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효상 칼럼] 왜 일등기업이 몰락할까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 원장 2024. 10. 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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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사진=유효상

일본 반도체, 전자 산업을 상징하던 도시바가 2023년 12월 말 상장 폐지됐다. 1875년 설립해 무려 150년 역사를 지닌 도시바는 1949년 도쿄 증시 상장 이후 74년이나 이어오던 상장기업 역사를 끝낸 것이다. 도시바는 한때 일본 기술력의 상징이고 자존심이었다. 한국이 반도체 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전인 1970년대 후반부터 세계 반도체 시장을 선도했으며, 일본 최초 컬러TV, 세계 최초 플래시메모리 개발, 세계 최초 노트북 출시 등 혁신기술에 기반한 제품으로 일본의 산업과 경제를 이끌어 왔다. 오랜 역사와 방대한 사업을 보유한 기술 기업인 도시바는 양자컴퓨터 관련 양자암호 특허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을 만큼 뛰어난 기술력을 자랑했었다. 하지만 2015년 회계 스캔들과 2017년 자회사인 웨스팅하우스의 파산으로 경영난에 빠지자 결국 사모펀드에 경영권을 넘긴 것이다.

또한 일본의 최대 메모리 반도체 기업 엘피다는 전 세계 모바일 D램 표준을 가장 먼저 제안할 만큼 기술력이 앞서 있었지만,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경영난에 빠지면서 미국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에 매각됐다. 낸드 플래시의 선두 업체였던 후지쓰는 2010년 전후 PC에서 스마트폰 중심으로 사업전환 기회를 놓치며 위기를 맞이한 상황에서 삼성전자에 주도권을 뺏기면서 시장에서 사라졌다.

이처럼 초격차 기술을 기반으로 우위를 가지고 있던 일류기업이 혁신을 게을리하다가 한순간에 시장에서 도태되는 사례는 의외를 흔하다. 혁신으로 성장한 기업이 몰락하는 이유는 후발기업의 혁신 때문이라는 클레이튼 크리스텐슨의 '혁신기업의 딜레마'다.

1990년부터 2000년대까지 휴대전화 시장의 절대 강자는 핀란드 노키아와 미국 모토로라였다. 특히 노키아는 1998년 모토로라를 제치고 세계 1위로 군림하면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살아남았다. 노키아는 최초의 스마트폰인 애플 아이폰이 처음 출시된 지 4년 후인 2011년까지 판매 대수 기준으로 세계 1위를 지켰다. 하지만 노키아는 과거의 영광에 취해 애플과 삼성전자 등에 비해 스마트폰 개발에 소극적이었고, 결국 2013년 휴대전화 사업을 마이크로소프트에 매각하고 화려한 시절을 마감했다. 휴대전화 시장을 개척한 모토로라 역시 스마트폰으로 급변한 시장에 적응하지 못하고 2011년 구글, 2014년 중국 레노버에 매각되는 등 빠르게 무너졌다.

