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보이지 않는 격차, 조금씩그러나 끊임없이
[지역 기자의 시선]
[미디어오늘 김연수 경남도민일보 기자]
서울 방송국 작가들에게서 이따금 연락이 온다. 목적은 분명하다. 지역 미담 주인공이나 분노 유발 사건의 당사자를 찾으려는 것이다. 지역신문에서 '팔리는' 소재는 늘 이렇게 강렬한 감정을 자극하는 것이다. 반면, 복잡하고 즉각적인 체감이 어려운 이슈들은 외면되기 일쑤다. 지방교부세 삭감 문제도 그중 하나다.
지방교부세가 2년 연속 대폭 삭감될 전망이다. 지난해 세수 결손이 역대 최대치인 56조 원에 달한 데 이어 올해도 29조 원이 모자랄 가능성이 커졌다. 지방교부세는 내국세의 19.24%, 종합부동산세 전액, 그리고 담배에 부과하는 개별소비세의 45%로 구성된다. 내국세 수입이 줄면, 이에 연동되는 지방교부세 역시 줄어들 수밖에 없다.
지방에서는 정부가 지자체를 희생양으로 삼는다는 말이 나온다. 정부가 미래를 과도하게 낙관적으로 전망하고(세입 과대 추계), 부자 감세 정책을 펼친 탓에 예측이 빗나갔는데 그 책임은 지방에 돌린다는 것이다. 지방교부세는 국고에서 '지원하는' 시혜적인 재원이 아니다. 본래 국가와 지자체가 '공유하는' 고유재원이다. 정부가 배포하는 지방교부세 산정 해설에서도 지방교부세 성격을 '본래 지방자치단체의 세수입인 것을 국가가 대신 징수해서 지방자치단체에 재배분하는 일종의 간접과징 형태의 지방세'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과장을 조금 보태면, 지자체가 정부에 징세를 맡겼더니 제대로 돈을 제대로 걷어오지 못한 꼴이기에 뿔이 날 수밖에 없다.
지자체 저마다 비상이 걸렸다. 정부 예산에 따라 예상한 지방교부세 규모를 기반으로 각종 사업 계획을 세우지만, 세수가 줄어 계획이 어그러지고 있다. 예를 들어 창원시는 올해 지방교부세 예상액이 당초보다 511억 원 감소할 것으로 예상한다. 감소 추정액만 놓고보면 전국 시 단위 지자체 중 최대 규모다. 10월1일자 MBC경남 보도에 따르면 창원시는 교부세 감액에 따라 '진해문화센터 신축' 같은 창원시의 사업과 정책 10여 개가 중단되거나 지연될 것으로 보인다. 또 재정자립도가 23.51%로 전국 광역단체 중 최하위에 있는 전북도는 도지사 주재로 회의를 열고 '불필요한 사업 버리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한다.
주민들은 알게 모르게 일상생활에서 다양한 행정서비스를 제공 받는다. 교육, 복지, 보건위생, 치안, 소방, 도로, 상·하수도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것들 대부분을 지방자치단체가 제공한다. 그런데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무언가는 일정 부분 포기할 수밖에 없다. 가장 먼저 포기하는 것이 무엇일까? 당장 눈에 잘 띄지 않는 문화적, 정신적 자원이다. 당장 주민들의 의식주에 지장이 생기진 않겠지만 지역축제, 지역예술가 지원, 마을 공동체 지원 사업 등이 사라질 테다. 이로써 지역민은 삶이 풍요로워질 '기회'를 박탈 당한다.
흔히 인간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고 말한다. 물론 다양한 선택지가 속에서 빵만 먹기를 선택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다. 하지만 빵 말고 다른 어떤 것을 추구할 수 있는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사람들은 어떠한 저변이 갖춰져 있을 때 그 부재를 상상할 수 있다. 저변이 없는 상황에서는 그 필요성조차 쉽게 알아채지 못한다. 특히 문화·예술 저변이 취약한 지방에서는 그것이 풍요로운 사회를 쉬이 상상할 수 없다. 그래서 교부세가 삭감되고 무형의 가치를 추구하는 사업들이 배제당해도 문제의식을 갖기가 여간 쉽지 않을 수 있다.
서울과 지방 간 격차를 논할 때 보통 사회간접자본과 같은 물질적인 차이에 주목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보이지 않는 격차, 즉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문화·예술적 다양성과 지역 공동체 활성화의 기회들은 쉽게 간과된다. 이처럼 무형의 가치들은 소홀히 여겨지지만,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은 결코 작지 않다. 그 격차는 조금씩 그러나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그것을 눈치채지 못한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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