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 올 줄 알았다, 은퇴식에 감독까지 시켜주시고…" 13년 전 FA 이적생→우승 감독 감격, 타이거즈 'V12' 불패 신화
[OSEN=광주, 이상학 기자]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가 12번째 한국시리즈도 우승으로 장식했다. KBO리그 최초 1980년생 사령탑으로 지휘봉을 잡은 이범호(43) 감독이 부임 첫 해부터 타이거즈의 한국시리즈 불패 신화를 이어갔다. 13년 전 FA로 KIA에 온 외부 이적생이 성대한 은퇴식으로 선수 마지막을 장식한 데 이어 감독으로도 화려한 첫발을 내딛었다.
이범호 감독이 이끄는 KIA는 28일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에서 치러진 2024 신한 SOL Bank KBO리그 삼성 라이온즈와의 한국시리즈(KS·7전4선승제) 5차전에서 7-5로 역전승하며 시리즈 전적 4승1패로 우승을 차지했다.
포스트시즌 사상 첫 우천 서스펜디드 게임으로 치러진 1차전과 2차전을 같은 날 승리하며 기세를 탄 KIA는 대구로 옮겨 가진 3차전을 패했지만 4차전을 잡고 승기를 굳혔다.
이날 5차전에선 선발 양현종이 홈런 3방을 맞고 2⅔이닝 5실점으로 조기 강판됐다. 3회초까지 1-5로 뒤졌지만 최형우가 3회 추격의 1타점 적시타, 5회 솔로 홈런을 터뜨리며 추격을 이끌었다. 계속된 5회 공격에서 볼넷 4개로 밀어내기 점수와 상대 폭투로 동점을 만든 KIA는 6회 김태군의 결승타, 8회 박찬호의 쐐기타로 역전승했다. 8회 2사 만루 위기에 나와 9회까지 책임진 마무리 정해영이 4아웃 세이브로 우승 순간을 확정했다.
이로써 KIA는 정규시즌에 이어 한국시리즈까지 2017년 만에 통합 우승을 해냈다. 87승55패2무(승률 .613)로 2위 삼성에 9경기 차이로 압도적인 우세 끝에 한국시리즈 직행에 성공했고, 삼성을 4승1패로 압도하며 광주에서 37년 만에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KIA는 역대 12번의 한국시리즈 우승 중 9번을 서울 잠실구장에서 확정했다. 1991년 대전까지, 광주가 아닌 곳에서만 10번이나 우승을 했다. 2015년까지 있었던 KBO 한국시리즈 중립 경기 제도로 인해 광주 홈팬들과 우승 기쁨을 만끽할 기회가 1987년 한 번밖에 없었는데 이번에 모처럼 광주에서 우승 축포를 기분 좋게 터뜨렸다.
이범호 감독에게도 감격의 날이었다. 대구고 출신으로 2000년 한화에 입단한 내야수 출신 이범호 감독은 2009년까지 대전이 홈이었다. 한화에서 중심타자이자 국가대표 3루수로 성장했지만 2010년 일본프로야구 소프트뱅크 호크스를 거쳐 한국에 돌아올 때 KIA로 이적했다. 복귀에 미온적이었던 친정팀 한화에 마음의 상처를 입었지만 KIA가 진심으로 다가왔다. 2011년 1월말 KIA와 계약하면서 야구 인생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KIA 중심타자로 주장까지 맡으며 선수단에 신망이 두터웠던 이범호 감독은 2017년 통합 우승 주역이 됐고, 2019년 7월 성대한 은퇴식을 거쳐 지도자로 변신했다. 당연히 KIA에서 시작했다. 2021년 2군 총괄코치, 2022~2023년 1군 타격코치를 거쳐 올해 호주 캔버라 스프링캠프 때 감독으로 승격됐다. 캠프 출국 전 김종국 전 감독이 후원 업체로부터 금품 수수 혐의를 받아 해임됐고, 뒤숭숭한 분위기를 수습할 새 감독으로 이범호 감독이 낙점됐다. 2녀 계약이었다.
프로야구 최초 1980년대생 젊은 감독으로 ‘형님 리더십’을 선보이며 합리적인 운영을 한 이범호 감독은 첫 해부터 통합 우승 위업을 세웠따. 감독 부임 첫 해부터 한국시리즈 우승은 1983년 해태 김응용, 2005년 삼성 선동열, 2011년 삼성 류중일, 2015년 두산 김태형 감독에 이어 5번째.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 통합 우승 기준으로는 선동열, 류중일 감독에 이어 3번째다. 42세11개월3일의 이 감독은 2005년 우승 당시 42세9개월9일이었던 선동열 감독을 넘어 부임 첫 해 통합 우승 최연소 감독이 됐다.
