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명의 감독은 헤밍웨이의 '더 킬러스'로 무엇을 상상했나
등에 칼이 꽂힌 채 눈을 뜬 남자…김종관 감독 '변신'
어마어마한 금액의 살인을 의뢰하는 여자…노덕 감독 '업자들'
모두가 기다리는 자…장항준 감독 '모두가 그를 기다린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자…이명세 감독 '무성영화'
"헨리네 식당의 문이 열리고 사내 둘이 들어왔다. 그들은 카운터 앞에 앉았다." _어니스트 헤밍웨이 단편 소설 '살인자들'의 첫 문장
김종관, 노덕, 장항준, 이명세 감독은 왜 헤밍웨이의 단편 소설 '살인자들'을 영감의 원천으로 삼았을까. 그리고 그들은 '살인자들'에서 어떤 영감을 얻어 '더 킬러스'라는 시네마 앤솔로지(선집)로 만들고자 했을까.
제23회 뉴욕아시아영화제, 제28회 판타지아영화제, 제57회 시체스영화제,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까지 국내외 유수의 영화제로부터 러브콜을 받은 '더 킬러스'는 헤밍웨이 단편 소설 '더 킬러스'(이하 '살인자들'로 표기)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네 명의 감독이 각기 다른 시선으로 해석하고 탄생시킨 살인극을 담은 시네마 앤솔로지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형사 Duelist'를 연출한 이명세 총괄 크리에이터를 필두로 '최악의 하루' '조제' 김종관 감독, '연애의 온도' '특종: 량첸살인기' 노덕 감독, '리바운드' '오픈 더 도어' 장항준 감독 등 자신만의 스타일과 개성이 뚜렷한 네 감독이 뜻을 모았다.
이명세 감독이 모은 감독들, 헤밍웨이를 상상하다
총괄 크리에이터인 이명세 감독은 '더 킬러스'를 기획하게 된 계기에 관해 "모든 창작자의 꿈일 것이다. 지속 가능한 영화 작업을 어떻게 하면 할 수 있을까"라고 말문을 연 뒤 "자본으로부터 독립되고, 창자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그러면서도 창작과 자본이 윈윈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오랜 꿈이 있었다"라고 이야기했다.
이어 "가장 장르적이면서도, 서로 다른 감독이 각자 다른 색깔과 다른 이야기로 만들 수 있는, 동시에 1편의 영화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이 헤밍웨이의 '살인자들' 아닐까 싶었다"라며 "또 '살인자들'이 가진 시대의 분위기도 있어서 네 분의 감독님을 모셨다"라고 설명했다.
김종관, 노덕, 장항준 감독은 존경하는 선배인 이명세 감독과 함께 작업할 수 있다는 것은 물론 다른 감독과 서로 다른 색을 선보일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됐다.
왜 많은 작가와 작품 중에서도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살인자들'을 선택했을까. 네 명의 감독은 각자 헤밍웨이의 '살인자들'로부터 어떤 영감을 받았을까. 그리고 이를 어떻게 확장해 각자 '변신'(김종관) '업자들'(노덕) '모두가 그를 기다린다'(장항준) '무성영화'(이명세)로 그려냈을까.
"창작과 자본이 윈윈할 수 있는 장르적인 힘을 가진 작품이다. 창작에서 많은 열린 공간이 있다. 그리고 헤밍웨이가 소설을 썼던 1930년도의 분위기, 영화를 기획할 때의 분위기 그리고 4편의 다른 영화겠지만 한 편과 같은 영화의 느낌을 담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살인자들'을 선택하게 됐다." _이명세 감독
"이명세 감독님이 '살인자들'을 각색해 보면 어떻겠냐는 의견을 주셨다. 모든 감독이 같은 내용을 하면 어려울 수 있으니 모티프만 가져오기로 했다. 그렇다면 어떤 모티프를 가져올 것인가. 살인자가 나오니까 살인자와 그 타깃이 있을 테다. 또 누군가가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과 한정된 공간을 이용하고, 각자가 생각하는 헤밍웨이 단편의 장점을 생각하며 작업했다. 그래서 훨씬 더 자유로우면서도 결과적으로는 이 모든 내용이 모이는 프로젝트가 된 것 같다." _김종관 감독
"이명세 감독님께서 감독마다 '살인자들'을 어떻게 해석할지 자율성을 열어두셨다. '업자들'의 경우 '살인자들'은 일이 벌어질 것처럼 무드를 잡고 멋있게 상항이 펼쳐지지만 결국 아무도 죽이지 않고 심심하게 끝나는 소설이다. 그게 오히려 재밌고 웃기다고 생각해서 그런 무드를 가져와서 어떻게 단편에 접목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_노덕 감독
"헤밍웨이의 소설을 읽으면서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흔히 말하는 상업적인 결말이 나지 않은 이야기 그리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 그런데 그가 누구인지도 정확히 모른다는 부분들이 나한테는 이야기해 보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그걸 1970년대 한국 사회로 옮기면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으로 연결됐다. 그래서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메타포도 신경 쓰면서 작품을 만들게 됐다." _장항준 감독
4인 4색 '더 킬러스'
그렇게 4명의 감독이 만든 각기 다른 이야기와 형식, 스타일의 작품 4편이 완성됐다.
