촘촘한 투수진과 뜨거운 방망이…KIA는 내년에도 왕좌를 지킬까
37년 만에 광주 홈구장에서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축배를 들었지만, 기아(KIA) 타이거즈 앞에는 새로운 과제가 놓여 있다. 한국시리즈 우승팀은 매번 “왕조”를 거론하며 2연패에 도전하겠다는 포부를 드러내는데, 이를 실현에 옮긴 팀은 많지 않다. ‘V12’를 달성한 기아는 내년에도 왕좌를 지킬 수 있을까.
기아 역시 한국시리즈를 우승한 다른 팀처럼 왕조 건설을 꿈꾼다. 최준영 기아 타이거즈 대표이사는 지난 29일 광주 홀리데이인 호텔 연회장에서 심재학 단장, 구단 직원, 선수단 전원을 앞에 두고 “12번째 우승을 했는데, 앞으로 더 잘해서 5연패까지 했으면 좋겠고, 명실상부 타이거즈 왕조를 이룩해 주시기 바란다”는 소망을 전했다. 이범호 감독은 “왕조라는 것은 굉장히 (구축하기) 힘들다”면서도 “세밀한 부분만 잘 잡아낸다면 올시즌처럼 좋은 경기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선수단 역시 경기가 끝난 직후부터 왕조 건설을 향한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4차전 만루 홈런으로 삼성 라이온즈의 기세를 꺾었던 포수 김태군은 “장기집권은 당연히 할 수 있는데, 조건이 있다. 선수들의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 우승했다고 쉽게 얻어지는 것은 없다. 어떻게 연습하고 준비해야 하는지를 놓고 다시 한 번 (선수들의) 의식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기아 구성원들이 내년에도 우승을 언급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기아는 KBO 10개 구단 중 베테랑과 젊은 선수 간 조화가 잘 이뤄진 팀이다. 마운드에선 양현종이 선발로 버티고 있고, 타선에는 맏형 최형우를 포함해 김태군, 김선빈, 나성범 등이 제 역할을 충분히 해줬다. 기아는 올해 정규 리그에서 유일하게 팀 타율 3할(0.301)을 넘긴 팀이었는데, 이들은 내년에도 타선을 굳건히 지킨다.
올시즌 커리어하이를 찍은 김도영을 필두로 젊은 선수들의 기량도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범호 감독은 “김도영이 이른 시간에 성장하면서 팀 자체가 굉장히 변했다”며 “젊은 선수가 내야 한 자리를 차지하면서 동료들과 동반 상승하는 효과를 냈다. 다른 또래 선수들도 김도영처럼 분발해서 매년 새로운 자원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팀에 견줘 젊은 투수층이 두꺼운 점 역시 기아가 지닌 강점 중 하나이다. 팀 내 국내 선수 중 1선발인 양현종이 흔들리더라도 이의리(후반기), 윤영철이 내년 시즌에는 부상을 털어내고 돌아온다. 여기에 이번 한국시리즈에서 기량을 증명한 2000년생 김도현과 2002년생 황동하 역시 내년 기아의 선발진을 구성할 재목으로 꼽힌다. 이순철 해설위원은 “외국인 선수 두 명만 갖춰진다면 양현종이 10승을 못 하더라도 김도현과 황동하가 충분히 선발 가능성을 보여줬다. 투수진이 흐트러지지 않았기 때문에 내년에도 한국시리즈로 가는 데 큰 문제가 없다”고 평가했다.
지난 시즌 통합 챔피언인 엘지(LG) 트윈스의 우승 원동력은 튼튼한 불펜진이었는데, 기아 역시 불펜진이 튼튼하다. 이번 한국시리즈에서 기아가 삼성에 경기 초반 끌려다니면서도 반전을 꾀할 수 있었던 이유는 곽도규, 전상현, 장현식이라는 철벽 계투진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무리 투수 정해영 역시 내년에도 기아의 뒷문을 지킨다.
지난해 엘지와 올해 기아 모두 불펜진이 튼튼하다는 점은 같으나, 투수진 변화에는 큰 차이가 있다. 기아는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장현식을 제외하고는 투수진에 변화가 없다. 엘지는 작년 우승 직후 마무리 고우석이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하면서 중간 계투 유영찬이 마무리로 보직을 변경해야 했다. 이정용은 국군체육부대(상무)로 갔고, 함덕주는 팔꿈치 수술을 받아 제기량을 펼치지 못했다. 믿었던 불펜진에 구멍이 생기면서 마운드가 부실해진 엘지는 한국시리즈 2연패를 노렸지만, 올해에는 플레이오프 진출을 끝으로 짐을 싸야 했다.
그럼에도 “야구에서 100%는 없다”는 박진만 삼성 라이온즈 감독의 말처럼, 방심은 금물이다. 민훈기 스포티비 해설위원은 “전체적으로 팀 짜임새가 좋고 선수층이 두껍지만, 베테랑들의 노쇠화가 어떻게 될지를 변수로 꼽을 수 있을 것 같다”며 “최형우, 나성범 등 중심 타선의 선수들이 나이를 한 살 더 먹게 됐다. 김도영 역시 커리어하이를 찍었는데, 내년 시즌에서도 더 치고 나갈 수 있을지도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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