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반도체 하청노동자 자가면역질환, 산재 인정

김지환 기자 2024. 10. 29.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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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반도체 제조공정에 사용되는 스크러버(유해가스 정화 장비) 설비 유지·보수 업무를 하던 하청 노동자에게 발생한 자가면역질환이 업무상 질병이라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윤상일 판사는 지난 17일 A씨(31)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요양 불승인 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 것으로 29일 확인됐다.

A씨는 2017년 7월부터 2020년 5월까지 스크러버 등을 생산하는 유니셈 소속으로 삼성전자 화성공장에서 스크러버 설비 유지·보수를 담당했다. 그는 일을 시작한 지 1년 6개월 만인 2019년 1월부터 피부염, 탈모, 기절, 망상 등의 증상을 겪었고 2020년 7월 최종적으로 ‘전신 홍반성 루프스’라는 자가면역질환 진단을 받았다.

A씨는 “협소한 작업 공간 등으로 인해 스크러버 유지·보수 업무 수행 중 보호구가 벗겨지는 일이 잦아 유해화학물질에 빈번하게 노출됐고, 육체적·정신적 스트레스가 누적돼 전신 홍반성 루프스가 발병했다”며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신청을 했다. 근로복지공단은 2021년 9월 스크러버 설비 유지·보수 작업 시 발견되는 유리규산은 독성이 낮은 비결정형으로 확인된다며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A씨는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근로복지공단의 불승인 처분이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역학조사에 따르면 국내 연구 결과 스크러버 설비 유지·보수 작업 시 유리규산이 발견됐다. 대부분 비결정형이긴 하나 결정형 유리규산이 포함돼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게다가 독성이 낮은 비결정형이라고 해도 높은 투여량에서는 독성이 보고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정리하면 유해물질 노출량이 어느 정도였는지와는 별개로 A씨가 취급한 설비, 작업방법, 작업환경에 비춰볼 때 A씨가 유해물질에 노출됐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재판부는 또 “삼성전자 산하 다른 공장 근로자들에 대한 업무상 질병 판정서에 따르면 반도체 제조공정 근로자들에게 전신 홍반성 루프스가 발병한 것이 확인된다”고 밝혔다.

A씨는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반올림)’를 통해 “근로복지공단은 첨단산업의 특수성을 핑계로 근로자들의 건강을 외면하지 말고, 사회적 책임과 안전망을 제공해야 한다”고 밝혔다.

A씨를 대리한 법률사무소 시선 정일호 변호사는 “1심 법원은 공단 판정에 동의하는 진료기록감정기관 의견은 현재의 지식 수준과 기준에 의한 것일 뿐이란 점을 지적하고 발병 원인이 의학적, 자연과학적으로 규명되지 않은 상태라면 인과관계 판단은 경험칙과 사회통념에 따라 합리적으로 추론해야 한다고 짚었다”고 말했다.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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