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의 오마이갓]원불교 종법사의 삭발에 쏠린 관심

김한수 기자 2024. 10. 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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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 왕산 성도종 종법사 “삭발 하지 않겠다” 선언
원불교 왕산 성도종 종법사. 오는 11월 3일 취임하는 왕산 종법사는 "머리를 삭발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김한수 기자

“사람들이 지켜보는 것 알고 있습니다. 저한테 직접 물어보지도 않고, 지켜보고 있어요. 궁금하니까. 가까운 사람들은 저에게 직접 물어보기도 합니다.”

지난 22일 전북 익산 원불교 중앙총부 종법실. 오는 3일 대사식(취임식)을 앞두고 기자 간담회를 갖던 중 왕산(汪山) 성도종(74) 종법사(宗法師)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궁금한데, 직접 묻지도 않고 지켜보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새 종법사의 ‘삭발 여부’입니다.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이유는 원불교의 최고 지도자인 종법사는 관례적으로 선출된 후 취임식 전에 삭발하곤 했기 때문입니다. 원불교 남성 성직자들은 불교와 달리 삭발이 의무가 아닙니다. 헤어스타일뿐 아니라 복장도 일반인과 비슷합니다. 양복 상하의에 셔츠 칼라만 로만 칼라처럼 둥근 형태입니다. 여성 성직자가 쪽찐 머리에 흰 저고리, 검정 치마차림으로 눈에 확 띄는 것과 다르지요.

“종법사 삭발, 관례일 뿐 규칙 아니다.”

평소엔 이렇게 일반인들과 비슷한 외모로 활동하던 남성 성직자들은 최고 지도자인 종법사에 선출되면 삭발을 하곤 했습니다. 좌산 이광정 상사(上師·퇴임한 종법사에 대한 경칭), 경산 장응철 상사도 그랬습니다. 종법사의 머리카락이 길던 시절을 기억하는 분들은 처음엔 삭발한 모습을 어색하게 여기기도 하지요. 앞서 ‘관례적’이라고 말씀드렸지만 종법사의 삭발이 정해진 규칙은 아닙니다.

그래서 지난 9월 25일 수위단회에서 왕산 성도종 원로교무가 종법사로 선출됐을 때 동료 성직자와 교도(신자)들은 ‘새 종법사는 삭발할까, 안 할까, 삭발한다면 언제 할까’를 궁금해 했다는 것입니다. 과거엔 종법사에 선출되자마자 바로 삭발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새 종법사가 삭발할 조짐이 보이지 않으니 설왕설래가 오갔던 모양입니다.

원불교 역대 최고 지도자인 종법사의 모습. 좌산 이광정, 경산 장응철, 전산 김주원 종법사(왼쪽부터)는 모두 종법사에 취임하면서 삭발했다. /조선일보DB

“내 몸이 내 몸이 아니다. 대중 뜻 따르겠다” “100명 중 아흔 아홉은 ‘깎지 말라’”

결론적으로 신임 종법사는 삭발하지 않기로 했다고 합니다. 이유가 신선했습니다.

“저도 여러 소리를 듣고 있어요. 이전 종법사들께서 삭발했으니까요. 그래서 대중들이 궁금해 하시는 것이고요. 그런데 사실 저는 당선되기 이전부터 ‘내 몸이 내 몸이 아니다’라고 생각했어요. 나는 아버지도 아니고, 할아버지도 아니고(원불교 남성 성직자는 결혼해서 가정을 꾸릴 수 있습니다. 왕산 종법사도 가정이 있습니다.) 그냥 우리 대중들이 선출해서 앞에 앉혀놓은 공물(貢物)이다. 그런 생각입니다.”

왕산 종법사는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다.

“그래서 생각하고, 말하고, 마음 먹고, 옷 하나 걸치는 것도 이것은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라고 일찍 결심했어요. 제가 만나본 대중 대다수는 삭발하지 않기를 원해요. 극히 일부에서 삭발해야 한다는 분도 있어요. 비율로 따지면 백에 한 명 정도. 그런데 그 한 명의 강도는 매우 강해요.(웃음) 아흔 아홉 명은 그 문제에 대해서 내가 취하고 있는 태도에 대해 환호를 냈습니다.”