우승 확정 후 1루 덕아웃을 찾아 박진만 삼성 감독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한 이 감독은 선수들과 함께 감격의 포옹을 나누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KBO 감독상을 받고 마이크를 잡은 이 감독은 “이렇게 명문 구단의 감독을 시켜주셔서 감사드린다. 너무나도 멋진 광주에서 우승을 할 수 있어 무한한 영광이라고 생각한다”며 “제가 꼭 광주에 돌아와서 우승한다고 말씀드렸는데 이뤄서 너무 좋다.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라운드에서 이어진 우승 축하 행사 때 선수들과 함께 올 시즌 최고 응원 히트작 ‘삐끼삐끼’ 춤까지 선보인 이 감독은 기분 좋게 인터뷰실에 들어왔다.
다음은 이 감독과 취재진의 일문일답.
-우승 소감.
“너무 감사드린다. 팀을 맡아서 굉장히 힘든 시기도 있고, 좋은 시기도 있었다. 마지막에 너무나도 좋은 상황에서 우승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모든 선수들과 항상 응원해주시는 많은 팬분들께 너무 감사하다. 우승했지만 다시 시작이니까 잘 준비해서 내년에 이 자리에 다시 설 수 있도록 하겠다.”
-시즌 전 우승 후보 평가받았는데.
“팀을 맡을 때부터 2년 안에 우승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 선수들이 갖고 있는 능력은 어느 팀보다 좋다. 당연히 우승이라는 목표를 타이틀을 얻고 싶기 위해 열심히 했다. 선수들도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결과 우승을 이룰 수 있었다. 팀 자체가 젊은 선수들도 많고, 고참들도 아직 능력이 출중하다. 올 시즌 잘 마무리했고, 내년에도 팀 자체를 더 발전할 수 있게 만들 것이다.”
-선수 때 우승과 차이점은.
“우승하니까 다 좋은데 확실히 홈에서 하니까 너무나도 좋다. 항상 우승이란 걸 원정에서, 서울에서 많이 했다. 서울 팬분들도 많지만 광주 팬분들은 직접 많이 못 보셨다. 여기서 꼭 우승을 이뤄드리고 싶었는데 그 목표를 달성해서 좋다.”
-5차전 경기 초반 끌려다녔는데.
“충분히 막으면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삼성 투수들이 많이 던졌고, 우리가 실점을 막으면 이길 수 있다고 봤다. 그래서 (두 번째 투수로) 김도현을 올리고, 필승조 붙이면 분명 따라갈 거라고 봤다. 조금 더 많은 기회가 있었는데 투아웃에 찬스가 걸리다 보니 긴장되고 어려운 상황에서 경기를 치렀다. 그래도 너무나 극적으로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준 결과 이길 수 있어 감사하다.”
-시즌 전체를 돌아볼 때 가장 큰 위기는.
“선발투수들이 빠졌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 야수들 같은 경우 9명 중 1명이 빠지는 거라 전체 선수들을 잘 다스려서 가면 언제든 좋은 선수가 1명 나올 수 있다. 팀 타선 자체도 강했기 때문에 1명 공백은 막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100구를 던져야 하는 선발투수는 그렇지 않았다. 한두 자리에 선발을 대체 선수로 넣다 보니 불펜 부하가 많이 걸렸다. 그때 김도현, 황동하를 선발로 넣어야 되는 그떄 상황이 힘들었다. 이의리, 윤영철, 제임스 네일이 부상으로 빠질 때마다 고민했는데 그 선발 자리를 선수들이 잘 메워줬다. 덕분에 1위를 지키면서 한국시리즈까지 우승할 수 있었다.”
-마음 속 MVP가 있다면.
“모든 선수들이 잘해줬지만 김도영이다. 이렇게 빠른 시간에 성장해준 덕분에 팀 자체가 변화할 수 있는 시즌이었다. 김도영이란 선수가 나오지 않았더라면 젊은 선수 뎁스나 이런 것들이 쉽게 변화가 될 수 없었다. 김도영이란 좋은 선수 한 명이 내야 자리 찾아주면서 다른 선수들에게 시너지가 생겼다. 고참들이 선수들을 잘 이끌어주면서 좋은 팀으로 바뀌었고, 김도영처럼 젊은 선수들이 더 분발해줘서 매년 좋은 선수들이 하나씩 나오면 팀도 더 좋아질 것이다. 김도영이란 좋은 선수가 나온 게 감독으로서 고마운 일이었다.”
-투수 쪽에선 곽도규가 성장했는데.
“젊은 선수 한 명, 한 명 어떻게 커주느냐에 따라 팀의 변화가 굉장히 커진다. 곽도규, 윤영철, 김도현, 정해영 전부 다 젊은 선수들이고, 아직 성장하는 단계다. 앞으로 더 좋아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곽도규도 처음 개막전에 올릴 때 필승조 4~5명으로 우승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개막전부터 어려운 상황에 올려봤는데 확실히 큰 간을 갖고 있다. 그 선수가 잘 성장해줌으로써 중간에 좋은 선수들이 배치됐다. 선발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중간투수들로 잘 버틸 수 있었다.”
-내년 선발진 구상에 대해선.
“김도현, 황동하가 있다. 윤영철도 올 시즌 허리가 조금 안 좋았지만 밸런스나 모든 면에서 큰 부상은 아니다. 내년 선발 로테이션을 잘 지켜줄 거라고 생각한다. 내년 6~7월쯤 이의리가 돌아온다. 불펜이 강하고, 선발도 충분히 보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젊은 신인들과 퓨처스에서 성장하는 선수들이 또 나오면 팀 자체는 더 강해질 수 있다고 본다.”