그렇게 등에 칼이 꽂힌 채 의문의 바에서 눈을 뜬 한 남자가 미스터리한 바텐더로 인해 자신에게 일어난 충격적인 변화를 맞닥뜨리는 이야기 '변신'.
하청의 하청의 하청을 거쳐 3억짜리 의뢰를 단돈 3백에 받게 된 어리바리 살인 청부업자 삼인방이 엉뚱한 타깃을 납치하며 벌어지는 이야기 '업자들'.
1979년 밤, 매혹적인 주인 유화가 운영하는 한적한 선술집, 그리고 왼쪽 어깨에 수선화 문신이 있다는 작은 단서만으로 살인마를 기다리는 사내들의 이야기를 그린 서스펜스 시대극 '모두가 그를 기다린다'.
범법자, 도시 난민, 추방자들이 모여 사는 지하 세계 디아스포라 시티에 매일 같은 시각, 같은 테이블에 앉아 같은 메뉴를 시키는 신원 미상의 타깃을 찾아온 두 킬러가 등장하며 펼쳐지는 누아르 '무성영화'.
이처럼 4인 4색의 '더 킬러스'를 관통하는 배우이자 작품의 중심축이 되어 주는 배우가 바로 심은경이다. 국내외에서 활동하며 일찌감치 '믿고 보는 배우'로 자리매김한 심은경은 네 감독의 작품에서도 각기 다른 색깔을 드러내며 '역시 심은경'이라는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이명세 감독은 2022년 '미싱 픽처스 프로젝트' 중 한 편인 '아버지가 사라졌다' 속 어머니 역할로 캐스팅하기 위해 심은경을 만났지만 함께하진 못하게 됐다. 그는 "변신 폭이 넓은 배우라는 느낌을 늘 갖고 있었다. 당시 프로젝트에서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을 해소하고 싶어서 '더 킬러스'를 건넸는데 기꺼이 하겠다고 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각기 다른 이야기지만 한 편의 영화처럼 보이면 좋겠고, 또 관객들이 스스로 기승전결을 만들어갈 수 있는 열린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라며 "그런 점에서 한 배우가 관통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그렇다면 심은경이 다른 감독의 영화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야기하게 되면서 프로젝트가 완성됐다"라고 설명했다.
김종관 감독의 경우 '낮과 밤은 서로에게'로 심은경과 작업을 하려던 차에 '더 킬러스'로도 만나게 됐다. 그는 "물론 배우마다 결이 다르지만 심은경 배우는 결이 다른 느낌이 있다. 그게 신기하다. 그리고 영화적인 부분에서도 배우라는 툴을 이용해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 내가 사용할 수 있는 게 넓어졌다는 기쁨이 들었다"라며 "나중에 잘 꼬셔서 계속 작업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4인 4색 프로젝트는 감독들에게도 특별한 경험을 안겨줬다. 김종관 감독은 "평소와 다른 게 있다면 '변신'은 테이블 색깔이 많이 나오고, 피가 많이 나온다는 것"이라며 "내 취향과 관심 안에서 했다. 장르 영화로 묶이다 보니 전에 하던 작업과는 달랐고, 그래서 더 자유로운 거 같았다. 새로운 걸 해본다는 즐거움 있었다"라고 이야기했다.
이어 "그러면서 생각한 건 '환상특급' 등 어릴 때 본 장르물이 있다. 그런 재미와 상상력을 내 스타일 안에서 녹이면서 기억 속에 있던 걸 끄집어내 작업하는 시간이 됐다"라고 덧붙였다.
노덕 감독은 "'업자들'은 장르적인 도전이라는 의미보다 짧은 시간 안에 여러 사람을 다룬다는 점에서 처음으로 앙상블이란 숙제로 안겨준 작품"이라며 "인물들 하나하나 균형 있게 다룬다는 것, 앙상블을 다루는 것이 어려운 거라는 걸 알게 됐다. 그 지점이 '업자들'을 하면서 얻게 된 가장 큰 경험 아닌가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장항준 감독은 "요즘 한국 영화, 장르가 고정돼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곤 한다. 그런 면에서 근래 하지 않았던 새로운 시도이자 용기 있는 작품에 참여하게 되어 기쁘고 자부심도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관객분들의 입장에서 전체 영화를 봤을 때 다채로운 색의 영화라 눈과 귀와 머리가 즐거울 것 같다"라며 "그래서 의미 있는 작품이고, 그렇기에 손익분기점을 넘어서 앞으로 이런 의미 있는 작품이 많이 나오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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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최영주 기자 zoo719@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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