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비 올리면 과다 의료 이용 방지될까··· “병원 가자니 굶어죽고, 안 가자니 아파 죽게 생겼다”

이혜인 기자 2024. 10. 29.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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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정부의 의료급여 정률제 개편 철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참여연대 제공

지난 7월 정부가 의료급여 수급권자들의 의료비 부담을 높이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편하겠다고 예고한 것을 두고, 대상자들과 보건 관련 시민단체들로부터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의료 과다이용 억제 효과보다 수급자들의 ‘병원 문턱’만 높이는 부작용이 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정부도 보완 작업에 착수했다.

29일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 무상의료운동본부 등은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의료급여 정률제 개편안 철회’ 결의대회를 열었다. 이들 단체는 수급자 16명을 대상으로 의료비 지출 내역을 분석한 결과 5명의 본인부담금이 늘어나고, 최대 21만1898원까지 늘어나는 사람도 있다고 발표했다. 이 단체들은 “의료비 부담이 얼마나 늘어날지 예측하기 어려워 의료 이용을 포기하는 사례가 적지 않을 것”이라며 “정률제는 의료 필요의 원칙에 어긋나는 비윤리적인 제도”라고 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7월 중앙생활보장위원회를 개최하고 의료급여 본인부담체계를 ‘정액제’에서 ‘정률제’로 바꾸겠다고 예고했다. 현재는 의료급여 1종 수급자의 경우 의원(1차)에서는 1000원, 병원(2차)에서는 1500원, 상급종합병원(3차)에서는 2000원 등 정해진 액수(정액)의 진료비를 냈다. 변경 후에는 의원은 진료비의 4%, 병원은 6%, 상급종합병원은 8% 등 정해진 비율(정률)의 진료비를 내야한다. 1회 500원이던 약값은 전체 약값의 2%(상한금액 5000원)로 올라간다.

정부는 본인부담금 인상을 통해 과다 의료이용이 억제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복지부 관계자는 “의료급여는 정해진 한도 없이 서비스를 이용할 때마다 지원하는 ‘현물급여’의 특성이 있다”며 “의료급여 체계가 지속되려면 적정의료 수준을 관리할 필요가 있어서 고민 끝에 내놓은 방안”이라고 말했다. 복지부는 건강생활유지비(진료 보조금)를 월 6000원에서 1만2000원으로 인상해 수급자들의 진료비 인상 부담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실제 수급자들 중에는 진료비 부담이 크게 증가하는 경우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기초생활수급자이자 의료급여 대상자인 A씨(68)는 “병원을 가자니 굶어 죽고, 안 가자니 병들어 죽겠다”고 했다. 20년 넘게 당뇨를 앓아온 그는 합병증인 망막증과 고지혈증까지 치료하기 위해 병원을 자주 다닌다. 70여만원의 생계급여가 그의 생활비 전부인 점을 감안하면, 적은 금액의 의료비도 그에겐 큰 부담이다.

만약 정률제로 개편되면 A씨의 의료비는 크게 오른다. 한 번 처방에 500원을 내던 약값은 5000원으로 10배가 된다. 망막증 치료 때문에 대학병원을 다니면서 1회 진료 시 내던 2000원은 16만원까지 올라간다. 복지부는 한 달에 5만원 이상의 진료비가 발생하면 추후 환급해주기로 했으나, 일단 큰 돈을 지출한 후에 환급되기까지 기다려야 한다.

정성식 시민건강연구소 연구원이 의료패널 조사자료(2021년)를 활용해 분석한 결과를 보면, 정률제 개편 시 의료급여 1종 수급자가 1차 의료기관 외래이용 시 평균 본인부담금이 기존 1000원에서 3054원으로 약 3.1배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 연구원은 “‘복지부가 정의하는 과다 이용’이라는 개념 자체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는 의료급여 수급자들의 의료이용 과다에 대한 근거로 의료급여 수급자와 건강보험 가입자의 1인당 진료비와 외래 일수를 제시했으나, 이는 건강보험 가입자와 비교해 만성, 중증질환 비율이 높은 의료급여 수급자의 특성상 병원 이용이 많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간과했다”고 말했다.

복지부도 비판 여론을 고려해 기존안을 보완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내년 초 제도 시행을 목표했었으나, 여러 의견이 나와서 보완시행을 하기 위해 논의 중”이라며 “진료비 환급까지 시차가 있는 것 등은 분명한 문제라 생각해 개선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혜인 기자 hye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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