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영의 저랑 같이 신문 읽으실래요] [19] 흑백논리에 갇히지 않으려면
지난 주말, 신청해 놓은 인문학 강의가 있어서 집을 나섰다. 강의장에 도착하니 시작하기 직전이었다. 강사는 인사를 하고 바로 하늘과 바다가 담긴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다음 내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질문했다.
“하늘이 무슨 색 같아요?”
“파란색요.”
곧이어 화면에는 잔디 사진이 나왔고 오른쪽 분단에 앉아 있던 2명에게 무슨 색이냐고 물었다. 한 명은 초록색, 한 명은 연두색이라고 했다. 이번에는 강사가 다양한 빛깔의 색상표를 보여주며 말을 이어갔다.
“아까 잔디 색깔은 누군가에게는 초록이지만 연한 초록, 연한 초록보다 조금더 연한 초록 등 다양한 빛깔로 존재할 겁니다. 초록과 초록 사이에는 수많은 초록이 있고 노랑과 노랑 사이에는 수많은 노랑이 있어요.”
이어서 강사는 천천히, 모두를 둘러보고 말했다.
“자 그럼, 누군가가 우리에게 질문했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대답은 ‘네’가 아니면 ‘아니요’뿐일까요? 네와 아니요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답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무수히 많은 답….” 중얼거리다가 얼마 전 본 기사가 떠올랐다. ‘폰 주고 월급 올리니, 병사들 도박 코인. 돈 빌려 수천만 원 탕진도’라는 기사다. 2020년부터 국방부는 병사들의 휴대전화 사용을 전면 허용했고 저녁이 되면 상당수 병사가 생활관에서 휴대전화로 코인 거래를 한다고 한다. 육군 전방 부대의 김 모 병장은 월급 몇 달만 모아도 몇 백만 원이 되니 코인 거래를 안 하는 사람이 바보라는 분위기라고 했다. 종목은 다르더라도 결국 돈을 다 날린 뒤 대부 업체 문을 두드리는 이가 적지 않다고 한다.
군인들 나이야 제각각이지만 대부분 20대일 텐데 그들은 왜 이렇게 한 방을 노리게 되었을까. 아마도 누군가가 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를 지속해서 듣지 않았을까. 그 말을 듣고는 생각했을 것이다. 투자하는 것, 투자를 하지 않는 것. 단 두 가지를. 그리고 빠르게 결론을 내렸겠지. 안 하면 바보다!
답안지에 보기가 둘뿐이라고 생각하는 것, 또 둘 중 하나는 무조건 정답이고 하나는 오답이라는 생각하는 것. 내가 그렇게 사고한다고 인식하면 잠시 생각도 행동도 멈추자. 처음으로 돌아가 네, 아니요 사이 수많은 답이 있음을 기억하자. 답은 양극단에만 있지 않다. 우리는 다양하고 또 섬세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나는 그것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신문이라고 생각한다. 신문 읽기는 당신이 흑백논리에 갇히지 않고 넓게 사고하게 한다. 나 역시 기사를 읽으면서 ‘나라면 어땠을까’를 생각하면서 생각의 폭을 넓히는 중이다. 당신도 지금 이 기사를 읽으면서 좋다, 나쁘다가 아닌 다른 생각이 떠올랐는가? 그러면 시작한 것이다. 다양하게 생각하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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