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남미 오징어, 유럽 고등어, 아프리카 문어…수입 수산물에 점령 당한 대형 마트
뜨거워진 바다에 어획량 급감
국내산 오징어는 '전멸' 수준
마트서 횟감용 전어도 사라져
배추·토마토 등 金 채소도 일상
대형마트, 해외서 대체 수산물 확보
바다 말고 육지 김 양식 초읽기
28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 매대에 깔린 수산물은 다국적 연합군을 방불케 했다. 남미 아르헨티나 인근 포클랜드 해역에서 잡아온 오징어부터 아프리카 모리타니에서 날아온 문어, 유럽 포르투갈에서 잡힌 볼락, 가까운 대만산 꽁치까지 국적도, 종류도 다양했다. 실제 수산물 코너에 있는 50개 수산물(냉동·가공 포함) 중 29개(58%)가 수입산이었다. 대형마트의 한 수산물 바이어는 "10년 전만 해도 주요 어종에서 수입산은 국산보다 값싼 수산물을 원하는 소비자를 위한 선택지"였다며 "하지만 최근에는 주력으로 자리 잡는 모양새"라고 했다.
이상기후가 국내 먹거리 시장을 직격하고 있다. 바닷물이 따뜻해지며 오징어, 고등어 등 주요 수산물의 어획량이 눈에 띄게 줄면서 대형마트의 수입 수산물 비중이 절반을 넘어섰다. 농산물 또한 폭염, 폭우로 품귀 현상이 빚어지며 금배추, 금토마토 등 채소 앞에 '금(金)'이 접두어로 붙는 게 일상이 됐다. 대형마트 등 유통 업체들은 장기 저장 농산물을 늘리거나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가 대체 수산물을 확보하고 있다. 원재료를 안정적으로 확보해야 하는 식품 기업들도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명태, 오징어 다음 타자는?
이마트는 올해 1~9월 수산물 매출에서 수입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51%로 집계됐다고 29일 밝혔다. 2021년 45%에서 매년 증가해 처음 절반을 넘은 것. 롯데마트와 홈플러스의 수입산 비중도 각각 70%, 48% 수준에 달한다. 이는 폭염으로 수온이 올라가며 국내산 수산물의 어획량이 크게 감소한 영향이 크다. 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12~18일 남해안 수온은 24.0도로 평년(1991~2020년)보다 2.9도나 높았다. 동해안(22.4도) 서해안(22.4도)도 각각 2.0도, 2.4도 높았다.
실제 가을이 제철인 전어는 기록적 폭염으로 어획량이 반 토막 나면서 마트에서 10년 만에 전어회를 팔지 않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오징어는 동해 수온이 적정 수온(15~20도)보다 높아지자 점차 북쪽으로 올라가더니 씨가 말랐다. 지난해 어획량(연근해)은 2만3,000톤(t)으로 역대 최저다. 올해는 상황이 더 안 좋다. 강원특별자치도에 따르면 올해 1~10월 동해 어획량은 715t으로 1년 전(1,213t)보다 41% 급감했다. 물론 겨울에 서해에서 오징어 조업이 시작되지만 수온 상승으로 조업 전망은 밝지 않다고 한다. 여기에 갈치나 고등어, 가자미 등도 어획량이 하락 추세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국내산 명태는 오래전 사라졌고 오징어가 그렇게 되고 있다"며 "100% 해외에 의존하는 수산물이 많아지고 있다"고 했다.
육지도 비슷하다. 연초 기후 변화에 따른 흉작으로 금사과 논란이 빚어졌고 봄에는 대파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폭염이 본격화한 뒤엔 배추, 시금치, 토마토 등 채소값이 줄줄이 폭등하고 있다. 국내만의 문제도 아니다. 가뭄, 폭우 영향으로 커피 원두와 코코아 가격도 급등세다. 이에 아프리카 가나에서 카카오(코코아 가공 전 열매)를 수입해 가나 초콜릿을 만드는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이 이달 초 직접 가나로 날아가기도 했다. 식품사 관계자는 "기후 변화에 따른 수급 불안 문제는 앞으로 더 심각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오징어 찾아 삼만리
대형마트는 수산물 수급은 해외서 답을 찾고 있다. 2021년 이마트가 아르헨티나 오징어 직수입 작전에 나선 게 대표적. 그때도 국내 원양어선이 포클랜드 해역에서 오징어를 잡긴 했다. 다만 영국에서 조업 할당량(쿼터)을 사야 해 유통 비용이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이에 이마트 담당 바이어가 아르헨티나로 날아가 영국령이 아닌 포클랜드 해역에서 조업하는 선단과 직거래를 했다. 당시 200톤(t)으로 시작한 수입량은 올해 1,000t까지 늘었다.
또 이마트는 올해부터 미국산 각시가자미를 직소싱해 수입하고 있다. 이마트 관계자는 “국산 참가자미는 2년간 거의 잡히지 않고 있고, 용가자미는 200g 내외로 작다”며 “국산 가자미의 반값에다 사이즈(400~450g)도 크고 살도 부드러운 각시가자미가 대체재라고 판단했다”고 했다. 롯데마트도 2022년부터 국내산 문어 어획량 감소와 그에 따른 가격 상승 흐름이 나타나자 아프리카 모리타니·세네갈과 남미 베네수엘라 문어 수입을 확대하고 있다.
신기술로 기후변화를 극복하려는 시도도 있다. 수온 상승으로 조미김의 원재료인 김 원초 생산량이 급감하고 값이 뛰는 현상이 반복되자 CJ제일제당은 2028년 상용화를 목표로 육상에서 김을 양식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식품업계 최초로 글로벌 마켓 인텔리전스(MI) 룸을 만들어 원당, 대두 등 원재료의 글로벌 시세와 작황 등을 예측해 기후 변화 리스크를 헤지(위험 회피)하고 있다"고 했다.
다만 농산물은 뾰족한 해결책이 없는 상태다. 최근 대형마트는 작황이 좋을 때 미리 채소, 과일 등을 사들여 보관하다 공급이 부족할 때 내놓는 장기저장(CA) 물량을 늘려가고 있지만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마트 관계자는 "작황이 좋지 않으면 저장도 큰 의미가 없다"며 "건물에서 농작물을 키우는 스마트팜도 규모가 크지 않아 영향력은 제한적"이라고 했다.
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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