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일 만든 수제빵이 900원…'48살' 제주 원도심 빵집의 맛과 철학
입소문 타고 큰 사랑…"힘들어도 먹는장사는 양심껏"
[편집자주] 강산이 수십번 바뀌는 세월 속에서도 지역에는 크지는 않지만 수십년간 고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노포들이 있다. 뉴스1제주본부는 3차례에 걸쳐 지역의 오래된 가게를 찾아 그들의 얘기를 소개한다.
(제주=뉴스1) 오미란 기자 = 제주 원도심에 있는 서문공설시장을 향해 가다 보면 눈에 띄는 작은 가게가 있다. '빵'이라는 한 글자가 크게 적힌 입간판과 빨간색으로 곱게 단장한 외관이 손님들을 반기는 '삼복당제과'다.
지역 주민인 양수남(87)·이봉화(85) 부부가 처음 문을 연 이곳은 1976년 개점 이후 무려 48년째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명실상부한 이 동네 터줏대감이다.
이름은 불교에서 꼽는 세 가지의 복, '삼복(三福)'에서 따왔다. 삼복은 인륜의 도를 지켜 얻는 세복(世福), 부처가 만든 계율을 지켜 얻는 계복(戒福), 스스로 불도를 닦고 다른 이에게 전해 얻는 행복(幸福)을 뜻한다. 큰 욕심 없이 널리 베풀며 살고 싶은 소망이 담긴 이름인 셈이다.
2021년 2월 삼복당제과를 물려받은 조카 양영심 대표(57)는 "그래선지 몰라도 큰아버지네는 정말 평생을 밤낮없이 성실하게 사셨다"고 했다.
부부를 바쁘게 만든 건 다름 아닌 '입소문'이었다.
모두가 춥고 배고팠던 시절 직접 쑨 팥을 넣은 찐빵 등 당일 만든 수제빵을 값싸게 판다는 이야기는 금세 동네에 쫙 퍼질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화산섬 특성상 벼농사가 어려워 쌀이 귀했던 탓에 제사상, 차례상에 빵을 올리는 제주 특유의 문화도 부부를 눈코 뜰 새 없이 만들었다.
양 대표는 "어느 날 '나이도 들고 이제 힘들어서 못 하겠다'는 큰어머니의 말을 듣고 한 3일 정도 고민하다 덜컥 '제가 할게요'라고 했는데 대체 무슨 용기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매일 새벽 2시에 출근해 6시간 동안 빵을 만들어 포장한 뒤 10시 30분부터 손님을 받고 오후 6시에 퇴근해 9시쯤 잠드는 것이 그의 일과다. 양 대표는 "큰아버지네는 쉬는 날도 없이 일하셨는데 그래도 저는 일요일 하루는 쉰다"고 미소 지었다.
혀를 내두르는 기자에게 양 대표는 "힘들어도 먹는장사는 양심껏 해야 한다"고 말할 뿐이었다.
오래도록 여전한 삼복당제과의 건강한 빵 맛과 저렴한 가격은 이 같은 양 대표의 철학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삼복당제과는 개점 때부터 방부제를 사용하지 않고 당일 자연원료로 만든 빵을 판매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맛이 기본에 충실하고, 먹으면 소화도 잘돼서인지 중장년층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지난해 드라마 '박하경 여행기'에 소개된 뒤로는 관광객들의 발길도 부쩍 늘었다고.
양 대표는 "빵이 금방 팔려 보통 4~5시쯤 마감한다"며 "가끔 빵이 많이 남는 날이면 당일 오후 근처 복지기관에 기부하고 있다"고 했다.
가장 인기 있는 빵은 오후 1시 30분에 나오는 '사라다빵'이다. 튀긴 빵 사이에 케첩 소스에 버무린 양배추, 햄, 오이 등을 듬뿍 담아낸 추억의 빵이다. 간편하면서도 영양을 갖춰 식사 대용으로도 제격이다.
가격은 다른 빵집에 비해 30~40% 저렴하다. 제사·차례상에 주로 오르는 카스텔라, 롤케이크, 빵설기를 제외하면 4000원을 넘는 빵이 없다. 심지어 단팥빵·소보로빵·메론빵·크림빵·딸기잼빵·꽈배기·팥도넛·찐빵은 단돈 '900원'이다.
양 대표는 "가게 앞 제주중학교에 다니는 학생 손님들까지 '이모, 왜 900원밖에 안 받으세요?', '남는 게 있어요?'라고 물어볼 정도"라고 웃으며 "그래도 가게를 물려받은 뒤로 해마다 100원씩 올린 게 지금 가격이다. 힘들어도 단골들을 위해 지금 가격선을 유지할 생각"이라고 했다.
하나 바람이 있다면 '분점 개점'이다. 양 대표는 "제주 동쪽 표선에서도, 서쪽 모슬포에서도 단골손님들이 오신다"면서 "작게나마 2호점, 3호점을 열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더 열심히 해 보겠다"고 힘 줘 말했다.
#이 기사는 제주특별자치도의 협조를 받아 작성했습니다.
mro1225@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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