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제 '아파트' 말고 우리 아파트들도 있어요~
아이즈 ize 정수진(칼럼니스트)
로제와 브루노 마스가 부른 '아파트(APT.)'가 전 세계를 홀리는 중이다. 로제의 '아파트'는 '아파트 게임'이란 한국 술 게임을 뜻하지만, 'Turn this 아파트 into a club'이란 가사가 나오는 것처럼 주거 공간으로의 아파트를 뜻하기도 한다. 흥미롭게도 한국 대중문화에선 최근 들어 아파트가 날로 주요한 의미로 쓰이는 중이다. 당장 개봉을 앞둔 영화에서도 '럭키, 아파트'나 '4분 44초' 같은 작품에서 아파트가 주요 배경으로 담긴다.
한국에서 아파트란 다층적 의미를 지닌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아파트를 검색하면 '공동 주택 양식의 하나. 오 층 이상의 건물을 층마다 여러 집으로 일정하게 구획하여 각각의 독립된 가구가 생활할 수 있도록 만든 주거 형태이다'라고 되어 있다. 아파트는 집단이 거주하지만 각각의 독립된 형태의 주거 양식으로 폐쇄성과 익명성을 어느 정도 보장하는 공간의 특성이 있다. 일련의 공포영화에서 아파트를 주요하게 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폐쇄성과 익명성이 부서질 때의 공포감이 상당하거든.
동시에 한국에서 아파트는 일종의 자본 계급을 상징한다. "어느 아파트 살아?'란 질문에 "아리팍 살아" "원베일리 살아"라는 대답이 돌아올 때, 사람들이 얻어내는 것은 단순히 주소가 아니라 그의 위치한 계급인 셈이다. 자본주의 한국사회에서 아파트는 주거 공간으로의 기능만큼 부동산 자산으로 톡톡하게 기능하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대중문화에서 아파트는 공간 특성 혹은 의미의 특성에 집중하거나 혹은 두 특성을 결합시키기도 한다.
10월 30일 개봉하는 '럭키, 아파트'는 아파트의 공간과 의미의 특성 모두에 집중한 케이스. 커플 선우(손수현)와 희서(박가영)가 '영끌'로 마련한 아파트에 불쾌한 악취가 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선우의 예기치 못한 실직으로 희서 혼자 대출이자를 떠안게 되면서 둘 사이가 삐걱거리기 시작하는 가운데, 아파트를 감도는 악취의 원인을 밝히려는 선우가 아파트 주민들과 충돌을 빚으며 갈등의 양상은 더욱 커진다. 악취의 원인은 일명 '화분 할머니'로 불리던 아래층 1310호로 밝혀지지만, 그 이후로도 악취를 대하는 선우와 일부 아파트 주민들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선우의 행동은 주거 안정을 위한 발버둥이자 영혼까지 끌어 모아 아파트를 구입한 희서와의 관계를 안정시키려는 발버둥이기도 하다. 그러나 선우의 발버둥은 아파트 주민들에게 아파트 값을 떨어뜨릴 수 있는 위험요소로 여겨진다.
여기에 선우와 희서가 성소수자인 레즈비언 커플이란 점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애초에 희서가 무리를 해서 아파트를 구입한 건 아파트라는 익명성 안에 그들의 관계를 보장받고 싶었기 때문. 그러나 아파트의 익명성은 작은 꼬투리 하나로도 부서지기 쉽다. 입주 전부터 '인테리어를 무슨 신혼부부처럼 대대적으로 했'던 선우와 희서의 집을 기억하는 아파트 동대표 명희(이주영)가 살짝 비꼬는 모습을 보라. 아파트 가격이 떨어질까 전전긍긍하는 명희의 상황도 스스로에겐 공포스럽겠지만 선우와 희서의 관계를 빌미 삼아 아파트를 지키려는 명희의 모습도 보는 이에겐 공포스럽다. 주거 안정으로 관계 안정을 희망한 선우와 희서는 물론, 아파트의 부동산 안정성을 희망하는 명희, 누구에게도 그들의 아파트는 더 이상 '럭키'하지 않아 보인다.
