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인과성 안 밝혀졌어도”…반도체 노동자 희귀암 산재 판결

장현은 기자 2024. 10. 29.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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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공장에서 15년 넘게 일하다 희귀암 진단을 받은 노동자에게 법원이 산재 인정 판결을 내렸다.

질병과 작업 환경의 과학적 인과성이 드러나지 않았어도, 상당인과관계를 부정하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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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물질과 상당인과관계 쉽사리 부정하기 어렵다”
삼성공장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지면서 반도체 공정의 직업병 논란을 세상에 처음 알린 고 황유미 씨의 11주기인 지난 2022년 3월 6일 오후 고 황유미 씨와 삼성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 행진에 참가한 이들이 서울 용산구 한남동 리움미술관을 출발해 서초동 삼성전자 앞 반올림 농성장으로 향하고 있다. 맨 앞은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반도체 공장에서 15년 넘게 일하다 희귀암 진단을 받은 노동자에게 법원이 산재 인정 판결을 내렸다. 질병과 작업 환경의 과학적 인과성이 드러나지 않았어도, 상당인과관계를 부정하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서울행정법원 제6단독 윤성진 판사는 지난 23일 ㄱ씨가 제기한 요양불승인처분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ㄱ씨는 2004년부터 매그나칩 반도체 주식회사 청주공장(현재 에스케이하이닉스 자회사인 에스케이키파운드리의 청주공장)의 일명 ‘클린룸’이라고 불리는 특수 밀폐공간에서 증착 공정 장비 유지 및 보수 담당 엔지니어로 근무했다. ㄱ씨는 액체가스를 교체해 투입하거나 가스 누출 등을 후각으로 직접 점검했고, 부품을 불산 수조에 담갔다가 빼고 유기용제로 설비를 닦아내는 작업 등을 했다. 클린룸 구조에서는 내부 공기가 순환되는데, 같은 클린룸 내부 다른 세부공정에서는 벤젠, 프롬알데히드나 아르신, 비소 등의 발암물질을 물질을 다루기도 했다.

ㄱ씨는 2011년 콩팥 위 호르몬 생성기관인 부신에 갈색세포증을 진단받고 치료받던 중 37살이던 2020년 3월 악성 종양, 즉 부신암을 진단받았다. ㄱ씨는 2021년 7월 반도체 공장 근무 중 노출된 각종 유해물질로 인한 발병이라며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 신청을 했지만, 공단은 “해당 공정과 질병 사이의 직업적 요인이 알려져 있지 않다”며 불승인 처분을 했다. 공단은 따로 역학조사 등 전문 조사에도 나서지 않았다.

하지만 법원은 “업무와 이 질병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윤 판사는 “원고가 취급한 유해물질로부터 비롯될 수 있다는 점이 의학적, 과학적으로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원고가 취급한 유해물질 종류가 매우 많고, 이 노출 환경에서 장기간 근무한 이후 일반적인 경우(40∼50대)보다 빠르게 이 병에 걸리게 됐다”며 “다른 원인이 될 유전자 변이나 가족력도 없고 위 상병과 유해물질이 무관하다는 점 역시도 의학적, 과학적으로 증명된 게 아니라면 상병과 유해물질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쉽사리 부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또한 “그럼에도 공단은 상병의 특징과 발병원인 및 횟수, 상병과 원고의 작업 환경 사이에 어떠한 상관성이 있는지 등에 대해 전문조사를 실시하지 않고 처분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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