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기자는 왜 '압사'라 쓰지 못했나[이승환의 노캡]

이승환 기자 2024. 10. 29.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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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신조어 No cap(노캡)은 '진심이야'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캡은 '거짓말'을 뜻하는 은어여서 노캡은 '거짓말이 아니다'로도 해석될 수 있겠지요. 칼럼 이름에 걸맞게 진심을 다해 쓰겠습니다.

10.29 이태원 참사 2주기를 하루 앞둔 28일 오전 서울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희생자 고 그레이스 라셰드의 어머니 존 라셰드씨가 추모하고 있다. (공동취재) 2024.10.28/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 "이태원 핼러윈 현장입니다. 최소 10명이 압사했습니다. 사방이 인파고 시체며 앰뷸런스 차가 오고… 아수라장입니다… 통신 상황이 악화해 통화 더 어렵습니다."

후배에게 이런 보고를 받은 것은 2022년 10월 29일 밤 11시 30분쯤이었다. 후배는 사건·사고가 아닌 핼러윈 축제를 취재하기 위해 현장을 갔었다. 그런데 '10명 압사'라니. 자판에 옮기기 낯설고 압도감에 두려움마저 들었다.

곧바로 소방에 연락했으나 닿지 않았다. 후배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10명 압사'는 너무나 비현실적이었다. 2022년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사망자 10명이라니, 그것도 압사라니, 당시 기준으로 3년째 사건팀 기자로서 매일 글을 썼지만 한 번도 쓸 일 없었던 '압사'란 단어를 조립하려 해도 상식의 저항에 부딪혀야 했다.

2022년 10월 29일 오후 11시 41분 28초

소방을 통해 다수의 인명 피해 사실을 확인하고서 보도한 시간은 2022년 10월 29일 오후 11시 41분 28초. <'핼러윈' 이태원 한복판서 안전사고…인파 속 최소 10여명 쓰러져>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모든 매체 가운데 두 번째로 송고한 '이태원 참사' 관련 기사였으나 '압사'라는 단어는 제목과 본문에 쓰지 못했다. 당시만 해도 소방에서 압사 여부를 공식 확인해 주지 않았고 무엇보다 현실이라고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약 40분 뒤인 10월 30일 오전 0시 20분. 소방과 경찰이 확인한 사망자는 최소 100명으로 10배 이상 늘었다. 최소 10명 사망이 '비현실적'이었다면, 최소 100명 사망은 '초현실적'이었다. 최종 확인된 압사자는 159명. 세월호 이후 최악의 비극인 '10·29 이태원 참사'라고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다.

참사 발생 541일 후 서울서부지법 앞

참사 발생 541일 후인 2024년 4월 22일 오후 1시 30분쯤 서울서부지법 앞.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의 첫 재판이 진행될 예정이었다. 그의 혐의는 업무상 과실치사상이었다. 이태원 참사 당시 그는 서울청장으로서 서울 치안을 총괄했다. 보라색 점퍼를 입은 유족 10여명이 서부지법으로 발걸음하는 김 전 청장을 둘러싸고 오열하며 욕설했고, 욕설하면서 울부짖었다.

일부 유족은 "내 새끼 살려내라"며 김 전 청장의 머리채를 잡아당겼다. 김 전 청장의 얼굴은 벌겋게 상기됐다. 이 장면은 사진으로 찍혀 일제히 보도됐다. 김 전 청장과 함께 일했던 경찰관들도, 김 전 청장과 친분 있는 기자들도 그 사진을 보았다. 사람들은 그 장면을 보고 댓글을 썼다. 대부분 악플(악의적인 댓글)이었다. "국가가 왜 놀러 다니다 숨진 얘들의 인생까지 책임져야 하나." 그나마 온건한 악플을 골라낸 것이 이 정도였다.

1988년 8월 31일…"종일 신을 죽였다"

자식을 잃은 마음을 온몸으로 느낀 것은 고(故) 박완서의 글에서였다. 1988년 8월 31일 박완서의 스물 여섯살 아들은 교통사고로 숨졌고, 112일 전인 5월 11일 박완서의 남편은 폐암으로 별세했다. 남편에 이어 아들까지 떠나보낸 '이 비현실적인 현실'을 박완서는 어떻게 버텼을까. 박완서는 일기 형식의 저서 '한 말씀 하소서'에서 "신을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했다.

"주님, 당신은 과연 계신지, 계시다면 내 아들은 왜 죽어야 했는지, 내가 이렇게 고통받아야 하는 건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더도 말도 덜도 말고 한 말씀만 해보라고 애걸하리라. 애걸해서 안되면 따지고 덤비고 쥐어뜯고 사생결단을 하리라."(102쪽)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고선 견딜 수 없어 그는 신의 존재를 긍정해야만 했다.

"그저 만만한 건 신이었다. 온종일 신을 죽였다. 죽이고 또 죽이고 일백 번 고쳐 죽여도 죽일 여지가 남아 있는 신, 증오의 마지막 극치인 살의, 내 살의를 위해서도 당신은 있어야 돼."(47~48쪽)

참사 2주기 '폭 4m·길이 50m'의 골목

이태원 참사 관련 혐의로 기소된 자 중 최고위직인 김광호 전 서울청장은 지난 17일 오전 11시 40분쯤 무죄를 선고받았다.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가 '윗선'의 책임을 묻기에 한계가 있었던 만큼 이런 결과를 예상하는 법조인이 적지 않았다. 법에 해박한 사람들은 객관적이고 점잖은 단어를 사용하며 김 전 청장의 무죄를 설명했다. "합리의 영역인 법적인 처벌과 정무의 영역인 도덕적 책임은 구분해야 합니다."

그러나 합리의 영역 바깥에서 자식을 잃은 자들이 울부짖고 몸부림치다가 끝내 살의를 소진해 현실로 돌아올 수 있도록, 마음껏 '원망'할 수 있도록 내버려두면 안 되는 걸까. 신의 자비 외에는 그것을 허용할 방법은 도저히 없는 걸까.

이태원 참사 2주기를 하루 앞둔 28일, 사고 현장인 해밀톤 호텔 옆 골목에는 희생자들의 이름을 담은 사진들이 게시됐다. 폭 4m·길이 50m의 골목을 가을바람이 스치듯 지나갔다. 호주인 희생자 그레이스 라쉐드의 어머니 조안 라쉐드는 눈물을 흘렸다. 유족은 여전히 자식의 압사를 '비현실'로 느끼고 있고, 사람들은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며 현실을 가리키고 있다.

mrle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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