그런가 하면 11월 1일 개봉하는 러닝타임 44분짜리 스낵무비 '4분 44초'는 아파트의 폐쇄성과 익명성에 주목한 공포영화의 궤를 이어가는 모습. 북촌아파트 단지 내에서 입주민이 원인 모를 이유로 잇따라 사라지는 미스터리를 공포영화에서 자주 쓰이는 숫자 4를 앞세워 8개의 에피소드로 풀어냈다. 기존에도 '소름' '아파트' '이웃사람' '숨바꼭질' '도어락' '목격자' 등 아파트의 폐쇄성과 익명성을 공포로 풀어낸 영화들이 여럿 있었지만, '4분 44초'의 경우 층간 소음과 '캣맘' 등 아파트에서 심심찮게 갈등 원인으로 꼽히는 요소를 소재로 적극 담아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공포영화에서 아파트가 어떻게 활용되고 의미화되는가에 대해 다룬 책 '한국 호러영화 속의 아파트 기행'이 나온 것만 봐도, 이 분야에서 아파트에 대한 접근이 계속될 것임을 알 수 있다.
11월 20일 개봉하는 독립영화 '한 채'는 안정적인 삶을 위해 위장결혼으로 신혼부부 특별공급 아파트를 분양받고자 하는 두 가족을 내세운다. 장르는 드라마지만, 아파트를 위해 가족까지 위장으로 만들어내는 세상의 공포를 읽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파트 영화 계보에 한 획을 그었다 할 수 있는 작품으로 작년 개봉한 '드림팰리스'와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빼놓을 수 없다. '드림팰리스'는 산업재해와 아파트 미분양을 둘러싼 '을들의 처절한 싸움'에 주목하며 한국사회에서 아파트가 어떤 사회문제로 불거질 수 있는지를 소름 끼치게 보여준 바 있다. '아파트 때문에 저렇게까지 한다고?'란 의문은 이 영화가 2014년 있었던 인천의 한 미분양 아파트에서 일어난 분신 사건을 기반으로 시나리오가 쓰였다는 사실에 말문이 막히게 된다.
작품성과 흥행성 모두를 인정받은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또 어떻고. 대지진으로 하루아침에 폐허가 된 서울에서 살아남은 황궁아파트 주민들이 어떻게 유토피아로 남고자 분투하며 갈등을 만드는지를 보여줬다. 영화는 아파트를 욕망의 대상으로 삼는 한국사회의 모습을 날것 그대로 드러내는데, 심지어 아파트 주민 대표로 선출된 영탁(이병헌)이 윤수일의 '아파트'를 호쾌하게 불러 젖히며 그 번뜩이는 욕망을 분출한다.
로제의 '아파트'가 인기를 끌면서 세계인이 '아파트먼트'의 한국식 발음인 '아파트'를 '떼창' 하는 지금, 아파트에 집중하다 못해 집착하는 한국의 분위기도 K-문화의 한 특성으로 퍼질지 모르겠다.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96회 미국 아카데미상 국제장편영화 부문에 후보로 이름을 올리는 것엔 실패했지만, 앞으로도 계속해서 아파트를 다룬 다양한 장르의 영화와 드라마가 만들어질 예정이거든. 경수진과 고규필이 주연을 맡아 아파트 층간소음의 원인을 추적하는 코미디 미스터리 추리극 '백수아파트'가 작년 크랭크인했고, 한강 조망권 아파트를 지키려다 한강에 시체를 유기한 여자들의 이야기인 원작 웹툰 '위대한 방옥숙'도 드라마로 만들어진다. 앞으로 나올 어떤 작품이 로제의 '아파트'를 넘어서는 아파트로 우뚝 서게 될지 궁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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