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통’ 러시아 루블보다 떨어진 원화… 재점화된 ‘환율리스크’

최온정 기자 2024. 10. 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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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통위 이후 원화 2.5% 절하… 일본 이어 2위
러시아 루블 절하율 0.7%, 원화의 4분의1 수준
韓 3분기 GDP 쇼크·트럼프 트레이드 등 영향
11월 인하 가능성 ‘뚝’… “美 대선 등 확인해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당선에 베팅하는 현상인 ‘트럼프 트레이드’가 우리나라 외환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금리 인하 이후 원·달러 환율이 1390원을 넘어서면서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보다도 절하율이 높았다. 환율 흐름이 ‘안정적’이라고 평가했던 외환당국도 다시 달러 강세를 주목하는 모습이다.

지난 11일 금리를 인하하면서 3년 2개월 만에 통화정책을 전환한 한국은행의 입장도 난처해졌다. 3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전기대비)이 부진한 실적을 내면서 기준금리를 추가 인하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커졌지만, 환율 상승으로 금리를 더 내리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당장은 환율 흐름을 지켜보며 통화정책에 나서야 할 상황이 됐다.

◇ 10월 11~28일 원화 절하율, G20개국 중 日 이어 2위

29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ECOS)에 따르면 금통위가 열린 11일부터 28일까지 원화 가치는 2.5% 절하된 것으로 나타났다. 한은이 환율을 집계하는 42개국에서는 총선을 앞두고 정세가 불안했던 일본 엔화(-2.7%) 다음으로 절하율이 높았다.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 루블(-0.7%)과 비교하면 절하율이 4배에 달했다.

주요 20개국(G20) 중에서도 원화의 절하율은 일본에 이어 2위다. 나머지 통화의 절하율은 멕시코 페소(-2.5%), 브라질 헤알(-2.2%), 호주 달러(-2.0%), 유럽 유로(-1.2%), 캐나다 달러(-1.1%), 아르헨티나 페소(-1.0%), 남아프리카공화국 랜드(-0.8%), 영국 파운드(-0.8%), 러시아 루블(-0.7%), 인도 루피(-0.2%), 튀르키예 리라(-0.1%), 사우디아라비아 리얄(0.0%)이었다.

그래픽=정서희

원화가 유독 약세를 나타낸 원인으로는 먼저 국내 경기 부진이 꼽힌다. 한국은행이 지난 24일 발표한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전기 대비)은 0.1%로, 한은 전망(0.5%)의 5분의 1에 불과하다. 분기별로 보면 지난 2분기(-0.2%)보다는 낫지만, 1분기(1.3%) 성장률이 1%를 상회한 것을 감안하면 저조한 실적이다.

GDP를 항목별로 뜯어보면 상황은 더 좋지 않다. 민간소비와 설비투자 등 내수는 전기 대비 증가세로 돌아섰지만, 경제 성장을 이끌었던 수출은 2022년 4분기(-3.7%) 이후 처음으로 역성장했다. 수출이 역성장하면서 GDP 성장률에 대한 기여도는 내수가 0.9%포인트(p), 수출이 -0.8%p를 기록했다. 수출 기여도는 2분기(-0.1%p)에 이어 3분기까지 2분기 연속 마이너스(-)다.

대외적으로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번 미국 대선에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앞섰다는 예상이 나오면서 원화 가치 하락을 부추겼다. 과거 재임시절 철강 등 품목에 고율 관세를 부과했던 트럼프는 이번 대선에서도 보편적 기본관세(전 수입품에 10~20% 관세 부과)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수입제품 가격 인상은 한국과 같은 교역 의존도가 높은 국가에는 좋지 않은 소식이다.

◇ 한은 “환율 다시 고려”… 11월 금리인하 쉽지 않을 듯

외환당국은 환율의 변동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5일(현지 시각) 워싱턴DC에서 특파원들을 만나 “(원화) 약세 속도가 다른 나라 통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빠른 면이 있어 정부가 주시하고 있다”면서 “환율 변동성을 각별히 주시하고 있기에 ‘쏠림 현상’이 있다면 적절한 조처를 할 것”이라고 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같은 날 진행된 특파원 간담회에서 “타깃(특정한 환율 목표치)보다 변동성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했다. 이어 “환율이 박스권을 너무 빠르게 벗어나면 환율로 손해를 보는 사람들이 발생하고 마진콜(추가 증거금 요구)을 막기 위해 더 많은 돈을 빌려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는데 이는 환율에 재차 영향을 미친다”면서 “이런 문제가 안 생기게 스피드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25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에서 국내 기자단과 간담회를 갖고 있다. /연합뉴스

강달러 흐름은 미국 대선 이후에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민주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모두 상당한 재정지출이 필요한 공약을 내걸고 있어서다. 이는 미국의 국채 발행량 증가로 이어져, 미국 금리와 달러 가치가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게 할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의 국고채 금리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빅컷(기준금리 0.5%포인트 인하)을 단행한 지난달 19일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올라와 있다. 당시 각각 3.59%, 3.47%로 마감했던 2년·3년물 금리는 지난 25일 기준 4.11%, 4.05%로 높아졌다. 같은 기간 10년·20년물 금리는 3.73%, 4.11%에서 4.25%, 4.58%로 올랐다. 장·단기금리 모두 50bp(1bp=0.01%포인트) 넘게 오른 것이다.

내수 부진과 환율 안정을 모두 달성해야 하는 한은의 셈법은 복잡해졌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국내 기자단과 진행한 간담회에서 “지난번(10월 금융통화위원회)에는 고려 요인이 아니었던 환율도 다시 고려요인으로 들어왔다”면서 내달 금통위에서 ▲수출 증가율 둔화세가 내년 성장률에 미치는 영향 ▲거시건전성 정책의 금융안정 효과 ▲미 대선이 끝난 뒤 달러 강세 지속 여부 등을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원은 “11월 금리 인하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고 있다”면서 “3분기 GDP 부진은 내수보다는 순수출의 기여도 급감이 원인인데, 원론적으로 수출은 금리 인하로 대응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그동안 내수 위주로 국내 경기가 상대적으로 부진한 상황에서 금리 인하를 계속 지연하는 것도 부담이 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하연 대신증권 이코노미스트는 “향후 대외 정치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있어 내수 부양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완만하지만 금리 인하 기조가 내년 상반기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올해보다는 내년 1분기 금리 인하 가능성이 크다”면서 “(당장은)미국 대선 등 지정학적 리스크와 지난 10월 금리인하 효과 등을 확인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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