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MZ들의 자존심, 주말 런던에서 맞붙는다 [여기힙해]
“잇츠 굿(좋습니다)!”
지난 27일 프랑스 파리 아디다스 아레나 무대에서 얼굴 만한 크로와상을 선물 받은 프로게이머 T1의 구마유시(이민형)가 맛을 본 후 엄지 손가락을 높게 듭니다. 국제 무대에서도 넉살 좋은 구마유시의 모습과 이렇게 큰 크로와상을 ‘일반 사이즈’라고 말하는 프랑스 사회자의 유머에 관객들은 웃음이 터집니다.
이날 열린 2024 LoL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4강전에서 T1은 숙적 젠지를 3대1로 꺾고 결승 진출을 확정지었습니다. T1과 주장 페이커는 이로써 통산 7번째, 2022년부터 3년 연속 결승 진출입니다. 7년 만의 우승을 거둔 작년에 이어 5회 우승 도전이기도 합니다. 이번에도 상대팀은 궁극의 라이벌 중국리그의 빌리빌리게이밍(BLG)입니다.
다음달 2일 영국 런던 O2 아레나에서 열리는 결승전은 한국과 중국 e스포츠 산업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경기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한국의 T1, 중국의 BLG 모두 많은 것이 걸려 있는 경기입니다. 돈이 되는 여기 힙해 스물 여섯 번째 이야기입니다.
<1>중국 e스포츠 산업의 미래, BLG에 달려있다.
“다섯명의 중국인은 우승할 수 없다.”
2011년 롤드컵이 시작한 이후 내려오는 징크스입니다. 그동안 많은 중국팀이 우승했지만, 그 중국팀에 한국인 선수가 없었던 적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결승에 진출한 BLG는 5명 전원이 중국인으로 구성된 ‘순혈 중국팀’입니다. 중국 Z세대들의 관심이 더욱 집중되는 이유입니다.
이번 BLG의 우승에는 중국 e스포츠 산업의 미래가 걸려있기도 합니다. 중국 정부는 2022년부터 시진핑 국가주석의 주도로 ‘게임 셧다운제(심야시간 게임접속 금지)’를 시행 중입니다. ‘게임 셧다운제’란, 미성년자의 경우 평일에는 완전 게임 금지, 주말에만 1시간씩 이용할 수 있는 강력한 규제입니다. 일반적으로 프로게이머의 전성기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인 것을 감안하면 신인 양성이 불가능한 시스템입니다.
전문가들은 이 규제가 중국 e스포츠 산업을 위태롭게 한다고 분석합니다. 컨설팅 회사 ‘니코 파트너스’에 따르면, 현재 중국의 게임 시장은 550억 달러(약 76조원)입니다. 매번 수백만명이 e스포츠 경기를 시청합니다. 텐센트는 수십억 달러를 들여 전용 경기장을 건설하고 있습니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셧다운제가 전 세계 게임 생태계 속에서 차지하고 있는 중국의 패권을 스스로 놓아버리게 만들고 있다”고 합니다.
중국 정부는 이 규제에 대해 “게임은 ‘마음의 아편’이자 ‘시간 낭비’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강한 중국”을 만들기 위함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 규제로 중국 학부모의 지지가 높아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습니다.
최근 롤드컵에서 중국팀 우승이 없으면서 인기가 한 풀 꺾인 것도 규제를 강화하는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중국팀은 롤드컵에서 2021년 ‘에드워드 게이밍’의 우승 이후 2년 연속 우승이 없습니다. 반대로, 한국팀은 2022년부터 연승 중입니다. 지난해 광화문 거리 응원처럼 한국의 e스포츠 열기가 높아진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BLG의 어깨에는 ‘중국 e스포츠 업계 부활’이라는 무게가 걸려 있습니다. 순혈 중국팀이 우승하고, 그 열기로 중국 청소년들이 뜨거워지면, 정부 방침도 흔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BLG의 빈(천쩌빈)이 “LPL(중국 리그)의 영광을 되찾아 오는 것이 우리 세대의 의무”라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2>e스포츠의 지속 가능한 성장, T1이 만들어야
BLG의 어깨에 중국 e스포츠 산업의 미래가 걸려 있다면, 한국 T1의 어깨에는 전 세계 e스포츠 산업의 미래가 걸려있습니다. 그동안 e스포츠가 프로 스포츠 업계에서 인정 받지 못한 약점을 T1은 하나씩 해결하며 결승에 올랐기 때문입니다.
