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머리카락만 날려도 쓰려"…대상포진 환자 83% "백신접종 원해"
"향후 대규모 연구 필요…백신 접종 정부 지원 이뤄져야"
(서울=뉴스1) 강승지 기자 = 바람에 머리카락만 날려도 쓰리고, 뭔가 닿으면 불에 덴 거 같이 아픔을 느낄 정도로 극심한 통증을 부르는 '대상포진' 환자의 83%가 재발을 막기 위해 백신 접종을 원한다는 연구결과가 처음으로 공개됐다.
전문가는 대상포진의 가장 효율적인 예방법이 '백신 접종'이라며 복지 정책으로서 무료화나 보조금 같은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29일 의료계에 따르면 송준영 고려대학교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 연구팀은 국내 50세 이상 대상포진 및 대상포진 후 신경통 환자 총 12명(각각 6명)을 상대로 45분씩 인터뷰를 진행한 연구의 요약본을 최근 대한백신학회 추계 학술대회에서 공개했다.
교수팀은 대상포진과 대상포진 후 신경통이 환자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이번 연구를 진행했다. 대상포진 환자 경험과 관련된 요인을 이해하기 위한 심층 인터뷰 등 질적 연구가 거의 없는 상황에 처음으로 나온 연구결과다.
대상포진은 어릴 적 수두에 걸린 경험이 있는 사람의 신경에 잠복해 있던 수두 대상포진 바이러스가 재활성화돼 발생한다. 통증과 더불어 줄무늬 모양의 발진, 수포들이 생긴다. 나이가 들어 면역력이 떨어지면서 발병률이 오른다.
특히 대상포진은 언제든 재발 가능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대상포진 환자 수는 약 75만 명으로 60대 24.6%, 50대 22%, 70대 12.9%로 50대 이상이 전체의 약 66%를 차지했다.
연구 결과, 모든 환자가 통증을 경험했고 발진은 8명에게 나타났다. 통증은 대상포진 진단을 위해 병의원을 가게 만든 가장 큰 이유였다. 10명은 가장 심한 통증 수준을 10점 만점에 8점 이상으로 평가했다. 11명은 신체적 영향 중 가장 불편한 증상으로 통증을 꼽았다.
환자들은 대상포진에 걸린 지 얼마 안 됐을 급성기 동안 하루에 1시간마다 약 3번의 통증을 경험했으며, 급성기 이후에도 통증을 느꼈다. 3명의 환자는 후유증으로 인해 시각 문제(2명), 코 괴사(1명)가 발생했다.
특히 모든 환자는 대상포진으로 인해 사회적 활동, 수면, 취미 생활 등 일상생활을 하기 힘들어했다. 잠들기 어려운 상황에 피로와 불안은 쌓여만 갔다. 대상포진 후 신경통 환자는 스트레스, 우울, 좌절감을 토로했다.
대상포진 후 신경통으로 고통을 받던 한 50대 여성 환자는 송준영 교수팀에 "여전히 증상들이 남아있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며 "증상 초기에 호전될 거라 기대했지만, 지금은 절망적이다. 계속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 건지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송준영 교수는 "진료실에 오는 환자 중 수면제 등 마약성 진통제를 복용하는 이들도 많고 수면장애를 호소하는 사례도 많다. 앞으로 건강한 노년이 중요한데, 평소와 같이 일상을 살기 힘들다면 '오래 산다'고 기뻐하기 힘들 걸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송 교수는 "대상포진 백신 접종을 통한 예방이 최선이다. 치료해도 신경통이 진행되는 경우가 상당하기 때문"이라며 "환자들은 얼마나 고통을 겪었는지 알기 때문에 접종을 원한다. 이번 연구는 심층 소규모 연구지만, 향후 대규모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선진국은 일찍이 대상포진 백신 접종을 국가사업으로 진행했다. 대상포진에 걸려 부담하는 의료비보다 접종으로 예방하는 게 훨씬 경제적이라는 이유에서다. 우리 정부도 국가예방접종(NIP) 도입을 약속했지만, 지난달 발표된 내년도 예산안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전 세계 각국은 생백신에 이어 차세대 백신으로 등장한 유전자재조합 백신의 접종을 권고하고 있다. 지난 2022년 국내 도입된 유전자재조합 대상포진 백신은 만 50세 이상에서 97%, 70대 이상에서도 91%의 예방 효과를 확인했다.
유전자 재조합 대상포진 백신은 살아있는 바이러스를 이용한 생백신과 달리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VZV)의 단백질 성분인 당단백질E와 항원에 대한 면역반응을 강화하는 면역증강제가 결합한 방식의 백신으로 면역저하자에게도 접종가능한 유일한 백신이다.
송 교수는 "미국 예방접종자문위원회는 유전자재조합 대상포진 백신의 가격이 비싸더라도 예방 효과가 10년 이상 지속되기 때문에 비용 효과성 높은 백신으로 보고, 우선 접종을 권고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어 "가격 장벽에도 불구하고 대상포진에 걸렸거나, 환자를 봤었다면 백신을 접종한다. 대상포진 백신은 매해 접종하는 게 아니라 한 번만 맞으니, 비싸다고 볼 수 없다"며 "고령층을 위해서는 백신에 대한 정부 지원이나 보조금 제공이 필요하다"고 첨언했다.
ks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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