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읽기] 잘 죽을 권리, 영화 ‘룸 넥스트 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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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의 절대적 진실 하나는,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에는 끝이 있다는 것이다.
영화 '룸 넥스트 도어'의 주인공 마사(틸다 스윈튼)는 그렇지 않다.
삶이 소멸을 향해 가는 여정이라면 그 과정에서 아름답고 존엄하게 삶을 정리할 방법을 고민해볼 수 있지 않겠느냐고 넌지시 질문하는 영화다.
영화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지만 그것은 결코 삶의 아름다움을 가리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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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의 절대적 진실 하나는,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에는 끝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언젠가 마침표를 찍는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곧잘 죽음을 외면하며 죽음 앞에서 수동적인 상태가 된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는 골몰하면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영화 ‘룸 넥스트 도어’의 주인공 마사(틸다 스윈튼)는 그렇지 않다. 전쟁과 아드레날린에 중독돼 살았던 전직 종군기자 마사는 암 진단을 받은 뒤 희망 없이 고통만 연장하는 항암 치료를 거부하고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이 세상에서 퇴장하기로 결심한다.
지난 8월 28일부터 9월 7일 열린 제81회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이자 스페인의 거장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신작 ‘룸 넥스트 도어’는 안락사의 필요를 소리 높여 주장하는 영화는 아니다. 삶이 소멸을 향해 가는 여정이라면 그 과정에서 아름답고 존엄하게 삶을 정리할 방법을 고민해볼 수 있지 않겠느냐고 넌지시 질문하는 영화다. 거장의 깊은 시선은 삶의 무한한 기적에 가닿아 끝내 삶에 대한 감사함을 일깨운다. 영화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지만 그것은 결코 삶의 아름다움을 가리지 못한다. 영화에서 마사의 존엄한 죽음을 완성하는 건 잉그리드(줄리안 무어)라는 존재다. 과거 출판사에서 함께 일한 동료였으나 오랫동안 왕래 없이 지낸 마사와 잉그리드는 오랜만에 뉴욕에서 재회한다. 유명 작가가 돼 뉴욕에서 책 출간 사인회를 갖던 잉그리드는 우연히 마사가 암 투병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그녀가 치료 중인 병원을 방문한다. 서로의 안부를 다정히 확인한 다음, 마사는 잉그리드에게 안락사에 관한 자신의 비밀스러운 계획을 들려준다. 나아가 쉽지 않은 부탁을 한다. “이 전쟁이 두렵진 않아. 하지만 혼자이긴 싫어. 내 부탁은 …. 옆방에 있어 달란 거야.” 잉그리드는 죽음을 직면하는 게 두렵지만,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줄 아는 성숙한 인간이자 작가로서 무엇보다 믿을 수 있는 친구로서 마사의 마지막을 함께 한다. 정원의 선베드에 나란히 몸을 뉘거나, 새벽 공기를 가르는 새소리에 함께 미소 짓거나, 기척도 없이 내리기 시작한 눈송이를 가만히 바라보는 일들로 채워진 두 사람의 동행은 마사의 방문이 닫히기 전까지 계속된다.
닫힌 문, 그것은 마사의 죽음에 대한 신호이지만 잉그리드는 마사의 딸이 그 문을 열고 엄마의 방으로 들어서는 것을 본다. 오랜 시간 엄마와 관계가 소원했던 딸은 잉그리드를 통해 엄마의 삶을 듣는다. 그러니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롭게 기억되는 것이다. 또다시 “모든 산 자와 죽은 자 위로” 눈은 내릴 것이다.
이주현 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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