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없이 보내는 두 번째 10월···“일상으로 돌아간다는 건 없을 것 같아”[이태원 참사 2주기]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에게 10월은 ‘바쁘고 아픈 달’이다. 유족들은 성큼 다가온 슬픔을 잊으려는 듯 각종 추모행사로 한 달을 채웠다. 참사 후 2년, 광장과 거리를 전전하는 유가족 삶은 달라진 게 없었다. 그리움과 분노가 진해진 만큼, 참사 이전 일상은 희미해졌다. 그 이전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 대신 새 일상 공간이 생겼다. 참사가 일어났던 해밀톤호텔 옆 골목과 시청 앞 분향소, 국회와 마포대교, 서울서부지법까지… 그 눈물과 절규가 맺힌 공간만이 하나둘 늘어날 뿐이었다.
이태원 참사로 스물다섯 딸 이상은씨를 떠나보낸 강선이씨(54)의 두 번째 10월도 숨 가쁘게 지나갔다. 경향신문은 한 달간 강씨를 동행취재하며 10월29일을 맞는 마음을 들여다봤다.
두 번의 선고일, 두 번의 눈물
참사 2주기를 앞두고 참사 책임자로 재판에 넘겨진 이들의 1심 선고가 서울서부지법에서 3차례 이뤄졌다. 지난달 30일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과 박희영 용산구청장의 선고가 나왔다. 선고는 오후였지만 강씨는 이른 아침 집을 나섰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유가협) 활동 때 입는 보라색 조끼도 챙겼다. 서울시청부터 법원까지, 책임자 엄벌을 촉구하는 행진을 하기 위해서였다. 강씨는 행진이 오랜만이라고 했다. 그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서 행진해야 할 것 같다. 아직 박 구청장은 직도 유지하고 있으니…”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따라서 사고 발생 이후에도 형사적 책임을 물어야 할 업무상 과실이 있다고 보기 어렵고 (중략) 모두 무죄를 선고합니다.”
오후 3시50분 법정에서 판사의 ‘무죄’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재판부는 이 전 서장에게 금고 3년형을, 박 구청장에게는 무죄를 선고했다. 유족에겐 실망스러운 결과였다. 강씨는 “이러해서 무죄고, 또 저러해서 무죄라고 판사가 말할 때마다 가슴이 막혀오는 것 같고, 켜켜이 무언가가 누르는 듯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유족들은 법원을 빠져나가는 박 구청장 차 앞을 막고 차도에 누웠다. 고함과 울음이 법원 앞을 메웠다. 까무러치듯 바닥에 주저앉은 유족과 이를 제지하는 경찰이 엉키며 아수라장이 됐다. 이를 지켜보던 강씨도 고개를 떨구고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선고 후 강씨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대신 ‘별들의 집’으로 향했다. “억장이 무너지고, 참기 힘든 일이어서인지 다들 집으로 돌아가기 힘들어했어요. 모여서 이런저런 위로를 나누다가 집에 갔죠. 다음 선고가 남았으니 낙담하지 말자고.”
낙담치 말자던 위로는 현실이 되지 못했다. 지난 17일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에 대한 무죄 선고는 다시 강씨의 마음을 무너뜨렸다. 강씨는 법원을 나오자마자 차도에 주저앉았다. 그는 “당연히 유죄일 줄 알았고, 다만 (형량을) 얼마나 받을 것인지가 문제라고 생각했다”며 “그래서 더 참담했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차마 별들의 집으로 향하지 못하고 각자의 집으로 흩어졌다. 강씨는 “우리가 여기서 뭘 더 할 수 있을까, 사법부마저 이렇게 덮고 가려는 걸까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검찰은 이 전 서장과 박 구청장에게 징역 7년을, 김 전 청장에게 금고 5년을 구형했다. 검찰은 이 전 서장, 박 구청장, 김 전 청장에 대한 1심 판결에 모두 불복해 항소했다.