LOL은 5명이 한 팀이 돼 상대팀과 대결하는 경기입니다. 그러나 업계에서 이 팀이 1년 이상 유지되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e스포츠는 선수 생명이 짧기 때문에, 대부분 1년 단기 계약을 체결합니다. 선수들은 더 높은 연봉을 위해 이적하고, 팀들은 우승을 위한 부품처럼 선수들을 갈아 끼웁니다. 이렇게 빈번한 선수 교체가 이뤄지다보니 ‘팀’을 응원하는 팬들이 적습니다. LOL에 팀팬보다, 선수팬이 많은 이유입니다. 이는 각 팀별 색채를 옅어지게 만들어, 지속 가능성을 낮춥니다.
그러나 올해 T1은 제우스(최우제), 오너(문현준), 페이커(이상혁), 구마유시(이민형), 케리아(류민석)의 조합으로 3년 연속 결승전에 진출했습니다. 이들이 2년 연속 우승을 이끌어낼 경우, 많은 팀들이 ‘단일 조합’을 고려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이들의 우승은 “결국 팀의 승리는 좋은 선수가 아닌 좋은 팀이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때문입니다.
선수 생명이 짧다는 약점도 해결될 수 있습니다. 올해 T1은 디펜딩챔피언(전 대회 우승자)이기 전에 ‘언더독(약자)’의 입장입니다. 국내 리그에서는 연이은 패배로 롤드컵 진출 가능성조차 희박했습니다. 4강 전에서 만난 젠지와는 10연패를 당하고 있기도 했습니다. BLG가 중국 리그 1시드(1등)라면, T1은 한국 리드 4시드(4등) 출전입니다.
그 배경에는 주장 페이커의 손목 부상으로 인한 부진이 있었습니다. 페이커의 올해 나이는 28살로 팀 코치 로치(김강희)보다 세 살 많습니다. 프로게이머에게 손목 부상은 고질적인 직업병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세를 바꾸고, 부상을 회복해 결승까지 왔습니다. 프로게이머의 선수 생명이 짧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줄 기회입니다. 이런 그의 활약은 다른 선수들이 팀과 장기 계약을 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는 e스포츠산업을 더욱 건강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시장조사기관 스태티스타(Statista)에 따르면 글로벌 e스포츠 시장 규모는 2023년 38억 달러이며, 2028년에는 2023년 대비 50% 증가한 57억 달러까지 성장할 전망입니다. e스포츠 시장은 게임을 포함한 소프트웨어 산업 발전뿐만 아니라, 컴퓨터 부품, 게임 캐릭터 굿즈, 게임용품 등 하드웨어 산업, IP, 게임 스트리밍, 광고 등 산업과 연계돼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조하고 있습니다.
<3>린킨 파크 오프닝으로 시작되는 빅게임
이런 산업적인 배경들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이번주 토요일 한·중전은 양국 MZ세대들의 자존심을 건 ‘빅게임’입니다. 오프닝 무대는 세계적인 록그룹 린킨 파크가 올해 롤드컵 주제가인 ‘왕관의 무게를 견뎌라(Heavy Is The Crown)’를 부를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페이커의 우승 서사를 바탕으로 한 곡입니다.
지금까지 T1은 롤드컵 다전제(16강 이후)에서 한 번도 중국팀에게 진 적이 없습니다. 반면, BLG는 최근 MSI(상반기 국제대회)에서 T1을 상대로 다전제 무패 행진을 기록 중입니다. 이번 결승으로 누군가의 무패 행진은 깨지게 됩니다.
포지션별로는 지난해 롤드컵 결승에서 MVP를 받은 제우스 선수와 BLG 뿐 아니라 중국 내 최고 인기 선수인 빈 선수의 대결이 관전 포인트입니다. 두 사람의 전적은 14승 14패로 동률입니다. LOL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다른 경기 다 져도, 중요한 경기 딱 한 판만 이기면 된다.” 모든 것을 가져갈 승자, 이번주 토요일에 결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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