-김태군이 한 표 차이로 MVP 놓쳤는데.
“1표 차이였나? 그래서 아까 (김)태군이가 팀 MVP는 없냐고 물어봤나 보다. 볼 배합 너무 잘해줬다. 김태군이나 김선빈 두 선수가 너무 잘해줘서 MVP라고 생각한다. 태군이는 제가 잘 위로하고 달래주겠다.”
-2011년 FA로 오기 전까지는 KIA와 인연이 없었는데.
“타이거즈라는 팀에 올 줄 알았다. 한화 소속으로 광주에 왔을 때 잘 쳤다. KIA 투수들 공을 잘 쳐서 (FA로) 데려오신 것 같다. (한화 선수 시절) 제가 오면 광주 팬분들이 ‘이름이 호랑이인데 왜 광주 안 오냐’고 그랬다. 이름 때문에라도 KIA에서 부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너무나도 좋은 구단에 왔다. (FA 이적할 때) 그 당시 힘들어서 일본 어디에 외롭게 있는 저를 찾아와 주셨다. 그때 저를 스카우트해주신 프런트들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난다. 그분들께 너무 감사드린다. 덕분에 이 팀에 올 수 있었다. 성대한 은퇴식에 감독까지 시켜주셨다. 개인적으로 큰 감흥이 있다. 앞으로도 KIA 타이거즈라는 팀을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여기에 있는 선수들이 성장을 잘할 수 있도록 좋은 팀을 만들겠다. 앞으로 더 멋진 팀으로 만들겠다.”
-첫 해 우승했는데 다음 목표는?
“모든 사람들이 우승 목표로 시작한다. 타이거즈 팀에 14년 몸담았고, 젊은 나이에 좋은 팀으로 만들어가는 게 제가 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한다. (은퇴 후 해외로) 연수를 가서 공부하고, 많은 걸 배워와서 이 팀에 전수해주는 사람이 되자는 마음이었다. 감독을 맡아 1년 만에 큰 변화가 생겼고, 우승이라는 큰 타이틀을 안겨준 선수들에게 감사하다. 우승을 목표로 달리지만 거기서 선수들이 성장할 수 있게 하는 게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은퇴식 때 등번호 물려준 박찬호에 대한 생각은.
“(박)찬호 플레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플레이할 때 건들대는 모습도 있다. 하지만 플레이하는 것에 있어 찬호처럼 매일매일 경기를 뛰어주는 선수는 많지 않다. 아픔이 있어도, 힘든 시기를 겪어도 경기를 뛰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선수가 최고라고 생각한다. 찬호는 큰 그릇을 갖고 있는 선수다. 저하고 있으면 안 좋은 모습들도 없어질 것이다. 내년에는 더 멋진 선수로 올라갈 수 있도록 우리 코칭스태프에서 잘 준비할 수 있도록 하겠다. 우리 찬호, 많은 사랑 부탁드린다.”
-감독 부임 후 잘 지켰다 싶은 다짐은.
“선수들에게 호주에서 처음 부임할 때 ‘하고 싶은 대로 야구하라’고 했는데 그건 시즌 내내 지켰다. 앞으로도 그런 야구를 펼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선숙들이 플레이하는 것에 있어 감독 때문에 눈치 보고 야구 못하는 모습은 없도록 할 것이다. 자기 기량을 못 펼치고 그만두는 선수들이 굉장히 많은데 그 기량을 펼칠 수 있는 선수를 만드는 게 내가 해야 할 일이다. 하나하나 잘 모아서 젊은 선수들이 성장하는 데 보탬이 되는 지도자가 되도록 하겠다.”
-고마운 스승들도 많을 텐데.
“이 자리를 빌어 너무 감사드린다. 어떤 분을 딱 말하기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다 인사드리겠다. 선수 생활을 하며 감독관을 만들어주신 스승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KIA가 왕조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선수들이 자만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내년 시즌에도 우승을 다시 한 번 느끼고 싶다는 간절함을 만들어내는 게 감독이 해야 할 일이다. 우승은 올 시즌으로 끝난 것이다. 내년에 다시 도전해서 우승하는 팀으로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거기에 걸맞는 팀이 되도록 해야 한다. 왕조라는 건 굉장히 힘든 것이고, 그 말을 쓰기도 굉장히 어렵다. 우리 선수들 능력은 충분하다. (리그 전체가) 평균적으로 비슷한 팀들이 많은데 세밀한 부분만 잘 잡아내면 올 시즌처럼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것이다. (선수들이) 거만해지지 않도록, 다시 한 번 도전하는 마음으로 올라가겠다.
인터뷰를 마친 이 감독은 자리를 뜨기 전 “올 시즌 다들 수고 많으셨다. 삼성 모든 선수들과 팬여러분, 관계자분들께도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드린다”며 준우승 삼성에 대한 예우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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