10월은 ‘바쁘고 아픈 달’
유가협 3기 운영위원을 맡은 강씨는 10월을 바쁘게 보냈다. 매주 토요일 시민과 함께하는 추모걷기대회에 빠짐없이 참석했다. 2주기 추모행사 참여를 요청하기 위해 각 당 대표를 만나러 국회에 갔고,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에 첫 번째 진상규명 조사신청서를 제출할 때도 맨 앞에 섰다.
강씨는 지난 2일 특조위에 조사신청서를 내고 나서 “이제 저희는 이거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은 저희가 원했던 건 대통령의 사과였다”며 “국민 159명이 말도 안 되고 터무니없는 참사를 당했는데 누구도 사과하지 않았고, 특조위가 출범하기까지도 너무 오래 걸렸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는 여전히 딸 상은씨가 왜 구조되지 못했는지, 참사 당시 정부는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답을 찾고 있다. 강씨는 “끝까지 가려면, 세월호처럼 10년이 걸릴 수도 있으니 유가족들끼리 서로 건강 잘 챙기자고 다독이곤 한다”고 말했다.
긴 싸움을 견디게 하는 또 다른 버팀목은 ‘시민들의 연대’다. 강씨는 지하철을 탈 때, 길거리를 걸을 때 사람들의 가방에서 보라색 리본을 찾아본다고 했다. 강씨는 10월 매주 수요일 별들의 집에서 시민들과 보라색 팔찌를 만드는 ‘보라팔찌·보라리본 공작소’ 운영도 맡았다. 하루는 공작소를 찾아온 중년 남성이 말을 건네며 눈물을 흘렸다. “그분은 특별법이 제정돼 일이 다 끝난 줄 알았는데, 얼마 전 특조위 뉴스를 보고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돼 너무 미안했다며 막 우시더라고요.”
선이씨는 상은씨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계속 운영하며 유가협 일정 등을 가족, 친구와 공유하고 있다. 얼마 전 상은씨 인스타그램 계정으로 새 메시지가 왔다. 일본 법인에서 미국 공인회계사로 일하는데, 기사를 통해 상은씨 이야기를 접하게 됐고 같은 꿈을 꾸던 사람으로서 상은씨에게 더 마음이 가서 인스타그램 계정을 찾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꿈을 미처 펼쳐보지도 못하고 떠난 상은씨가 안타깝고, 어떠한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다만 상은씨와 같은 꿈을 꾸고 현실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으로서 상은씨의 몫까지 더 열심히 살아내며 기억하겠다고 말씀드리고 싶었다”고 했다.
선이씨는 28일 메세지를 보낸 이를 별들의집에서 만났다. 선이씨는 일본에서 왔다는 그의 손을 꼭 잡고 별들의집을 소개했다. 선이씨는 “일본에 오면 안아주시겠다고 메세지를 보내주셨는데, 이렇게 한국에 직접 와주시다니 너무 감사하다”며 “녹사평에 분향소를 차렸을 때도, 지나가는 시민들이 한 번씩 안아주시면 너무 힘이 됐는데 이렇게 2년이 지난 뒤에도 연락을 주시고 안아주셔서 너무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추모행사 준비로 바쁜 주중을 보낸 부부는 매주 주말에는 상은씨를 만나러 갔다. 여의도에서 일하고 싶어 했던 딸의 바람을 담아, 부부는 49재가 끝나고 상은씨 위패를 서울 동작구 달마사에 모셨다. 서달산 중턱에 자리 잡은 달마사는 여의도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작은 산사다.