대중들의 뜻을 따랐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대중들은 왜 삭발을 반대했을까요?

“근본적으로 전통적인 수행자로서 모습과 연관해 삭발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그렇지만 다른 분들은 ‘아무리 종법사라고 해도 우리들(성직자) 가운데 한 분 아니냐. 그냥 있는 모습 그대로 함께하면 좋겠다’고 했어요. 저 담 너머, 딴 세상 사람이 아니고 우리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함께 고민하고 공부하고 일하는 사람들 가운데 앞서서 순번이 정해졌다는 것 뿐이죠. 종법사가 됐다고 저에게 절대 다른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흔 아홉 분의 심정을 통해서 알게 됐어요.”

성직자들 “종법사도 딴 세상 사람 아니다” 반대

단순히 삭발 하나가 문제가 아니었다는 얘기지요. ‘다른 성직자들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은 여러 분야에서 실천할 생각이라고 합니다.

“이 자리에 앉았다고 해서 갑자기 없던 능력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종법실(집무실) 접근도 최대한 가능하도록 개방하겠습니다. 그것도 중요하지만 사실은 대중들 속으로 찾아가고 다가가야죠. 이 자리에 앉아서 오시는 손님만 맞이해서는 대중들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분들, 지켜보는 시선은 ‘어떻게 하나 보자’ 하는 것과 마음 속으로 잘 되길 응원하는 시선이 섞여 있지요. 그런 시선을 놓치면 안 됩니다. 실제로 찾아오는 분들은 어떤 업무와 관련해서 요청할 것이 있고 그런 분들이지요. 그러나 다가오지 못하는 대중들을 향해 다가가는 것은 어느 집단의 리더나 마찬가지일 거예요. 마음처럼 잘 되지 않는 게 현실이고요. 단단히 마음 먹고 초심을 잃지 않으려 해요.”

왕산 종법사는 그러면서 ‘교단의 초심’ 또한 강조했습니다.

“교법(敎法) 정신의 회복은 영원한 과제입니다. 끊임없이 놓쳐서는 안 될 과제이지요. 원불교가 세상에 왜 나오게 됐는지, 왜 개교했는지, 그 개교를 통해 세상에 무엇을 하자는 것인지. 이것이 우리의 교리와 교법에 담겨 있습니다. 그 근본정신을 100년 시점에 스스로 평가할 때 퇴색한 부분, 변질된 부분, 왜곡된 부분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잘 정리해서 털어낼 것은 털어내고, 세울 것은 다시 세우는 정지 작업이 필요합니다.”

또한 ‘종교성의 회복’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종교의 본질적 문제는 영성의 문제입니다. 마음을 맑히는 문제이지요.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어요. 자연스런 과정이라고 봅니다. 수천년 동안 제도화된 종교는 비본질적인 부분이 강화된 측면이 있어요. 종교 본연의 본질적 영역은 약화되고 하나의 세력 집단화 된 면이 있지요. 세력끼리 부딪히기도 하고요. 이런 부정적 요소 때문에 종교를 떠나거나 다른 길을 찾은 사람들도 있지요. 종교가 본연의 정신을 지키고 본래 목적에 충실하다면 종교를 떠났던 사람이든, 멀리서 인간 본성을 추구하는 분들은 다시 종교로 돌아올 것입니다. 이런 점을 각성하고 회복하는 것이 교법 정신의 회복입니다.”

원불교는 36년을 1대(代)로 계산하는 시대구분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계산법에 따르면 올해는 3대가 끝나고 4대가 시작되는 해입니다. 새 출발에 대한 희망과 포부를 밝혀도 허물이 되지 않는 자리였습니다. 그렇지만 왕산 종법사의 일성(一聲)은 ‘자성(自省)’이었습니다. 그가 이끌어갈 ‘젊은 종교’ 원불교의 미래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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