중국 1위 화장품 제조업자개발생산(ODM) 기업인 코스맥스(192820)는 K뷰티가 아닌 현지화 전략을 통해 고객과 소비자를 끌어모았다. 오리온(271560)·풀무원(017810) 같은 기업도 한국 기업임을 먼저 드러내기보단 제품 경쟁력으로 현지 시장을 뚫은 대표 사례로 꼽힌다. 의료업계 중 임플란트 업체 네오바이오텍은 중국 전역에 공급 체계를 구축하며 현지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중국 광저우에서 만난 한 한국 기업 관계자는 “이제 중국에서 한류 혜택을 기대하긴 힘들어졌다. 결국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것은 제품 경쟁력”이라며 “지속적인 연구개발로 소비자 신뢰를 높여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철 (twomc@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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