지난 27일 달마사를 찾은 부부는 양초에 상은씨 이름과 ‘사랑, 평안’이라고 적은 스티커를 붙였다. 초에 불을 붙이고, 위패를 둔 법당에서 절을 올린 후 강씨는 딸에게 조용히 말을 걸었다. “상은아, 이번주에 어떤 일들이 있었냐면….” 혼을 모시는 것이 위패이니, 강씨는 그 앞에서 딸을 만나는 마음으로 읊조린다고 했다. 딸 이름을 반복해서 부르는 것도, 그리움이 좀 더 가닿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딸이 먼저 떠난 날을 목전에 두고 찾은 달마사에서, 이들 부부는 평소보다 오래 머물렀다. ‘엄마, 아빠가 부끄럽지 않게 너한테 갈게.’ 딸의 평안을 빌면서, 매번 해온 다짐도 다시 새겼다.
“29일이 오고, 30일이 오면 상은이를 보냈던 그때를 다시 사는 것 같아서…. 10월에는 추모행사로 바빠서 상은이를 덜 생각하게 되다가도 끝나고 나면 더 아프고 힘들 것 같아요.” 선이씨가 말했다.
좋아하는 녹색 대신 ‘보라색’···하나씩 늘어가는 리본들
초록색을 가장 좋아하던 강씨 옷장은 이젠 보라색으로 채워졌다. 이태원 참사를 상징하는 보라색 물건이 하나씩 늘면서였다. 강씨 오른쪽 팔목에는 ‘1·0·2·9’ 비즈가 꿰인 보라색 실팔찌가 묶여 있다. 작은 은색별 안에 보라색 리본이 매달린 귀걸이, 나무로 깎은 보라색 리본 모양 목걸이도 강씨가 외출할 때 자주 착용하는 것들이다. 강씨는 말했다. “해가 질 때면 가끔 보라색 하늘이 보일 때가 있잖아요. 요즘에는 보라색이 더 눈에 띄고, 보라색 물건을 보면 갖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강씨의 팔목에서는 초록빛을 띠는 옥색 묵주 팔찌도 보였다. 무신론자였던 그는 지난 4월부터 성당을 다니기 시작했다. 딸 상은씨는 미국 공인회계사(AICPA) 시험에 합격한 뒤 발레·독서모임 등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지워가던 중이었는데, 그 안에는 성당 교리 수업을 거쳐 세례성사를 받겠다는 목표도 들어 있었다. 교리 수업을 마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딸 대신, 강씨는 교리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딸이 못했던 것을 대신 해주고 싶다는 마음에서였다. 상은씨도 사후 세례(화세)로 ‘실비아’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신이 있다면 왜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싶다가도… 그래도 신이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 때도 있어서요.” 딸이 살아생전 가고 싶었던 성당을 딸 대신 찾으면서 부부는 어떻게든 평화를 되찾으려 애쓰고 있었다.
강씨의 초록색 크로스백에는 색색의 리본 5개가 매달려 있다. 이태원 참사를 상징하는 보라색 리본, 세월호 참사를 상징하는 노란색 리본,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사고를 상징하는 주황색 리본, 화성 아리셀 화재 참사를 상징하는 하늘색 리본, 오송 지하도 참사를 상징하는 초록색 리본이다. 참사 유가족과 연대하는 마음으로 리본을 달고 이들을 직접 만났다. 처음 유가협 활동을 시작할 때 3개였던 리본이, 지난 2년 사이 오송 참사와 아리셀 참사가 벌어지며 5개로 늘어났다. 그는 “다른 참사들을 보면서 무언가 바뀌는 게 쉽지 않다는 생각도 들고, 아직도 우리가 모르는 게 많구나 싶다”고 말했다.
“어느 책에서 봤는데, 원상회복이 되지 않는 상태를 참사라고 한다고 해요.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건 없는 것 같아요. 그냥 지금 저희에게 주어진 것들을 해내는 일상…. 저는 벌써 이게 제 새로운 일상이 된 것 같아요.” 돌아갈 수 없는 일상을 애써 욕심내지 않으며, 강씨는 돌아온 10월29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배시은 기자 sieunb@kyunghyang.com, 김송이 기자 songyi@kyunghyang.com,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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