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해서 리모컨 던졌는데…" 15년 전 KIA 우승 때 분노한 최단신, KS MVP 한풀었다
[OSEN=광주, 이상학 기자]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의 2009년 한국시리즈 우승은 7차전 9회말 나지완의 극적인 끝내기 홈런으로 완성됐다. 잠실구장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은 그날, 2년 차 내야수 김선빈(35)은 야구장에 없었다. 그해 백업으로 쏠쏠하게 활약했지만 한국시리즈 26인 엔트리에 들지 못했다. 뜬공 처리에 약점이 있었고, 경험 많은 선배들에게 밀려 한국시리즈를 멀리서 봤다.
어린 마음에 속이 많이 상했다. TV 리모컨을 던지며 팀의 우승에 분노했던 김선빈이 15년의 세월이 흘러 한국시리즈 MVP로 우뚝 섰다. 지난 28일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2024 KBO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KIA는 삼성을 7-5로 꺾고 시리즈 전적 4승1패로 우승했다. 2017년 이후 7년 만의 통합 우승으로 해태 시절 포함 구단 역대 12번째 한국시리즈 우승. KBO리그 역대 최다 우승 기록을 하나 더 늘렸다.
한국시리즈 MVP는 역대급 초박빙 끝에 김선빈이 선정됐다. 기자단 유효 투표 99표 중 46표를 얻어 득표율 46.5%로 동갑내기 포수 김태군(45표)을 단 한 표 차이로 제쳤다. 김선빈은 부상으로 기아자동차 EV6와 MVP 트로피를 받았다.
김선빈은 이번 한국시리즈 5경기에서 타율 5할8푼8리(17타수 10안타) 2타점 3득점 3볼넷 1사구 출루율 .636을 기록했다. 2루타 3개, 3루타 1개로 장타율 .636. OPS는 1.518에 달했다. 4차전 만루 홈런에 이어 5차전 결승타를 친 포수 김태군의 임팩트도 셌지만 김선빈의 엄청난 타격 능력이 딱 한 표 차로 우세했다.
1차전부터 김선빈은 2회 삼성 선발 원태인에게 펜스를 직격하는 3루타를 치며 KS의 문을 열었다. 홈런이 될 줄 알고 1루로 가며 세리머니를 하는 머쓱한 상황이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우천 서스펜디드 게임이 된 1차전에서 7회 선두타자 볼넷을 얻어 4득점 빅이닝으로 역전 발판을 마련한 김선빈은 2차전도 1회 1타점 2루타, 5회 희생플라이로 연승을 이끌었다. 4차전도 2루타 2개 포함 3안타 맹타를 휘둘렀고, 마지막 5차전도 3출루 경기로 역전승을 이끌었다.
“태군이가 받았아도 인정했을 것 같다. 시리즈 동안 워낙 잘했다”며 아깝게 MVP를 놓친 친구를 치켜세운 김선빈은 “시즌 전부터 우리 팀이 우승 후보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부담감은 없었다. 선수들 모두 야구장에서 재미있게, 즐겁게 했기 때문에 우승한 것 같다”고 돌아봤다.
2008년 김선빈이 KIA에 입단한 뒤 3번째 팀 우승인데 가장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2017년 주전 유격수로 우승 순간을 함께했지만 2009년에는 엔트리 탈락으로 집에서 TV로 우승 장면을 봤다. “그때는 화나고 억울해서 리모컨을 집어던졌다”고 웃으며 떠올린 김선빈은 “2017년 우승 때는 나이가 좀 어렸고, 지금은 고참급이다. 올해 우승이 내겐 더 큰 감동이 있다. 울컥했다. 광주 챔피언스필드에서의 우승이라 의미가 엄청 크다”고 말했다.
화순고 시절 투타겸업으로 재능을 뽐낸 김선빈은 그러나 164cm 작은 키 때문에 과소평가됐다. 청소년 대표도 지냈지만 2008년 신인 지명에서 2차 6라운드 전체 43순위로 KIA에 뽑혔다. 당시 리그 최단신 선수로 데뷔한 김선빈은 “프로 입단할 때 안 좋은 소리를 들었다. ‘키가 작아서 안 된다’, ‘한계가 있다’는 말을 너무 많이 들었는데 이번 MVP로 그런 편견을 깼다”고 스스로에게 큰 의미를 부여했다.
키는 작지만 단단하고 야무진 플레이로 부정적 평가를 극복한 김선빈은 리그 대표 교타자로 자리잡았다. 극강의 컨택과 밀어치기 능력으로 삼진을 잘 당하지 않고, 투수를 끈질기게 괴롭혔다. 프로 16시즌 통산 타율 3할5리(5391타수 1645안타)를 기록 중인 김선빈은 2017년 골든글러브 유격수가 됐고, 2020년부터 2루수로 포지션을 옮겨 30대 중반인 지금까지 롱런 중이다.
입단 후 키가 조금 자라 2011년부터 165cm로 프로필에 기재된 김선빈은 2017년 입단한 삼성 김성윤(163cm)에게 최단신 선수 자리를 넘겨줬다. 2020년 입단한 삼성 김지찬(163cm)까지, 최단신 후배들이 있지만 김선빈은 여전히 KBO리그를 대표하는 단신 선수 중 한 명이다. 왜소한 체구의 어린 학생 선수들에겐 꿈과 희망이 되고 있다.
그는 “지금 프로야구에도 키 작은 선수들이 많다. 그 선수들이 잘하고 있다. (키 작은 학생 선수들이) 나중에 프로 와서 더 좋은 플레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야구라는 스포츠가 신체 조건이 중요하긴 하지만 내가 이렇게 편견을 깬 것만으로도 큰 용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며 뿌듯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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