카메라 시장 역시 비슷한 경로를 걸었다. 코닥은 세계 처음으로 필름 카메라 기술을 개발해 2012년 생산을 중단할 때까지 세계 최고의 카메라, 필름 제조 회사였다. 코닥은 호황기였던 1980년대 디지털카메라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지만, 시장 도입을 주저하며 필름 시장을 고집했다. 그러는 사이 2000년대 들어 필름 시장이 빠르게 축소되면서 코닥은 급속도로 추락했다. 급기야 2011년에는 시가총액이 88%가 사라졌고, 2012년 초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 현재 코닥은 패션 브랜드로 재탄생했지만, 세계를 주름잡던 혁신기업이라는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의 저자인 짐 콜린스는 자신이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위대한 기업들이 줄줄이 몰락하는 것을 보며 큰 충격을 받고, 뛰어난 기업들이 어떤 이유로 도산하는지를 연구하여 '위대한 기업은 다 어디로 갔을까'라는 책을 펴냈다. 콜린스는 오랜 탐구와 치밀한 조사 끝에 위대한 기업들이 크게 5단계를 거치며 서서히 몰락의 길을 걷는다는 것을 밝혀 냈다. 위대했던 기업은 성공으로부터 자만심이 생겨나는 단계, 원칙 없이 더 많은 욕심을 부리는 단계, 위험과 위기 가능성을 부정하는 단계, 구원을 찾아 헤매는 단계, 유명무실하거나 생명이 끝나는 단계를 밟으며 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희망인 삼성전자가 대대적인 구조조정설과 직원들의 자발적인 이탈로 술렁이고 있다. 주식시장에서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삼성전자를 투매하고 있다. 10월 28일 현재 삼성전자 주가는 5만 5900원으로 금년 초에 비해 33% 이상 하락했다. 삼성전자 주가는 '오늘이 제일 비싸다'라는 개인투자자들의 자조 섞인 푸념이 들리는 가운데 매일 신저가를 기록 중이다. 외국인은 33일 연속 순매도 행진을 이어가며 13조 원 가까이 팔아 치웠다. 외국인 투자자의 이탈과 주가 폭락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오랫동안 반도체 1등 기업의 왕좌를 지켰던 삼성전자의 위기론이 거세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2010년대 중반 반도체, 스마트폰, TV 등 20여 개가 넘는 품목에서 세계 1위를 하는 글로벌 1등 기업이 됐다. D램과 낸드 플래시는 치킨게임에서 승리하며 도시바, 엘피다 등 일본 반도체 기업을 파산시켰고, 스마트폰은 본고장인 미국에서도 애플의 판매량을 넘어서기도 했다. TV, 디스플레이에선 중국 기업의 추격이 거셌지만 빠르게 고부가가치 상품인 OLED로 주력상품을 바꾸며 판을 뒤집었다.

그러나 지금은 차세대 D램인 AI 메모리 시장에선 SK하이닉스와 기술 경쟁에서 밀렸고, 파운드리는 TSMC와 점유율 격차가 50% 가까이 벌어졌다. 모바일은 프리미엄 제품에 주력하는 애플에 추월당하고, TV, 디스플레이는 중국 기업이 LCD 시장 장악력을 바탕으로 OLED에서도 영향력을 확대하며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그러는 와중에 삼성전자는 지난해 글로벌 시가총액 22위에서 금년 10월 28일 현재 37위로 떨어졌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는 반도체 분야는 2018년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왔을 때 D램 생산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연구개발 라인조차 생산라인으로 돌렸고 시장성이 없어 보이는 HBM 연구개발팀을 해체했는데, 이러한 결정이 지금은 천추의 한이 되고 있다. 엄청난 수익을 안겨주는 HBM의 선두 자리를 너무 쉽게 포기한 꼴이 됐기 때문이다.

반도체와 IT 분야는 기술 변화가 매우 빠르기 때문에, 글로벌 빅테크 기업은 관련 기술을 경쟁사보다 신속하게 확보하기 위해 자체 R&D는 물론 끊임없이 M&A를 추진한다. 그래서 전문가를 최고경영자로 내세우고 전권을 부여한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조직이 비대해서 의사결정이 느리고, 기술보다는 비용을 우선한다는 내부의 불만이 표출되고 있다. 더욱이 비전문가가 최종 의사결정권을 갖고 있으며, 사외이사 중 반도체 전문가는 한 명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TSMC가 사외이사 절반 이상을 반도체 전문가들로 채운 것과 대조된다.

'기술은 두 가지 유형의 사람들, 기술에 대해서는 충분히 잘 아는 전문가지만 권한이 없는 사람과 기술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정책을 수립하고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에 의해 지배된다'라는 '퍼트의 법칙(Putt's Law)' 이 있다. 퍼트의 법칙은 기업이나 국가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경우에도 흔히 나타난다.

'사망선고를 받은 거대한 코끼리'라는 오명을 쓰고 몰락하던 PC시대의 레거시 기업 IBM은 과감한 혁신과 탈 권위의식으로 완벽하게 부활했다. 혁신기업의 딜레마에서 벗어난 대한민국 일등기업 삼성의 화려한 귀환을 기대한다.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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