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환자 작당하면 속수무책”… 밥먹듯 문서조작한 일당, 보험금 수억 ‘꿀꺽’

지혜진 기자(ji.hyejin@mk.co.kr) 2024. 10. 29. 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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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손 사기 322명 무더기 적발
정형외과 40대 병원장
비급여 고가치료 유도한뒤
‘진료일 쪼개기’로 허위 청구
21개 보험사서 7억원 챙겨
“환자도 사기공범 될 수도”
연합뉴스
경찰이 허위 진료기록부를 만들어 수억원대의 실손보험금을 타낸 정형외과 관계자와 환자를 무더기로 적발했다. 의료진은 진료비 쪼개기, 허위 통원, 진단명 바꿔치기 등 다양한 사기 수법을 동원해 허위 진료기록을 작성해 실손보험금을 가로챘다. 환자들 역시 실제 진료기록과 다르게 발급된 치료 영수증을 보험사에 제출해 보험금을 편취했다. 실손보험사기의 경우 병원·의료진 뿐만 아니라 이에 동조한 환자들도 처벌받을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형사기동대(총경 김기헌)는 불법 행위로 실손보험금을 편취해온 의사, 환자 등 322명을 보험사기방지특별법위반 혐의로 검거했다고 28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해 2월~올해 국내 보험사 21곳에 허위 서류를 제출하고 약 7억원의 실손 보험금을 챙겨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한 정형외과 병원장인 40대 남성 A씨 등은 실손보험금 청구 과정에서 보험사 제출 서류가 간소화돼 있다는 허점을 알고 범행을 기획했다. 이들은 유명 포털사이트 블로그와 방송 출연을 이용해 ‘최고급 사양의 의료 장비와 프라이빗 시설을 갖췄다’, ‘유명 기업 회장 주치의를 역임했다’고 홍보해 환자를 집중적으로 유치하거나 일부 보험설계사를 통해 환자를 소개받았다.

이들은 내원한 환자들에게 고가의 고주파 치료기기 사용을 ‘슈퍼카’를 비유하고 유명 운동선수가 치료받는 방법이라고 소개하며 범행을 유도했다. 의료 상담을 빌미로 의료실손보험 가입 여부를 확인한 다음 환자 본인 부담을 최소화하고 보험금 청구 과정에 아무런 문제가 없도록 조치할 것이라고 설명하며 환자들과 ‘의료 쇼핑’을 공모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과 금감원에 따르면 고가 치료를 실손보험으로 충당할 수 있다며 권유하는 보험사기가 대거 적발됐다. 한 병원에서는 환자들에게 고가의 비급여치료를 권유했다. 관절 통증 완화를 돕는 고강도 레이저치료(1회당 50~60만원) 등이 대표적 고가 치료다. 그러면서 실손보험으로 치료비를 충당할 수 있도록 체외충격파 또는 도수치료로 진료비 영수증을 분할해 발급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1일 통원보험금 한도(약 20만원)를 넘지 않도록 여러 날에 걸쳐 진료비를 분할하면 환자는 진료비의 상당 부분을 실손보험으로 충당할 수 있게 된다.

또 의사가 다양한 수법을 통해 허위 진료기록을 작성해서 발급하는 경우도 많았다. 한 병원에서는 환자별로 실제 진료비가 정해지면 최대한 많은 금액을 실손보험으로 충당할 수 있도록 허위 진료기록을 작성했다. 예를 들어 치료비 본인부담률이 30%이고 1일 통원보험금 한도가 20만원인 실손보험에 가입한 환자의 경우 1회 60만원의 치료비를 정상 청구하면 보험금 20만원이 지급된다. 반면 3회로 분할해 각각 20만원씩 세 차례 청구하면 14만원씩 총42만원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진료일 쪼개기’ 수법도 동원됐다. 환자가 병원에 방문하지 않은 날에도 치료한 것처럼 허위 통원기록을 입력해 진료비를 분할했다. 이처럼 진료기록을 임의로 입력한 결과 진료시간 전에도 진료한 기록이 있거나, 환자가 내원하기 전 시간에 이미 진료를 한 기록이 남아있었다.

경찰은 병원 측에서 실손보험금 한도를 확인한 다음 환자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법이 있다는 제안에 응하면 보험사기 공범이 될 수 있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경찰 관계자는 “보험사기를 주도한 병원 및 의료진 뿐만 아니라 이들의 솔깃한 제안에 동조·가담한 환자들도 형사처벌을 받은 사례가 다수 있다”며 “보험계약자들은 보험사기에 연루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행 보험사기방지특별법에 따르면 보험사기 범죄의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을 수 있다.

경찰은 또 이같은 실손보험 사기 행위에 동참하는 것은 개인의 이익을 위한 행위를 넘어 보험료 인상으로 시스템의 불신 심화, 나아가 사회 전체의 경제적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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