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칼럼] 우크라이나의 남북 대리전쟁?

김대중 칼럼니스트 2024. 10. 29.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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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상 무기 지원하면
코리안 대리전쟁 인상 줄 수도
게다가 트럼프 재집권하면
현 전선 올스톱, 러 사실상 승리
타이밍상으로도 적절치 않아
파병된 북한군 전선 이탈하도록
심리전 펼치는 게 우리 할 일

북한군이 러시아의 용병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하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우리에게 또 다른 양상으로 변모하고 있다. 60여 년 전 한국이 미국 요청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것과 비교되면서 이번에는 북쪽의 ‘코리안’이 또 다른 남의 전쟁에 들러리를 서는 상황이 됐다.

북한의 참전에 가타부타할 생각은 없다. 다만 한국의 대응이 문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주 방한 중인 폴란드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북한군의 활동 여하에 따라 한국의 ‘살상 무기’를 지원할 수도 있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이제까지 인도적 또는 비전투용 물자 지원에 머물렀던 데서 크게 변화한 것이다. 만일 살상 무기를 지원한다면 남북의 코리안이 이역만리 유럽 땅에서 군사적으로 대치하는 모양새가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살상 무기 제공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가 대한민국의 군사력을 키우고 각종 무기를 개발하는 것은 우리 국민의 생명과 국토를 지키고 보전하기 위해서다. 우리가 다른 나라를 위해 또는 남을 공격하는 데 우리 무기를 빌려주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그런 국가 보전의 연장선상에서 정당화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우리가 우크라이나에 살상 또는 전투용 무기를 제공하는 것은 그 범주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그것은 자칫 유럽 땅에서 코리안끼리 대리(代理)전쟁을 하는 것처럼 비치거나, 본질을 벗어나 남북한끼리 적대적 대립 의식을 발산하는 분출의 시연장으로 변모할 가능성마저 있다. 서구 언론, 특히 친우크라이나 언론들이 북한군의 참전을 크게 또는 미주알고주알 상세히 보도하는 데서 우리는 마치 한국의 어떤 대응을 기대하는 것 같은, 또는 부추기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특히 우크라이나 지도층에게서 그런 느낌을 받는다.

우리가 그동안 우크라이나를 비전투적 차원에서나마 지원하고 우크라이나 편을 든 것은 서방 민주 사회 특히 미국과 맺은 연고를 고려한 일종의 ‘우정 출연’이었다. 하지만 살상 무기 제공은 별개 문제다. 무력적 적대(敵對) 행위, 즉 전쟁으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남북한이 공히 ‘나토 대(對) 러시아’의 ‘꼭두각시’로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중요하고 심각한 것은 우리의 살상 무기가 불가피하게 러시아군을 ‘살상’할 수도 있다는 문제다. 전장에서 살상 무기는 북한군이건 러시아군이건 식별할 수 없다. 이런 사태는 급기야 러시아 또는 러시아 국민과 적대 관계에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러시아는 지난번에 북한과 동맹 관계를 맺었지만 푸틴은 이것이 곧 한국을 배척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을 내비친 바 있다. 그는 북·러 동맹은 북한이 침공받았을 때의 문제이며 한국이 북한을 침공할 리는 없지 않으냐고 반문조로 말했다. 군사력의 대비는 중요하다. 하지만 군사 행위에 선행하는 것은 안보 외교이며, 지금 러시아와 군사적으로 충돌하거나 척지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안보가 아니다.

미국과 얽힌 문제도 중요한 변수다. 지금은 막바지 선거전이 치열한데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그가 대통령이 되면 미국의 대외 정책은 많이 요동칠 것이다. 그중 하나가 우크라이나 전쟁이다. 그는 이미 여러 차례 자신과 푸틴의 우호적 관계를 언급하며 자신이 대통령이었으면 우크라이나 전쟁은 아예 없었을 것이라고 말해 왔다. 즉 트럼프가 복귀하면 우크라이나전쟁 양상은 전면 달라질 것이다. 미국이 지원을 끊으면 우크라이나는 현 전선에서 올스톱이고 결국 러시아의 승리로 귀결될 공산이 크다. 그런 긴박하고 민감한 시점에 우리가 섣불리 살상 무기 지원 운운하는 것은 타이밍상으로도 적절치 않다.

근자에 우리는 우리의 방산 무기 능력에 많이 고무돼 있다. 정말 자랑스러운 일이다. 긴 역사에 남의 침략만 받고 살아온 우리가 이제 우리 손으로 우리를 지킬 고도 무기를 개발하고 생산할 능력을 키웠다는 것은 크게 자부해도 좋다. 하지만 무기는 본래 상대를 무력화하거나 파괴하는 도구다. 자신을 지킬 때와 남을 해칠 때 무기의 정당성이 다르다. 살상 무기이기에 더욱 그렇다. 방산 외교와 공개적인 대외 홍보에 너무 몰두하는 것은 ‘무기 잘 만드는 나라’의 이미지를 키운다. 나라를 운용하는 책임자들은 이 문제에 더욱 신중해야 한다. 파병된 북한군이 우크라이나 전선을 이탈해 자유를 찾도록 유도하는 심리전이 우리가 해야 할 일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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