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동안 공항 임대료 50억 원 체납·편취… ‘검은 손’ 추적기 [취재후]
■ 10년간 이어진 '청주공항 임대료 체납·편취' 사건, 배후는?
한 해 수백만 명이 이용하는 청주국제공항. 이곳에 설치된 편의점이나 카페 등 상업시설은 모두 한국공항공사가 임대 방식으로 운영하는 '국가 재산'입니다.
그런데 이런 국가 재산을 10년 가까이 특정 인물이 과점 형태로 운영하고, 공항공사에 내야 할 임대료 수십억 원을 빼돌리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사유 시설도 아닌 국가가 소유·관리하는 시설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KBS는 청주공항에서 발생한 임대료 편취 의혹을 심층 취재했고, 특정 인물 주도로 10년 동안 계속된 임대료 체납·편취 사건의 전모를 확인했습니다.
■ "매출액 조작해 임대료 빼돌려"… 업체 대표는 2000년생
지난 8월, 청주지방검찰청은 청주공항에 입점한 편의점과 카페 등 식음료 판매업체 4곳을 압수수색했습니다.
해당 업체들이 100억 원 가까운 매출액을 조작해, 공항공사에 내야 할 임대료 약 30억 원을 빼돌렸다는 의혹이 불거지자 강제 수사에 돌입한 겁니다.
이런 의혹은 공항공사의 한 직원이 올해 초 상업시설 매출 관리시스템을 점검하다가, 이상 거래 내역을 발견하면서 수사에 이르게 됐습니다.
해당 업체들은 매달 매출액의 26~30%를 공항공사에 '매출 연동 임대료'로 납부하고 있는데, 매출액을 실제보다 적게 신고하는 수법으로 임대료를 빼돌렸다는 게 의혹의 핵심입니다.
KBS는 검찰의 압수수색 이후, 추가 취재를 통해 문제가 된 업체 4곳이 사실상 동일인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업체 4곳을 운영하는 건 법인 2곳이었는데, 이들의 등기부등본 등을 확보해 살펴본 결과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이 상당수 중복돼 있었습니다.
특히 법인 2곳 모두에서 대표이사로 이름을 올렸던 인물은 2000년생인 한 남성이었습니다.
해당 법인들의 설립 연도는 2018년과 2020년. 갓 20살을 넘은 남성이 사내이사와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는 사실이 아무래도 석연치 않았습니다.
그때, 취재진의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 청주공항, 7년 전에도 임대료 체납 사건 발생
2017년, 청주공항에서 면세점 등 5개 업체의 임대료 체납 사건이 발생한 적이 있습니다.
5개 입점 업체가 체납한 임대료는 25억 원. 공항공사 감사실은 이 가운데 약 23억 원을 체납한 4개 업체가 특정 인물에 의해 운영되거나, 서로 연계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감사 보고서를 내놨습니다.
당시 취재로 확인한 '특정 인물'은 1969년생 박 모 씨입니다. 박 씨는 2014년부터 면세점 등 4개 업체 운영에 관여하면서 막대한 임대료를 체납해 공항공사에 손해를 끼쳤습니다.
공항공사는 밀린 임대료를 받기 위해 민사소송까지 제기해 승소했지만, 문제의 법인이 파산해 돈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7년의 시간차를 두고 청주공항에서 벌어진 임대료 체납과 편취. 두 사건이 무관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 '체납 업체 대표가 아들 명의로 다시 임대' 보도… 결국 사실로
취재진은 과거 임대료 체납 사건을 취재하면서 모았던 자료 등을 다시 찾아 올해 문제가 된 업체들과의 연관성을 하나하나 따져봤습니다.
그 결과, 7년 전 문제가 됐던 업체들과 최근 편취 의혹이 제기된 업체들의 임원진 일부가 겹치는 등 특정 세력이 개입한 정황이 확인됐습니다.
특이점은 또 있었습니다. 올해 문제가 된 업체들에 대표이사로 이름을 올렸던 2000년생 박 모 씨와 과거 임대료를 체납한 1969년생 박 모 씨가 한때 같은 주소에 살았던 겁니다.
과거 수십억 원의 임대료 체납으로 공항에서 쫓겨나다시피 했던 박 씨가 이번에는 가족의 이름으로 청주공항 상업시설 임대차 계약을 하고, 실제로는 자신이 운영했을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이었습니다.
또 다수의 관련자를 접촉한 결과, 이들도 박 씨를 실제 운영자로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KBS는 이런 취재 내용을 지난 8월부터 단독 보도했고, 검찰 수사 끝에 의혹의 대부분이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 핵심 인물 기소됐지만… 재발 방지 대책 시급
청주지방검찰청은 KBS 보도 이후 실제 운영자가 따로 있는지 수사를 확대했습니다.
그리고 1969년생 박 씨가 아들 명의로 청주공항 상업시설을 빌린 실제 운영자라는 것을 확인해 지난 24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사기와 업무방해 혐의로 구속기소 했습니다.
범행을 도운 업체 직원 1명도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박 씨는 공항과 연동되지 않은 별도의 카드단말기를 몰래 설치해, 고객들의 결제를 유도하는 수법으로 실제 매출액을 조작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2019년 3월부터 이렇게 조작한 매출액만 86억 원, 이를 통해 빼돌린 임대료는 26억 9,000여만 원에 이릅니다.
청주지검 관계자는 "피의자가 입점 초기부터 별도의 카드단말기를 설치하는 등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했던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습니다.
10년에 걸쳐서 청주공항에서 임대료 체납·편취를 반복한 박 씨는 결국 법의 심판을 받게 됐지만, 공항이 입은 손해가 회복될지는 불투명합니다.
박 씨나 그가 연관된 업체들이 과거부터 체납하거나 편취한 것으로 알려진 임대료 추정액만 50억 원이 넘습니다.
보도 이후 공항공사는 해당 업체들에 계약 해지를 통보했지만, 이들은 계속 영업을 이어오면서 '무단 점용' 갈등까지 빚어졌습니다.
특히 실제 운영자 박 씨는 구속되기 전 취재진과 통화에서 공항공사의 계약 해지 처분은 부당하다면서, 법적 대응을 예고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논란은 형사뿐 아니라 민사상으로도 법정 공방이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특정인이 공항 상업시설을 과점 운영하거나 다른 사람 명의로 손쉽게 계약을 따낼 수 있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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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근섭 기자 (sks85@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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