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동물원] ‘Food Duck’이라 ‘푸드덕’ 날갯짓하나...매 출현에 혼비백산한 오리떼
종족에 흐르는 ‘약자 유전자’로 도망치기 일쑤
귀여운 외모의 새끼오리, 안타깝게도 상당수가 먹잇감으로 희생
월트디즈니의 인기 캐릭터 도널드덕은 까칠하고 심술맞고 드센 성격으로 등장합니다. 워너브러더스 루니툰의 까만 오리 대피덕은 한술 더떠 악랄하고 교활하기까지 하죠. 넙대대한 부리와 투실투실한 엉덩이로 익살맞은 모습을 한 오리는 이렇게 캐릭터 세상에서는 한성깔하는 강한 모습으로 그려지는데요. 이건 어쩌면 현실의 오리들의 삶이 너무나 비루하고 고달프기 때문에 인간 창작자들이 보내는 일종의 위안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약자의 비애를 멍에로 짊어진 가련한 오리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동영상으로 시작합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콜루사 야행보호구역에서 2015년 촬영된 동영상(U.S. Fish and Wildlife Service·Sacramento National Wildlife Refuge Complex facebook)이에요. 수백마리의 고방오리와 쇠기러기가 떼로 몰려앉아 한가롭게 쉬던 풍경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됩니다. 오리들이 순식간에 날개를 푸덕거리며 날아오르면서 떨어진 깃털이 눈처럼 떨어지며 잔디를 뒤덮습니다. 순식간에 바다를 갈라놓았다는 어느 예언자의 기적이 떠오를 정도예요. 혼비백산(魂飛魄散)이라는 사자성어에 이처럼 맞는 용례가 또 어딨을까요? 이 난리통이 어떻게 벌어졌는지는 느린 화면으로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매 한마리가 오리떼 위로 저공 선회비행을 하자, 일순간 신변에 위협을 느낀 오리들이 ‘날개야 나 살려라’하며 동시다발적으로 흩어진 겁니다. 여러마리도 아닌 고작 한 마리인데도 이 난리입니다. 게다가 절대적인 덩치를 비교해도 오리가 매를 능가합니다. 몇마리가 마음을 독하게 먹고 협업하면 갈퀴가 달린 넓적한 발로 매를 짓뭉개서 밟아죽여 씬(thin) 피자처럼 납작하게 만들고도 남을법한 피지컬이에요.
그런데도 오리들은 천적으로 인식하고 재빨리 줄행랑을 친겁니다. 함께 뭉쳐있되 뭉치면 강하다(strong together)라는 개념이 애당초 탑재돼있지 않은 거죠. 대신 약자·먹잇감으로서의 공포의 유전자가 종족을 통해 전해져온 겁니다. 걸리면 죽는다, 끝장이라는 본능적 공포가 엄습한 거예요. 이 장면에서 오리·기러기들이 보여주는 공포는 엄살이 아닙니다. 매가 먹잇감을 향해 급강하할때는 최고 속도가 시속 250㎞까지 치솟습니다. 몸뚱아리 자체가 거대한 탄환이 되는 거예요. 그 탄환이 발톱을 추켜세우고 내리꽂으면 새 중에서 가장 덩치가 큰 타조라도 버텨내기 어려울 거예요. 하물며 오리나 기러기는 어떻겠습니가? 퍽 하고 발톱이 꽂히는 순간 뼈가 빠개지고 내장이 파열되고 혈관이 터지면서 산송장이 되고 말 것입니다.
“꽤애액~” 처절하게 울부짖는 오리·기러기의 비명을 입맛을 돋워주는 식전음악으로 즐기면서 매는 오리의 깃털을 북북 뜯어내며 플러킹(plucking)을 시작할 것입니다. 깃털이 뽑히고 뻘건 맨살이 드러나면, 숨통을 끊어주는 최소한의 자비도 없이 가장 연약한 부위를 파고들어 피범벅이 된 살점과 근육과 내장을 가차없이 뜯어내겠죠. 먹잇감이 된 가련한 오리는 혼이 빠져나갈때까지 제몸이 뜯어먹히는 광경을 지켜봐야 할테고요. 수천년·수만년간 이어져온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를 통해 오리·기러기들은 맹금류에 대한 본능적 공포를 체득했습니다. 가련하게도 이게 오리·기러기류가 살아가는 방식이랍니다. 사람이 위대한 건 어쩌면 이 피지컬의 절대 열세를 지능으로 극복한 유일한 생명체이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오리·기러기류는 왜가리·백로류와 함께 물새 세계의 양강을 이룹니다. 왜가리·백로류는 창과 칼을 연상시키는 길쭉하고 뾰족한 부리와 긴 다리를 앞세운 왕성한 먹성의 육식조로 일가를 이뤘습니다.
이에 비해 오리·기러기류는 납작한 부리와 짧은 다리와 물갈퀴로 무장하고 있고, 작은 물고기나 수서곤충, 갑각류를 곁들이긴 해도 기본적으로 초식입니다. 이런 특성 때문에 사람들에게는 순하고 약하고 귀여운 이미지, 거기에 맛좋은 고기를 제공하는 가축의 일원으로도 인식돼있죠. 오리·기러기류는 크게 세 분파로 나뉘는데 ‘목의 길이’라는 비교적 명확한 기준이 있어요. 가장 짧은 목을 한 놈들이 오리, 비슷한 몸뚱아리지만 제법 목다운 목을 한 놈들이 기러기, 이들보다 훨씬 커다란 덩치에 S자형으로 구부려지는 우아하고 매력적인 목을 가진 부류가 이 집안의 대장 격인 고니(백조)입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자면 수컷의 아름다운깃털 색깔로 유명한 원앙은 오리, 동화 ‘닐스의 이상한 모험’에서 함께 여행하는 새들은 기러기, ‘미운 오리 새끼’의 주인공이 만나게되는 부모가 고니입니다.
알껍질을 깨고 나온지 얼마 안된 솜털이 보송보송한 아기오리들이 어미뒤를 뒤뚱뒤뚱 쫓아가는 장면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합니다. 이 사랑스런 아가들이 어미·아비처럼 무럭무럭 자라나 종족의 대를 이어간다면 얼마나 흐뭇할까 싶습니다. 그렇지만 불행히도 그렇게 될 리도 없고, 냉정하게도 그래서도 안됩니다. 지구상 동식물들이 살아가며 약육강식하는 것은 잔혹해보일지언정 생명의 바퀴를 탈없이 우직하게 굴러가게 하는 에너지입니다. 여느 새보다 훨씬 많이 알을 부화시키는 오리의 번식 방식도 그 일부를 이룹니다.
솜털이 보송보송한 아기오리들을 군침가득흘리며 탐을 내는 수달·왜가리·백로·메기·뱀·도마뱀이 득시글거릴것이고, 실제로 한배에서 나온 오리들 상당수가 새끼때 다른 짐승의 뱃속에서 삶을 마감하게 됩니다. 다른 시각으로 보면 이렇습니다. 이렇게 많은 오리들이 성체가 될때까지 전원 생존하고, 이런 일이 되풀이된다면 그 자체로 하천 생태계에는 커다란 문제가 생길 거예요. 포식자들이 과잉번식을 막아주는 거죠. 매가 오리나 기러기를 산채로 잔혹하게 뜯어먹는 장면도 그런 맥락의 연장선상에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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