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제사 지내는 사람’ 동의없이 함부로 파묘해 화장하면 ‘유골손괴죄’ 된다”

유선희 기자 2024. 10. 2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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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대법원 전경. 한수빈 기자

자신의 조상 묘라도 실제 ‘제사를 지내는 사람’의 동의 없이 분묘를 파묘해 유골을 화장하면 ‘유골손괴죄’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엄상필 대법관)는 형법상 분묘발굴과 유골손괴 혐의로 기소된 A씨와 B씨에게 유골손괴 혐의가 없다고 판단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전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9일 밝혔다.

A씨는 2020년 4월 자신의 이름으로 등록돼 있는 충남 천안시 서북구의 임야를 팔았다. 그런데 이 땅에는 남편의 증조부모·조부모의 합장분묘와 A씨 남편의 형 분묘가 있었다. A씨는 땅을 팔기 위해 아들 B씨와 함께 파묘를 하고 유골을 화장했다. 하지만 이를 안 A씨 남편의 형 가족들은 제사를 지내는 건 자신들인데 왜 동의 없이 분묘를 발굴해 화장했냐고 따졌다. 결국 A씨는 분묘발굴·유골손괴 혐의로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A·B씨의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재판부는 두 사람에게 각각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A씨는 “분묘들은 남편이 살아생전 수년간 관리했으므로 조카 등에게 제사주재권이 인정된다고 볼 수 없다”며 항소했다. A·B씨는 “예를 갖춰 화장했으므로 유골손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같은 주장을 받아들였다. A·B씨의 분묘발굴 혐의는 원심 판단을 유지하면서도 유골손괴에 대한 A·B씨의 항소는 이유가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사람의 유골은 기본적으로 매장, 관리 및 제사와 공양의 대상이 되는 유체물”이라며 “현행법상 적법한 화장 절차에 따라 종교·관습적 예를 갖추어 납골당에 유골들을 안치했다면, 유골을 본래의 사용 목적에 제공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들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A·B씨는 각각 징역 4개월에 집행유에 1년으로 감형됐다.

그러나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A·B씨의 행위는 ‘유골손괴’에 해당한다고 봤다. 대법원은 “죽은 사람의 유체·유골은 제사주재자에게 승계되는 것이므로, 그에 관한 관리 및 처분은 종국적으로 제사주재자의 의사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는 200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인용했다. 그러면서 “제사주재자나 그로부터 정당하게 승낙을 얻은 자의 동의 없이 함부로 유골의 물리적 형상을 변경하는 등으로 훼손하는 것은 손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적법한 화장 절차에 따라 유골이 안치됐다는 이유만으로 유골에 대한 손괴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고 본 원심 판단에는 유골손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유선희 기자 y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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