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77% 제거…빽빽한 정원을 허허벌판 만든 충북도청

오윤주 기자 2024. 10. 29.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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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지사 “정원을 도민 품으로”
나무 406그루 뽑아내고 잔디 깔아
다른곳 옮긴 나무 태반이 고사 위기
파묘 현장 처럼 파헤쳐지고 있는 충북도청 정원. 충북도는 이곳 나무들을 외부로 이식한 뒤 주차장을 조성했다. 오윤주 기자

87년 된 충북도청을 지키던 나무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충북도는 도청 정원 수목을 ‘파묘’하듯 파헤친 뒤 ‘이장’하듯 곳곳으로 옮기고 있다.

28일 충북도가 밝힌 자료를 보면, 지난해 3월 충북도 정원·울타리 등에 있던 나무 526그루 가운데 406그루(77.1%)가 도청에서 자취를 감췄다. 대체로 1937년 충북도청을 신축할 당시 심어진 나무들로, 그동안 충북도청과 고락을 함께 해왔다.

청내에서 터를 옮긴 25그루를 포함한 431그루 가운데 298그루(69.1%)는 다른 곳으로 이식했고, 133그루(30.9%)는 아예 제거했다. 남아 있는 나무(교목 기준)는 95그루뿐이다. 도청 대지가 3만563.1㎡(9261평)이어서, 97평 마다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셈이다.

정원 ‘파묘’와 수목 ‘이장’은 김영환 충북지사의 지시로 출발했다. 정원을 도민에게 돌려주겠다는 취지로 동·서 울타리 향나무를 제거한 뒤, 남쪽 정원은 나무를 뽑고, 연못을 메우고 잔디광장을 조성했다. 본관과 신관 뒤 정원은 나무를 뽑아내고 주차장을, 서쪽엔 쌈지광장을 만들었다. 신축 중인 의회 건물과 마주한 동쪽은 가로수·수목 등 조성 계획이 없다.

충북도청 정원·울타리 등에서 옮겨간 나무들은 잘 자라고 있을까? ‘한겨레’는 최근 이재헌 국제수목관리학회 공인 트리워커(아보리스트, 사회적기업 시소), 류진호 충북생명의숲 사무처장 등과 지난해 3월부터 최근까지 9차례 도청에서 이식된 나무 273그루(청내 이동 25그루 제외)가 자라는 현장을 살펴봤다.

관수용 물포대와 영양제 등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도청 정원수. 오윤주 기자
충북도청 정문 왼쪽 정원. 충북도는 빽빽한 나무를 이식·제거한 뒤 잔디광장을 조성했다. 오윤주 기자
충북도에서 옮겨 심은 소나무. 청명원 울타리인데 5개월만에 솔잎이 붉은 색을 띠는 등 수세가 악화되고 있다. 오윤주 기자

지난 5~7월 충북안전체험관으로 향나무 68그루, 소나무 26그루 등 94그루가 세차례 이식됐는데, 단풍이 든 것처럼 검붉게 변해 고사 직전의 나무가 수두룩했다. 지난 21일 오후 현장을 찾은 이재헌 아보리스트는 “향나무는 3분의 1 정도, 소나무 4~5그루는 이미 세균에 감염돼 곰팡이가 피는 등 고사 상태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만난 어린이는 “여름에 나무 옮겨 올 땐 초록색 건강한 모습이었는데 요샌 나무가 너무 불쌍하게 변하고 있다. 나무를 살려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충북도는 청주시 정상동 밀레니엄타운 가식장에 칠엽수 등 9그루, 향나무 72그루 등 모두 81그루를 이식했다고 밝혔는데, 실제 향나무는 34그루만 있고, 칠엽수 등 아름드리는 ‘닭발 전지’(닭발 모양으로 가지치기)로 을씨년스런 모습이다. 충북도청 주변 청명원으로 소나무 등 10그루를 이식했는데, 소나무 3그루는 솔잎이 붉게 변했다.

충북도로관리사업소(24그루)·충북산림환경연구소(61그루)·괴산아쿠아리움(2그루)·청남대(1그루) 등은 비교적 양호했다. 류진호 충북생명의숲 사무처장은 “이식한 나무뿐 아니라 도청에 남아 있는 나무들 또한 이식 과정에서 뿌리를 건드렸는지 상태가 별로 안 좋아 보인다”며 “도심 온도를 낮추려고 너도나도 나무를 심는데 백년 가까운 아름다운 정원을 망가뜨리는 충북도의 역주행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류진호 충북생명의숲 사무처장이 지난 24일 충북도청에서 청명원으로 옮겨간 소나무 울타리 생육 상태를 살피고 있다. 오윤주 기자

충북도가 정원을 파헤치고, 조경수였던 수목을 제거·이식하는 것은 건축법 등을 위반한 불법 소지가 있다. 건축법·청주시 조례 등을 보면, 연면적 2000㎡ 이상 건축물은 대지 면적의 15% 이상을 조경 면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충북도청 대지 면적(3만563.1㎡)의 15%인 4584.46㎡ 이상이 법정 조경면적인데, 현재 이에 못 미친다.

또 조경면적엔 교목(줄기가 곧고 높이 자란 나무)·관목(작고 밑동에 많은 가지를 친 나무) 등을 일정 비율 이상 심어야 하는데, 충북 도청은 교목 기준으론 917그루(조경면적의 0.2%) 이상이다. 교목은 높이·지름 등에 따라 2~8그루까지 가중치를 두지만, 지금 현재 도청의 나무 95그루로는 법정 기준을 채우지 못한다. 조경면적 축소·복구, 수목 식재·이동·복구 등을 하려면 관할인 청주시에 인허가를 받은 뒤 사업·공사를 진행해야 하지만 이 또한 제대로 하지 않았다.

한창훈 충북도 청사시설팀 주무관은 “본관·신관 사이, 동쪽 울타리 등 대략 2000㎡ 정도 조경면적이 줄지만, 상당공원 경계·본관 뒤 등 1000㎡ 정도 확보할 수 있어 2026년 상반기 후생관 준공 시점엔 법정 조경면적을 맞출 수 있다”며 “수목 또한 지금은 법정 기준에 많이 모자라지만 나중에 이식, 추가 식재 등을 통해 보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충북도는 이렇게 나무를 들어내고 도청 리모델링(새단장)도 추진한다. 후생관 건립에 따른 주차난 해소, 청사 안 교통체계 개선, 주민·공무원 복지 향상 등이 목적이다. 후생관 건립 447억원(인허가중), 교통체계 개선(29억1800만원), 승강기 설치(9억6천만원) 등 예산도 만만치 않다. 정원 조성·정비에도 적지 않은 예산을 투입했다. 모두 9차례 수목 정비에 1억2800만원을 썼고, 서관 벽면(4억6500만원)·하늘(옥상·10억1800만원)·남쪽 잔디광장(1억4800만원)·쌈지광장(5800만원) 등을 새로 만들었다. 지금까지 이들 사업에 투입·계획된 예산만 513억3천만원이다. 이광희 더불어민주당(청주 서원구) 국회의원은 지난 18일 충북도 국정감사에서 “공공의료, 민생경제가 붕괴하는 어려운 시기에 김 지사가 도청 리모델링 등 김 지사표 치적쌓기에만 열 올리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이재헌 아보리스트 지난 21일 충북도청이 충북도안전체험관으로 옮겨 심은 소나무를 살피고 있다. 이 아보리스트는 소나무 일부가 고사하는 등 관리상태가 심각한 것으로 판단했다. 오윤주 기자
충북도청 정문 오른쪽 정원. 아름드리 등이 훼손되지 않아 아름다운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오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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