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그려본 투표용지는”···발달장애인들은 그림으로 설명했다
“존경하는 판사님 발달장애인대(인데) 그림투표용지가 너무너무 피료(필요)합니다. 판사님 저는 다서(다섯)살에 발달장애인 판정을 받았습니다. 판사님 이렇게 선관이(선관위)랑 싸우기도 2년째 댔(됐)습니다. 글로 호소를 드립니다.”
서울 관악구에 사는 발달장애인 A씨(32)는 ‘발달장애인 참정권 보장을 위한 그림투표용지를 만들어 주십시오’라는 탄원서를 썼다. 비뚤배뚤한 글씨에 맞춤법이 군데군데 틀렸지만 “그림투표 용지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다른 발달장애인들은 직접 그림을 그렸다. 후보자 기호와 이름을 적는 칸, 투표 도장을 찍는 공간으로 구성돼 있는 선거관리위원회의 공식 투표용지와 달리 발달장애인들이 그린 ‘그림 투표용지’는 기호 앞에 각 정당별 색깔의 옷을 입은 후보자들 얼굴이 그려졌다. 정당과 후보자들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도록 해 투표에 손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의미를 담았다.
발달장애인 1054명이 참정권을 보장해달라는 의미를 담아 손글씨와 직접 그린 투표용지 등 탄원서를 29일 서울고법에 제출했다. 이들은 이날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글씨를 몰라서 투표하러 갔어도 잘 못했는데, 그건 투표를 했다고 볼 수 없다”며 “사진을 붙여서 쉽게 볼 수 있도록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들이 탄원서 수천장을 제출하면서 기자회견을 연 배경은 다음 달 6일 ‘발달장애인 그림 투표용지 보장’ 차별구제 청구 소송 2심 선고를 앞두고 있어서다. 지난해 8월 1심 법원은 이들의 청구소송을 ‘각하’로 판결했다. 각하란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하거나 청구 내용이 판단 대상이 아닌 경우 본안을 심리하지 않고 재판을 끝내는 결정이다. 1심 재판부는 “원고들의 청구는 공직선거법 개정에 의한 법률적 근거를 마련한 뒤에서야 비로소 가능한 조치를 입법 없이 구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승헌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활동가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지금의 대한민국은 몇십 년 전 법의 문구만을 가지고 ‘안 된다’ ‘어렵다’ ‘기다려라’고만 하는데 벌써 그렇게 소송을 한 지 2년이 넘었다”며 “더는 기다릴 수 없어서 직접 나서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활동가는 그림 투표용지 관련 소송이 지난 10일 1심에서 원고 승소한 ‘발달장애인의 투표보조인 보장 차별구제 소송 판결’의 연장선에 있다고도 했다. 해당 판결에서 재판부는 “투표 보조는 원고들이 장애가 없는 사람들과 동등한 수준으로 선거권을 행사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라며 매뉴얼상 투표 보조 대상에 발달장애인도 포함하라고 명했다. 이 활동가는 “이 판결의 취지로 살펴보면 발달장애인의 그림투표 용지 또한 넓게 해석해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발달장애인들은 현행 공직선거법이 ‘투표보조인’을 둘 수 있는 장애 유형을 시각·신체의 장애로만 명시하고 발달장애는 포함하지 않은 것은 위헌이라며 지난해 11월 헌법소원도 냈다.
https://www.khan.co.kr/national/court-law/article/202410201557001
유선희 기자 y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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