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실 없다" 무죄 나온 책임자들…특조위 밝혀낼까[이태원 2주기]
경찰 어떻게 초기 대응 실패했나…희생자 인계 과정도 규명 과제
(서울=뉴스1) 박혜연 유수연 기자 = 전대미문의 참사였다. 10·29 이태원참사는 2014년 4·16 세월호 참사 이후 가장 큰 규모 인명 피해였다. 전 세계 압사 참사 중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꼽힌다.
참사 후 2년 동안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요구가 빗발쳤지만 형사 책임을 지우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제 유족들은 이태원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에 희망을 걸고 있다. 유족들은 단순히 개인의 법리적 책임만을 따지는 사법부와 달리, 특조위가 참사 전후로 발생한 구조적·사회적 문제에 대해서도 규명해주길 바라고 있다.
최근 1심 법원은 당시 주요 책임자들에게 과실 책임이 있었는지를 판단했다.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과 송병주 전 용산경찰서 112치안종합상황실장, 박인혁 전 서울경찰청 112치안종합상황실 팀장은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반면 박희영 용산구청장과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에게는 무죄가 선고됐다.
법정에서는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 특성상 각 피고인에게 사고 예견 가능성과 주의·감독 의무를 다했는지가 쟁점이 됐다. 재판부는 사고를 예견할 가능성이 크고 현장에서 상황을 파악해 직접 상부에 보고해야 하는 현장 실무자나 지휘관들에게 주로 책임이 있다고 본 것이다.
다만 박 구청장은 당시 재난안전법상 주최자가 없는 축제에 대해 안전 관리 의무가 없었고, 김 전 청장은 그가 보고받은 내용만으로는 대규모 사고 발생 우려나 대비 필요성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없었다는 점이 무죄 판단의 근거가 됐다.
법적 책임 인정 안 됐지만…초기 대응 실패 이면엔 '관리체계 붕괴'
재판 결과와 국정조사보고서에서는 경찰의 초기 대응 실패가 공통으로 지적되고 있다. 인파 관리가 필요하다는 보고는 부분적으로 이뤄졌지만 이에 대한 안전 관리 계획은 수립되지 않았고, 상황 관리체계가 붕괴하면서 현장에서 상부를 향한 보고·지휘체계 역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경찰청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참사 당일 현장에 배치된 경찰관은 모두 137명이었다. 교대 근무자를 포함, 당일 용산경찰서 81명과 서울경찰청 지원 56명이 범죄 예방과 질서 유지를 위해 배치됐지만 현장에서 인파 관리 위험성을 전달할 정보관은 한 명도 없었다.
참사 전 용산경찰서 정보과에서는 핼러윈데이 관련 인파 관리 필요성에 대한 보고서가 작성됐고, 서울경찰청 정보과에서도 인파 집중 위험성을 인지했지만 구체적이고 실효적인 대책은 수립되지 않았다.
2022년 10월 29일 토요일 밤 10시 15분 용산소방서가 사고 발생 신고를 처음으로 접수하고 출동했다. 그때까지 오후 6시 34분 첫 신고를 시작으로 이태원파출소로 들어온 압사 징후 신고는 모두 11건이었다. 그럼에도 당시 이태원파출소 순찰팀은 '일상적 불편 민원'으로 치부하는 등 신고 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당시 순찰팀장과 출동 경찰관 등 2명은 기소돼 재판을 받는 중이다.
특히 밤 9시쯤 '인파가 너무 많아 대형사고 일보 직전'이라는 신고에 '코드 제로(즉시 출동)'가 부여됐음에도 서울경찰청 상황실에서는 상황팀장과 상황관리관 사이에 정보 공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소방이 경찰에 공동 대응을 요청한 것은 밤 10시 18분. 이후 밤 11시까지 112 신고만 120건이 접수됐다. 이임재 전 서장은 국회 청문회에서 "60명이 CPR(심폐소생술) 중"이라는 무전을 받은 밤 11시 1분쯤에야 압사 규모와 심각성을 인지했다고 증언했다.
유족 "내 가족 구조·이송 과정 전혀 몰라"…특조위로 넘어간 공
유족들은 참사가 발생한 후 희생자 신원 확인 지연이나 불투명한 유족 인계 과정, 정부 차원의 사과 부재 등 여러 문제가 남아 있다고 주장한다. 지금까지 어떤 유족도 희생된 자신의 가족이 언제 구조됐고, 누구에게 어떤 응급조치를 받았으며, 언제 어느 병원으로 후송됐다가 왜 다른 병원으로 이송됐는지를 아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희생자 유족 최선미 씨는 국회 국정조사특위에서 "신원 조회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부모를 밤새 순천향병원 마당에 세워 놓았으며, 아침이 돼서야 기자들을 통해 다른 병원으로 이송된 사실을 알게 됐다"며 "12시간 만에 강동성심병원에서 희생자를 찾을 수 있었으며, 곧 연락을 줄 테니 움직이지 말라던 용산경찰서는 아무런 전화도 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최 씨는 "그동안은 참사나 대형 사고가 발생하면 실종자·사망자들의 신원을 신속히 파악해 유가족들에게 알리고 언론에 희생자 명단이 실시간 속보로 알려졌고 브리핑을 통해 사고 경위, 사고 이후 조치 등에 대한 내용이 유가족에게 알려졌다"며 "이번에는 직접 유가족이 희생자들을 찾아 나서야 확인할 수 있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남은 규명 과제들은 지난달 23일 첫발을 뗀 특조위의 몫이 됐다.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는 지난 2일 특조위를 방문해 첫 진상규명 조사신청서를 제출하며 "왜 충분히 예견된 재난 위험을 감소시키지 못했는지, 참사 피해를 키운 재난관리 체계의 구조적인 문제는 무엇인지 등 명백히 드러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유가족협의회가 특조위에 제출한 진상규명 신청서에는 △희생자 159명이 가족들에게 인계되기까지의 행적 △대통령실 용산 이전이 참사 대응 관련 각 기관에 미친 영향 △참사 피해자들에 대한 모욕·2차 가해 등 9개 과제가 담겼다.
송기춘 특조위원장은 "참사 발생 원인을 비롯한 구체적인 실체를 엄밀히 조사하고 국가기관이 취한 조치의 적절성 및 책임 여부를 밝힐 것"이라며 "피해 실태와 지원 대책을 점검해 유족과 피해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활동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hypar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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