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성평등 정책 후퇴, 위원회 ‘성비’ 미준수 급증···노동부·경찰청 5년째 미준수
윤석열 정부 들어 법으로 정해진 성비를 지키지 않은 정부위원회 비율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여성가족부가 성별영향평가위원회 비상설화를 추진하는 등 성별영향평가를 무력화하려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29일 국회예산정책처의 ‘2025년도 예산안 위원회별 분석’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정부위원회 511곳 중 법정 성비를 지키지 않은 곳은 119곳(23.3%)였다. 성비 미준수 비율은 2019년 20%에서 2022년 17.1%까지 떨어졌다 지난해 다시 상승했다. 지난해 법정 성비를 지키지 않은 위원회 중 45곳은 ‘여성인력 부족’을 미준수 사유로 들었다.
양성평등기본법 21조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특정 성별이 위원회 위촉직의 10분의 6을 초과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 조항에 따라 여성 혹은 남성 위촉직 위원이 최소 40% 위원회에 포함돼야 한다. 여가부는 법정 성비를 지키지 않은 위원회에 개선을 권고할 수 있다.
여가부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최근 5년간 3회 이상 법정 비율을 지키지 않은 위원회는 87곳이었다. 경찰청 경찰위원회, 고용노동부 최저임금위원회, 국가보훈부 보훈심사위원회, 국토교통부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회, 보건복지부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등은 2019년부터 5년간 위원회 법정 성비를 한 번도 충족하지 않았다.
예정처는 “여가부 개선 권고가 실효성을 발휘하는 데에 한계가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양성참여를 확대하려는 사업목적을 실질적으로 달성할 수 있도록 개선권고의 실효성 확보 방안 등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정부가 성별영향평가 평가 지표를 바꾸고 성별영향평가위를 비상설화하면서 성별영향평가를 축소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연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입수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까지 행정안전부는 지자체의 ‘성별영향평가 정책 개선 이행률’을 평가했는데 올해부턴 ‘성별영향평가 실효성 제고 노력’을 들여다 본다. 지금까지는 성별영향평가 결과에 따라 개선과제를 지자체가 내놓고 이를 이행했는지를 평가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정책 개선 계획만 세워 제출하면 평가 점수를 높게 받을 수 있게 된다.
성별영향평가는 정책의 수립·시행 과정에서 해당 정책이 성평등에 미칠 영향을 평가하는 절차다. 여성 화장실에만 있던 기저귀 교환대를 남성 화장실에도 설치해 아이 돌봄을 남녀 모두 할 수 있게 한 정책 등이 성별영향평가가 적용된 사례로 꼽힌다.
정부는 지난달 6일 성별영향평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입법예고했다. 입법예고안에는 중앙성별영향평가위를 비상설로 전환하고, 필요 시 해산할 수 있는 조항이 담겼다. 중앙성별평가위는 보건, 일자리 등 정부정책에 성평등 관점이 빠졌는지 논의하는 기구로 여가부 차관이 위원장을 맡는다.
이 의원은 “성별영향평가에 따라 개선계획만 세우게 되면서 이행률이 떨어질 게 뻔한 상황”이라며 “성평등 노력을 지속해야 할 상황에서 정작 성별영향평가위 기능을 축소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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