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 없는 김밥 축제, 꽃 없는 꽃 축제
지난 26~27일 경북 김천시 사명대사 공원에서 열린 ‘제1회 김천 김밥 축제’는 ‘김밥 없는 김밥 축제’였다. 주최 측인 김천시가 예상한 방문객 2만명의 5배인 10만명 인파가 몰리면서 준비해둔 1만6000인분 김밥이 행사 시작 3시간 만에 동이 났기 때문이다. 김천시가 마련한 오단이김밥·톳김밥·다담김밥·사명대사호국김밥·지례흑돼지김밥이 모조리 사라졌고 방문객들은 “멀리서 왔더니 떡볶이만 먹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김천시가 김밥 축제를 연 까닭은 김밥과 연고가 있어서가 아니다. 인구 13만5000명인 김천시는 2019년 말부터 노인 인구가 전체의 22%가 넘는 초고령 사회, 소멸 위기 지역이 됐다. 이 위기를 타개하고자 전국의 2030세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김천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무엇이냐고 묻자 ‘김밥천국’(줄임말 김천)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김천시는 그간 관내에서 재배하는 자두·포도 등을 특산물로 부각하려 애를 썼다. 별안간 ‘김밥’을 내걸고 축제를 열었다가 뜻밖의 상황을 맞이한 것이다. 김천시 관계자는 “인구가 13만명인데 10만명이 오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고 했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연고도 없는 음식을 내걸면서까지 축제를 여는 이유는 지역 활성화와 국고 보조금이 그만큼 간절하기 때문이다. 어지간한 소멸 위기 지자체 인구에 맞먹는 10만명 인파가 하루만 몰려도 50억원가량 경제 효과가 발생한다. 축제가 성공하면 투입 예산의 최대 20배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고 한다. 축제 예산에 중앙정부가 일정 부분 국비 보조금을 주기도 한다. 정부는 외지에서 와서 단기간 생활하는 인구까지 포함해 지방교부세를 주는 제도까지 검토 중이다. 이런 장점 덕에 2022년엔 전국에서 944건 열린 지역 축제가 2024년(12월까지 계획 건수) 1170건으로 약 24% 늘었다. 전국 시군구가 260곳인데 1곳에서 4건 이상 축제가 열리는 셈이다.
하지만 중앙 정부보다 행정력이 미약한 지자체들이 방문객 규모 예측에 실패하거나 부실한 행사 준비로 축제를 망치는 사례가 속출한다. 광주광역시가 지난 18~20일 개최한 ‘제31회 광주 김치 축제’엔 관람객 6만8000명이 몰렸지만, 먹거리 부스에서 파는 홍어 삼합 메뉴에 홍어가 없거나 1만원짜리 두부 김치엔 고기가 6점밖에 없어 불만이 발생했다. 지난 3~4월 열린 ‘제62회 진해 군항제’에선 꼬치 어묵 2개에 1만원, 돼지 바비큐·통삽겹·쪽갈비 400g에 4만원 등 비싼 가격으로 ‘바가지 논란’이 일었다.
지자체마다 고육지책으로 짜낸 각종 축제들은 각종 논란과 화제 속에서 그나마 지역 경제 활성화엔 도움이 된다는 평가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조기 품절이니 바가지니 욕을 하면서도 사람들이 볼거리를 찾아오는 현상 자체는 긍정적”이라고 했다. 하지만 최근 기후 변화라는 거대한 위기에 직면한 지자체들은 울상을 짓는다. 이상고온으로 식물의 성장 주기와 직결되는 날씨 주기 자체가 어그러져버렸기 때문이다. 꽃 축제엔 꽃이, 얼음 축제엔 얼음이 없는 식이다.
전남 신안군은 지난달 27일 개막 예정이던 퍼플섬 아스타 꽃축제를 취소했다. ‘퍼플(Purple·보라색)섬’으로 유명한 안좌도에 보라색 품종인 아스타 국화를 대량으로 심어 볼거리로 만든 축제였다. 2021년부터 시작된 이 축제는 한때 ‘인스타 명소’가 됐다. 하지만 서늘한 기후에 개화하는 아스타 국화는 올여름 기록적 폭염이 가을까지 이어지면서 거의 피지 못하고 죽어버렸고 축제는 취소됐다.
지난달 중순 전남 함평군 ‘모악산 꽃무릇 축제’와 전남 영광군 ‘불갑산 상사화 축제’도 모두 이상기후 탓에 모두 ‘꽃 없는 꽃 축제’가 됐다. 강원 속초시는 올해 벚꽃 개화 시기를 3월 30~31일로 예상하고 벚꽃 축제 일정을 잡았지만 결국 빗나갔다. 결국 4월에도 추가로 축제를 열었다.지난 3일부터 열린 경북 봉화군의 송이 축제도 여름 폭염과 고온 다습한 날씨로 송이 농사를 망치면서 송이 채취 체험 행사를 취소했다. 대신 호두 채취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경북 안동시는 지난 1월 겨울 이상고온으로 썰매와 빙어 낚시 등을 하는 암산 얼음 축제를 취소했다. 안동시 관계자는 “이전에는 ‘얼음 두께가 25㎝ 이상이냐’가 관건이었지만 이제는 ‘얼음이 어느냐 마느냐’가 문제”라며 “얼음 축제의 존속이 가능한지 논의 중”이라고 했다. 안동시는 인공 얼음을 활용해 축제의 명맥을 잇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산천어 축제’로 유명한 강원 화천군도 “이젠 강원도에도 겨울에 눈이 아니라 비가 잦아졌다”며 “얼음 보호 대책을 강구 중”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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