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줄이 낙선한 옛 아베파, 22명으로 줄었다
일본 중의원 총선을 앞둔 지난 16일, 자민당 마루카와 다마요 의원은 도쿄 시부야에서 마이크를 잡고 있었다. 마루카와는 “잃어버린 30년으로 고통받는 일본에 희망을 준 건 아베 신조 선생님이었다”며 “이렇게나 아베 선생님이 없는 게 슬퍼지는 선거는 없었다”고 했다. 발언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마루카와 옆에는 아베 신조 전 총리의 배우자 아키에 여사가 있었다. 유세를 지원하러 온 아키에 여사는 “남편도 어딘가에서 그녀(마루카와)에게 힘내라고 말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옛 아베파인 마루카와는 도쿄대 경제학부를 졸업한 TV아사히 아나운서 출신 정치인이다. 참의원 3선에 환경상·도쿄올림픽담당대신 등을 지낸 중량급이다. 참의원 선거 땐 도쿄 전체에서 득표 수 1위를 한 자민당의 얼굴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참의원에서 중의원으로 바꿔 출마한 이번 총선에선 낙선했다. 역시 아베파 소속인 배우자 오쓰카 다쿠 의원도 사이타마현 지역구에서 낙선했다. 아베파의 영광을 누린 부부 정치인이 같은 날 ‘무직(無職)’이 됐다.
10년 넘게 일본 정치를 쥐락펴락해 온 옛 아베파(정식 명칭 세이와정책연구회)가 몰락했다. 27일 총선에서 옛 아베파의 중의원 현직 의원 54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32명이 낙선했다. 살아남은 건 22명이다. 강경 보수의 아성인 옛 아베파에 기대 차기 총리를 노리던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담당상의 전략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지난달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강경 보수 성향 다카이치가 결선 투표까지 가서 2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데는 아베파 의원들이 표를 몰아준 덕이 컸다. 자민당의 파벌은 ‘정당 속의 소(小)정당’과 같은 존재로, 이념과 정책을 공유한다. 정식 명칭보다 통상 수장의 이름을 따서 부른다.
총선에서 아베파 몰락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지난해 말 불거진 ‘정치자금 스캔들’의 장본인이 아베파 의원들이기 때문이다. 아베파는 정치자금 모금 행사 때 각 의원에게 ‘파티권’을 팔도록 하고 할당량을 초과한 판매 금액은 현금으로 되돌려줬다. 이른바 ‘킥백(돌려주기)’인 이 금액을 정치자금 보고서에 기재하지 않았다. 이에 비자금 의혹이 불거졌고 자민당 지지율은 20~30%로 추락했다. 한국의 여의도 격인 정치 1번지 나가타초에선 “총선에서 많으면 아베파 절반이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았다. 실제 낙선자는 더 많았다.
일본 정치권에선 아베와 대립했던 이시바 시게루 총리의 ‘덫’에 아베파가 걸렸다는 말이 나온다. 지난달 총재 선거 때 이시바 진영은 아베파 측에 ‘정치자금 스캔들로 추가 불이익을 주는 일은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베파 의원들이 총재 선거에서 다카이치를 밀긴 했지만, 전면에서 반(反)이시바 활동을 하진 않은 이유다. 하지만 총리에 취임한 이시바는 “정치자금 스캔들에 연루된 의원 34명은 비례대표 중복 공천을 주지 않으며, 정도가 심한 12명은 공천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일본에선 지역구에서 낙선해도 중복 공천받은 비례대표로 당선돼 부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불이익을 받은 의원 대부분은 아베파였다. 이시바 총리는 아베파 의원의 지역구에는 거의 지원 유세를 가지 않았고, 야당인 입헌민주당의 노다 요시히코 대표는 아베파 의원 지역구에 집중적으로 지원 유세를 갔다.
아베파 의원 상당수는 2012년 아베가 민주당에서 정권을 탈환할 때 처음 배지를 달았다. 현재 대부분 4선에 의원 경력 10년이 조금 넘는다. 20~30년 경력 의원이 수두룩한 일본에선 지역 기반이 취약한 편에 속한다. 이들이 ‘정치자금 스캔들을 심판하자’는 입헌민주당의 공세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이다.
아베파 재건의 열쇠는 ‘아베파 5인방’이 쥐고 있다. 2년 전 아베가 피격 사망한 뒤 아베파는 후임 회장을 선출하지 않고 주요 인사 5인이 주도했다. 이 중 하기우다 고이치 전 자민당 정무조사회장, 니시무라 야스토시 전 경제산업상, 마쓰노 히로카즈 전 관방 장관, 세코 히로시게 전 참의원 간사장 등 4명은 이번에 당선됐고, 다카기 쓰요시 전 국회대책위원장은 낙선했다. 살아남은 4명 모두 1962~1963년 출생한 60대 초반의 6~9선 의원이다.
가장 주목받는 인물은 아베의 최측근이었던 하기우다다. 총선에서 자민당 공천을 못 받고도 무소속으로 당선됐다. 선거 때는 다카이치를 비롯해 모테기파의 수장인 모테기 도시미쓰 전 간사장, 아베 아키에 여사 등이 그의 지역구로 달려왔다. 야당인 일본유신회의 마쓰이 이치로 전 대표도 왔다. 유세에서 “나는 더 이상 자민당의 하기우다가 아니다”라고 했던 하기우다는 당선 후 “알몸뚱이의 원점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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