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할 권리’마저 외면한 정부···유가족은 ‘투사’가 되어야 했다[이태원 참사 2주기]
정부, 늑장 정보 제공 등 불신 커져
‘진실규명 호소’ 위해 거리로
시동 건 특조위에도 반신반의
유가족은 언제, 어떻게 투사가 되는가.
2022년 10월29일 오후 10시를 넘긴 시각.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대규모 압사 사고’가 발생했다는 뉴스 속보가 떴다. 이태원에 간다고 나간 딸 지민에게 연락이 닿지 않았다. 오일석씨(57)는 초조한 마음으로 실종 신고를 냈다. 그날 밤 사망자·부상자 명단은 나오지 않았다. 밤을 꼬박 새운 다음날 경찰에서 연락이 왔다. 경찰은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 오씨 딸이 있는 것 같다는 소식을 전했다. 경기 시흥에서 서울로 부리나케 달려갔지만, 딸은 다른 병원으로 옮겨간 뒤였다. 오씨는 그날 오후 경기 일산의 한 병원에 가서야 딸을 만날 수 있었다. 딸은 영안실에 말없이 누워 있었다. 경찰서와 시청에서 온 사람들이 “도움을 드리겠다”며 빈소에 머물렀지만 오씨는 어떤 도움을 청해야 할지 몰랐다.
정작 그는 서울 한복판 골목길에서 159명이 왜 희생됐는지, 딸 지민이는 어쩌다 이태원에서 일산의 병원으로 옮겨졌는지가 궁금했지만 정부는 답이 없었다. 정부는 위패와 영정이 없는 분향소를 차렸고, 서울시는 유가족이 서울광장에 세운 합동분향소에 철거 계고장을 보냈다. 오씨는 ‘추모할 권리’마저 외면하는 정부를 보며 불신이 켜켜이 쌓였다.
“참사 피해자와의 소통에도 골든타임이 있다.” 재난 피해자 권리를 연구한 류현숙 한국행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지난 23일 열린 국회 정책포럼에서 말했다. 재난 피해자의 알권리를 보장하고 참여권을 실현하기 위한 입법·정책 개선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류 연구위원은 “재난 피해자들은 현장에서 사고 수습과 구호가 어떻게 됐는지, 그 과정에 대한 갈구가 심하다”며 “정보를 제때 제공하지 않으면 불신으로 바뀐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참사 때 정보 제공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리는 과정을 겪으면서 피해자와 유가족이 ‘투사’가 된다고 했다. 언론에서는 파편화된 정보가 쏟아지는데, 수사기관은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신뢰할 만한 자료를 피해자에게 제공하지 않기 일쑤다. 유족들은 재판을 직접 방청해야만 그 내용을 일부나마 알 수 있다. 전문가들은 피해자·유가족에게 ‘사건의 정보를 제공받을 권리’ ‘사건에 관한 의견을 진술할 권리’ ‘피해자 간 연대할 권리’ ‘전문가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고 했다.
모두 이태원 참사 유가족이 요구했지만, 묵살됐던 것이다. 외면과 묵살은 피해자를 거리로 내몬다. 오체투지·단식·삭발 등 진상규명을 호소하는 유족의 행동 역시 국가가 제때 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탓이 크다. 유해정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 센터장은 “영국에선 참사 관련 모든 정보를 공개하고 온라인에 게시한다”며 “공개된 자료는 검증할 수 있으므로 재난 피해자들이 정부가 낸 결과를 신뢰한다”고 했다.
불신에서 기인한 투쟁은 피해자의 일상 회복을 더디게 한다. 오체투지 등에 적극 참여하며 유가족협의회 활동에 적극 동참했던 오씨는 요즘 활동을 잠시 멈췄다. 그는 “거리에 나서는 것이 지민이에 대한 추모라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제 개인적으로 추모를 못한 거였더라”고 했다. 천신만고 끝에 만들어낸 특별법, 참사 2주기가 다 돼서야 시동을 건 특별조사위원회를 피해자들은 기대 반 의심 반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참사 초기 뿌리박힌 불신을 떨쳐버리지 못한 오씨는 특조위에 대해 “여야 합의로 만들어졌지만, 서로 또 갈등하면 (정부와 여당이) 언제든 돌아설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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